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설야
Intellectuals in Modern Korea
목차
연보, Annals
1900년, 01세
- 1900년 08월03일: 함흥부 외 농촌 나촌(함경남도 함주군 주서면 하구리 503번지)장소 출생.
〔출처: 강진호. 한설야. 경기도: 한길사, 2008., 문학과사상연구회. 한설야 문학의 재인식. 소명출판, 2000.〕
1906년, 07세
- 1898년 xx월xx일: 7세 위인 친형과 함께 30여 명의 동네 아이들을 모아 단발동맹을 조직하여 200여 호 마을 사람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단발을 감행함.
〔출처: 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일제말기 문석준의 유고」, 우송조동걸선생 정년기념 논총간행위원회. 韓國史學史硏究. 서울: 나남, 1997.〕
1910년, 11세
- 1910년 xx월xx일: 함흥군 공립 보통학교 입학.
〔출처: 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
1914년, 15세
- 1914년 xx월xx일: 보통학교 우등으로 졸업. 아버지를 따라 상경. 경성고등보통학교(전 제일고보, 후 경기중학)에 무시험으로 입학. 동창인 박헌영과 청년회관 영어과(야학)에 다녔지만 영화에 빠져 오래 다니지는 못함.
〔출처: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
1917년, 18세
- 1917년 xx월xx일: 고등보통학교 4학년 때 서모와의 불화로 서울을 떠나 함흥고보(후 함남중학)로 전학.
〔출처: 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
1919년, 20세
- 1919년 xx월xx일: 함남고보 졸업.
〔출처: 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
1920년, 21세
- 1920년 xx월xx일: 형을 따라 중국 북경으로 건너감. 형에게 중국어를 배움. 당시 지나(중국) 비행계에 이름이 높던 서사보(徐四甫, 본명 양국일)의 소개로 지나 육군성 관사인 모 조선인 집의 서생으로 들어감. 철도국원이었던 그 집 둘째아들의 번역일을 대신해주며 생활비를 벌었음. 여가 시간에는 익지영문학교(益智英文學校)를 다님. 이때부터 사회과학을 보기 시작함.
〔출처: 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
1921년, 22세
- 1921년 xx월xx일: 잠시 조선에 들어왔다가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지만 실연의 아픔을 겪게 됨. 이후 일본(동경)으로 건너 가 일본대학 사회학과에 입학. 딸 록손(祿孫) 출생 (綠孫, 祿孫, 祿媛 이름의 표기가 다 다르나, 한설야의 글에는 祿孫으로 되어 있음.)(1940년 20세를 기준으로 추정)
〔출처: 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한설야, 「처녀장편의 여히로인」, 신동아, 1936.07〕〔한설야, 「아비의 심경」, 여성, 1939.04. 〕〔채정근, 「한양자상범 공판기」, 여성, 1940.02.〕
1923년, 24세
- 1923년 xx월xx일: 관동대지진으로 학교를 휴학. 처녀장편을 썼으나 발표하지 않고 태워버림. 가을에 조선으로 돌아와 그해 겨울 북청고보학슬강습소(대성학교) 강사가 됨. 「그날밤」 외 여러 단편을 발표함.
〔출처: 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
1924년, 25세
- 1924년 06월xx일: 북청사건(북청 시민과 함흥 시민 사이에 일어난 감정적 대립)으로 북청을 떠남.
〔출처: 문학과사상연구회. 한설야 문학의 재인식. 소명출판, 2000.〕
1925년, 26세
- 1925년 xx월xx일: 부친 별세. 집안 파산. 가족들을 데리고 만주 무순으로 이주. 프로에술로 전회하여 여러 편의 일본어 단편을 만주일일신문에 발표함.
〔출처: 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 - 1925년 09월27일: 아들 형원(炯元) 출생. (아들 형원의 본적: 함경남도 함흥시 성천리 1반 94번지).
〔출처: 김일성대학교원이력서〕
1926년, 27세
- 1926년 03월xx일: 동아일보 함흥지국 기자 발령.
〔출처: 동아일보, 1926.03.06. 〕 - 1926년 09월xx일: 동아일보 함흥지국 기자 사임.
〔출처: 동아일보, 1926.09.10. 〕
1927년, 28세
- 1927년 xx월xx일: 봄에 만주에서 서울로 돌아와 예맹(카프)에 가입하여 기관지 <예술운동> 속간에 힘썼으나 잘 안 됨.
〔출처: 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
1928년, 29세
- 1928년 xx월xx일: 고향 함흥에 돌아와 생계를 위해 조선일보지국을 1년 간 경영함.
〔출처: 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 - 1928년 06월xx일: 동아일보 함흥지국 기자로 발령.
〔출처: 동아일보 1928년 6월 18일. 〕
1931년, 32세
- 1931년 xx월xx일: 서울에 가서 <대조>를 속간하여 단독으로 2호를 냄.
〔출처: 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
1932년, 33세
- 1932년 xx월xx일: 조선지광사에 입사하여 <신계단> 편집을 맡아 봄.
〔출처: 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
1933년, 34세
- 1933년 xx월xx일: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학예부 편집을 봄.
〔출처: 한설야, 「나의 이력서-고난기」, 조광, 193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