갑(甲)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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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갑 |
한글표제 | 갑 |
한자표제 | 甲 |
상위어 | 가례(嘉禮), 군례(軍禮), 길례(吉禮), 흉례(凶禮) |
관련어 | 경번갑(鏡幡甲), 두두미갑(頭頭味甲), 두정갑(頭釘甲), 쇄자갑(鏁子甲), 수은갑(水銀甲), 유엽갑(柳葉甲), 지갑(紙甲), 피갑(皮甲) |
분야 | 왕실/왕실의례/예기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허태구 |
용도 | 의장용(儀仗用) |
재질 | 철(鐵), 수은(水銀), 연록피(烟鹿皮), 생저피(生猪皮), 종이 등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갑(甲)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13년 3월 7일, 『태종실록』 14년 11월 4일 |
조선시대 노부(鹵簿) 행렬에 참여한 군사들이 착용한 각종 갑옷.
개설
노부는 왕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동원되던 의장(儀仗) 행렬을 말한다. 궁궐 안에서 시행될 때는 ‘의장’이라 불렀다. 왕의 노부는 그 규모에 따라 대가(大駕)·법가(法駕)·소가(小駕)로 구분되었으며, 왕 이외에 왕비·왕세자·왕세손 등의 의장도 있었다. 노부 행렬에는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각종 깃발·부채·덮개·병기·악기 등 다양하고 화려한 의장 용품이 사용되었다. ‘갑’은 이러한 노부에 참여한 다양한 병종의 군사들이 착용한 각종 갑옷을 가리킨다.
연원 및 변천
갑옷의 표면에 비늘 모양의 미늘[札]을 부착해 방호재로 사용하는 갑옷을 총칭하여 찰갑(札甲)이라고 한다. 찰갑은 미늘의 재료에 따라 다시 세분되는데, 철로 만든 철갑(鐵甲), 가죽으로 만드는 피갑(皮甲), 종이로 만드는 지갑(紙甲)이 있다. 수은갑은 철제 미늘을 사용하였으므로 철갑에 속한다. 궐내에서 행해지는 정지급성절망궐행례의(正至及聖節望闕行禮儀)에 참여하는 내금위(內禁衛) 군사들이 주로 착용하였다.
조선시대에 철엽아갑(鐵葉兒甲)이라고 부른 갑옷은 찰갑과 철갑의 속성을 모두 가진 수은갑과 유엽갑 같은 갑옷을 가리킨다. 수은갑과 같은 철갑은 웬만한 화살이 관통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호력이 뛰어나며, 제작 비용도 저렴하였지만 무거운 데다가 철로 제작된 미늘과 미늘을 이어주는 가죽끈이 쉽게 닳아 못쓰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조선전기 이후에는 찰갑의 한 종류로 가죽으로 제작된 미늘을 사용하는 피갑의 비중이 점차 높아졌다. 그러나 미늘 제작에 소모되는 가죽의 값이 날로 비싸져 조달이 여의치 않게 되자, 농우(農牛)를 도살하는 등 여러 가지 사회적 폐단도 함께 발생하였다. 따라서 스스로 마련하는 피갑에는 소가죽과 말가죽의 사용을 엄금하거나 소 도둑질을 엄금하는 등의 조치가 내려지기도 하였다.
쇄자갑은 원래 서역에서 비롯되어 중국을 통하여 전래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도입 시기는 확인할 수 없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대부터 제작되었으며. 세종대 숙위군사(宿衛軍士)가 착용하는 쇄자갑의 품이 몹시 좁고 파손이 심하여 중국 사신을 접대하기가 매우 민망하니 급히 수선하라는 기록이 있다(『세종실록』 13년 3월 7일). 행행(行幸)이나 중국 사신을 영접할 때 호위하는 군사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쇄자갑의 도련과 소매에 홍염피(紅染皮)를 둘러 장식하기도 한다.
형태
『세종실록』 「오례」에는 총 6종의 갑옷을 설명하고 있는데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은갑(水銀甲)은 철제 미늘[札]을 이어 만든 갑옷의 일종으로, 철제 미늘의 표면을 수은으로 도금하였기 때문에 수은갑이라고 한다. 속칭은 은갑(銀甲), 백철갑(白鐵甲), 명갑(明甲)이다. 수은갑의 전체 형태는 위아래가 붙어 있는 두루마기형으로, 앞이 트여 있어 옷깃을 몇 개의 옷고름으로 묶는 구조이다. 수은갑의 철제 미늘은 표면에 상하 좌우로 각각 몇 개의 구멍을 뚫고, 이를 가죽끈을 사용하여 종횡으로 묶어 연결한다.
유엽갑(柳葉甲)도 철제 미늘을 이어 만든 갑옷의 일종이다. 철제 미늘의 표면에 검은색 옻칠[黑漆]을 하였는데, 이 미늘의 모양이 버드나무 잎과 비슷했으므로 유엽갑이라고 하였다. 유엽갑의 철제 미늘은 표면에 상하 좌우로 각각 몇 개의 구멍을 뚫고, 이를 그을린 사슴가죽끈을 사용하여 종횡으로 묶어 연결한다. 전체적인 구조와 형태는 수은갑과 동일하다.
피갑(皮甲)은 가죽으로 만든 미늘을 이어 만든 갑옷으로, 전체적인 구조와 형태는 수은갑과 동일하다. 피갑의 가죽 미늘은 표면에 상하 좌우로 각각 몇 개의 구멍을 뚫고, 이를 그을린 사슴가죽끈을 사용하여 종횡으로 묶어 연결한다. 그리고 이 가죽 미늘의 표면에는 검은색 옻칠을 한다.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禮)』에는 미늘의 재료로 돼지가죽이 사용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사슴, 노루, 돼지, 소, 말 등 다양한 짐승의 가죽이 쓰였다.
쇄자갑(鏁子甲)은 철사(鐵絲)로 작은 고리인 소환(小環)을 만들고 이를 꿰어서 만든 갑옷이다. 속칭은 쇄아갑(鏁兒甲), 쇄자갑(鎖子甲), 환갑주(環甲冑)이다. 전체 형태는 위아래가 붙어 있는 두루마기형으로, 수은갑과 유사하다. 쇄자갑은 철환(鐵丸)과 철환이 잇달아 연결되어 있는 구조로, 상대의 무기가 하나의 철환에 닿으면 연결된 여러 개의 철환들이 작용하여 창이나 화살의 예리한 부분을 더 이상 관통하지 못하도록 막아 준다.
경번갑(鏡幡甲)은 철로 만든 미늘[鐵札]과 철환(鐵環)을 사이사이에 섞고 이를 연결하여 만든 갑옷이다. 전체 형태는 위아래가 붙어 있는 두루마기형으로, 수은갑과 유사하다. 경번갑의 구조는 철제 미늘이 달린 수은갑, 유엽갑 등의 철갑과 철환으로만 연결된 쇄자갑의 혼합 형태이다. 주로 가슴과 등 부분에는 철제 미늘을 엮고 팔과 다리 부분에는 철환을 엮는다.
지갑(紙甲)은 여러 겹으로 접은 종이로 만든 미늘을 이어 만든 갑옷이다. 전체적인 구조와 형태는 수은갑과 동일하다. 지갑의 종이 미늘은 표면에 상하 좌우로 각각 몇 개의 구멍을 뚫고, 이를 사슴가죽 끈을 사용하여 종횡으로 묶어 연결한다. 그리고 이 종이 미늘의 표면에는 검은색 옻칠을 한다. 지갑 제작에 사용되는 종이는 과거 시험에 낙방한 시험지를 회수한 뒤 군기감(軍器監)으로 보내 조달하기도 하였다.
1474년(성종 5) 편찬된『국조오례서례』「병기도설(兵器圖說)」에도 거의 비슷한 내용을 기재하였으나, 2개의 갑옷을 추가로 설명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두정갑(頭釘甲)은 쇠나 가죽으로 만든 미늘을 갑옷의 안쪽에 대고 쇠못으로 박아서 만든 갑옷이다. 옷감의 색깔과 장식을 달리하여 두 가지 종류로 제작하였다. 하나는 갑옷의 옷감을 청색 무명으로 만들고, 안쪽에 철제 미늘을 조각조각 엮어서 붙인 다음 그 위에 철두정(鐵頭釘)을 별처럼 촘촘하게 박은 것이다. 이것은 짧은 소매에 대략 무릎까지 오는 길이로 갑옷 전체가 두루마기처럼 한 벌로 된 형태이다. 앞이 트여 있는 구조로 양쪽에 6쌍의 끈이 달려 있어 정중앙에서 여미도록 되어 있었다. 다른 하나는 갑옷의 옷감을 홍색 비단으로 만들고, 안쪽에 연기에 그을린 사슴가죽을 댄 다음 그 위에 황동두정(黃銅頭釘)을 박은 것이다. 쇠못을 박은 두정갑과 비교해 볼 때, 외양도 훨씬 화려했으며 옷의 전체 형태나 여밈 방식도 다르다. 이런 형태의 두정갑을 구별하여 황동두정갑(黃銅頭釘甲)이라고 불렀다.
두두미갑(頭頭味甲)은 비단으로 된 옷 안쪽에는 그을린 사슴가죽을 대고, 바깥쪽에는 백은색(白銀色)과 황동색(黃銅色) 두정(頭釘)을 교차하면서 박아 제작한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갑신(甲身), 허리 이하 대퇴부를 보호하기 위한 갑군(甲裙), 사타구니를 보호하기 위한 골미(鶻尾)로 구분할 수 있다. 갑옷 가장자리의 상당 부분에는 선을 가늘게 두르고 그곳에 털을 붙인다. 옷감의 색깔과 장식을 달리하여 두 가지 종류로 제작하였다. 하나는 갑옷의 옷감을 청색 비단으로 만들고 오색조대(五色組帶)를 두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갑옷의 옷감을 홍색 비단으로 만들고 홍광조대(紅廣組帶)를 두르는 것이다. 태종대 두두미갑을 제작한 기록이 있다(『태종실록』 14년 11월 4일).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박가영, 「조선시대의 갑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