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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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東夷族)

이(夷)는, 어질어 산숨(生命)을 좋아하니 잘몬(萬物)이 땅에 밑뿌리 터 나는 것이요. 그것은 크니, 하늘이 크고 땅도 크며 사람 또한 큰 것이며, 그래서 사람이 본받은 땅, 땅이 본받은 하늘, 하늘이 본받은 길, 길이 본받은 제절로(自然)이다. 닝겔, 흐르는 시선12, 2022, 아이패드

이(夷)는 동이(東夷)다. 노자 늙은이가 ‘참알줄’(道德經)을 세상에 드러낸 때를 기원전 6세기쯤으로 보면, 당시 동이족(東夷族)이 살던 땅과 고조선의 영토가 맞물린다. 동이족은 지금의 강소성, 산동성, 하북성,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그리고 한반도에 흩어져 살았다. 특히 산동성과 하북성 일대는 오래전부터 하(夏)․은(殷)․주(周)의 땅이었다. 그들도 동이였다. 그들의 후예는 고구려로 이어진다. 놀랍게도 노자 늙은이는 산동성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그도 동이족의 후예?

‘동이열전(東夷列傳)’: 「왕제(王制)」에 이르기를 ‘동방(東方)을 이(夷)라 한다’고 하였다. 이(夷)란 근본(根本)이다. 이(夷)가 어질어서 생명(生命)을 좋아하므로 만물(萬物)이 땅에 근본하여 산출(産出)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천성(天性)이 유순하여 도리(道理)로서 다스리기 쉽기 때문에 군자국(君子國)과 불사국(不死國)이 있기까지 하다.

‘고구려(高句驪)’: 고구려는 요동(遼東)의 동쪽 천리 밖에 있다. 남쪽은 조선(朝鮮)과 예맥(濊貊), 동쪽은 옥저(沃沮), 북쪽은 부여와 접경하여 있다. 그 나라의 넓이는 방 2천리인데,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으며 사람들은 산골짜기에 의지하여 산다. 농사지을 땅이 적어서 힘껏 농사를 지어도 자급하기 부족하기 때문에 그 습속(習俗)에 음식을 아낀다. 그러나 궁실은 잘 지어 치장한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부여의 별종이라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칙이 많이 같다. 무릎을 꿇고 절을 할 적에 한 쪽 다리는 펴서 끌며, 걸을 때는 모두 달음박질을 치듯 빨리 간다.

또 후한(後漢) 시대의 허신(許愼, 58년 무렵~147년 무렵)이 편찬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夷)는 “평야. 종대종궁. 동방지인야.(平也. 从大从弓. 東方之人也.)”로 적었다. 이때 평(平)은 ‘고름’(平平)보다는 ‘바로잡음’(平定)의 뜻에 가깝다. 풀면 “어지러움을 바로잡는다. 큼을 따르고 활을 따른다. 동쪽의 사람이다.” 그런 뜻이다. 바로 이어서 주(注)를 달았다. 주의 앞부분이다.

“무릇 사람은 그가 사는 땅의 성질을 닮는다. 오직 동이만이 큼을 따랐으니 큰사람(大人)이다. 동이의 풍속은 어질고, 어진이가 오래 살며,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다. 요컨대 하늘은 크고 땅도 크며 사람 또한 크다. 큰 그림은 사람의 꼴을 본 땄다. 이(夷)의 옛 글씨는 대(大)와 같다. 즉 하(夏)나라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하나라 사람은 중국사람이다.”(葢在坤地頗有順理之性. 惟東夷从大. 大人也.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 按天大,地大,人亦大. 大象人形而夷篆從大. 則與夏不殊. 夏者,中國之人也.)

여기서 중국은 황하 유역을 가리킬 뿐 나라이름이 아니다. “중국, 경사야(中國, 京師也)”라 했듯이 수도를 말하기도 하고, 또 중원을 차지한 나라를 뜻하기도 했다. “하나라 사람은 중국사람”이라는 뜻은 하나라가 중원을 차지했기 때문에 그리 쓴 것이다. 주(周)나라부터는 황하(黃河)에서 ‘하’, 낙양(洛陽)에서 ‘낙’을 딴 ‘하락’(河洛) 지역을 중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신해혁명 이후 1912년에 한, 만, 몽, 장, 회족의 다섯 민족을 하나로 묶어 ‘중화’(中華)라 하고 중화민국을 세웠다. 이후 ‘중국’은 처음으로 나라이름이 되었다.

사마천[司馬遷, BC.145년(혹은 BC.135년)~BC.87년(추정)]이 쓴 <사기(史記)>에 노자 늙은이를 “초(楚)나라 사람으로 주(周)나라에서 도서관장을 지냈다”고 적고 있으나, 초와 주의 영토는 동이족의 영토와도 겹치니 <설문해자>의 내용을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에 밝힌 동이는 ‘참알줄’(道德經)의 사상과 아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노자 늙은이가 동이족이었거나, 아니라면 동이사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게 확실하다.

동이열전에 “이(夷)란 근본(根本)이다. 이(夷)가 어질어서 생명(生命)을 좋아하므로 만물(萬物)이 땅에 근본하여 산출(産出)되는 것과 같다.”하였고, 설문해자주에 “요컨대 하늘은 크고 땅도 크며 사람 또한 크다.”고 하였다. 그 뒤로 길게 이어지는 설명에는 군자가 동이사람과 같고, 그는 바르고 떳떳하며, 온씨알(百姓)을 불쌍히 여겨 늘 고민하는 걸로 나온다. 노자 늙은이 25월에 “그러므로 길이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며 임금 또한 크다.”는 내용이 있다. 그로부터 사람이 본받은 땅이요, 땅이 본받은 하늘이요, 하늘이 본받은 길이요, 길이 본받은 제절로(自然)를 갈무리해 낸다. 말과 뜻과 사상이 같지 않은가!

조금 다른 이야기 하나를 더 꺼내 보자. 이번엔 꿍꿍이다. 이(夷)는 큰 활이니 그로부터 궁궁을을(弓弓乙乙)이 비롯한 게 아닐까? 이(夷)에서 궁궁을을이요, 궁궁을을에서 약(弱)이 아닐까? 노자 늙은이는 36월에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긴다”(柔弱勝剛强)고 했잖은가. 수운은 또 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에 “송송가가(松松家家) 알았으되 이재궁궁(利在弓弓) 어찌알꼬 천운이 둘렀으니 근심말고 돌아가서 윤회시운(輪廻時運)구경하소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라 했고, 소태산은 “궁궁은 무극(無極) 곧 일원(一圓)이 되고, 을을(乙乙)은 태극(太極)이 되나니 곧 도덕의 본원을 밝히심이요, 이러한 원만한 도덕을 주장하여 모든 척이 없이 살면 이로운 것이 많다는 것이니라.”고 했다.


한국에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21(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에서 거행된다.

이천 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徐靖),우복야 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徐嶙), 평장사 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대구달성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徐寶 연성군(連城君)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중화 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명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진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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