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례
관례 (冠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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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관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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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冠禮 |
유형 | 의례 |
관련개념 | 가례 |
정의
관(冠)을 씌워주면서 성인으로 인정하는 의례로, 오늘날의 성인식이다. 부모와 사회의 보호가 필요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간 즉 미성년자(未成年者)에서 이제 완성된 인간 즉 성인(成人)으로의 변화를 일정한 의례형식에 담아낸 것이다.
내용
‘관례’의 다른 표현
관례는 어린아이의 머리에 성인을 상징하는 관을 씌워주는 의식이 핵심이다. 따라서 ‘원복(元服)을 더한다’는 의미로 ‘가원복(加元服)’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원복(元服)은 ‘으뜸이 되는 복식’을 의미한다. 사람의 복식에서 으뜸이 되는 것은 머리에 쓰는 수복(首服)이다. 때문에 수복 즉 관을 씌우면서 성인으로 인정하는 의례를 ‘가원복’으로 표현하고, 아직 관례를 올리지 않은 경우 ‘미가원복(未加元服)’으로 표현한다. 성인을 상징하는 관은 왕실에서 익선관(翼善冠)], 원유관(遠遊冠), 면관(冕冠)이고, 미성년자가 쓰는 관은 공정책(空頂幘)이다.
관례의 등장인물과 복식
관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장차 관을 쓸 사람’ 즉 ‘장관자(將冠者)’인 어린아이와 이 아이에게 관을 씌워주는 역할을 맡은 빈(賓)이다. 또 장관자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주인(主人)이 되고, 관례를 진행할 때 옆에서 의례 집행을 돕는 객(客) 혹은 찬자(贊者) 등이 있다. 장관자는 처음 관례 장소에 나올 때 입는 초출복(初出服)은 어린아이로서의 복식이고, 관례를 진행하면서 삼가복(三加服)을 차례대로 갈아입는다. 빈, 주인, 찬자 등 주요 참여신분은 모두 조복(朝服)을 입고, 다른 신하들은 흑단령(黑團領)을 입는다.
관례의 절차
관례의 본의식은 아이에게 삼가례(三加禮)를 행한 후 새로운 이름인 '자(字)'를 지어주는 것으로 구성된다. 구체적으로, 왕실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왕세자관의(王世子冠儀)」에 의하면 고종묘(告宗廟)-초가(初加)-재가(再加)-삼가(三加)-초례(醮禮)-명자례(命字禮)-회빈객(會賓客)-조알례(朝謁禮)의 순서로 진행하고, 사가(私家)에서는 고우사당(告于社堂)-계빈(戒賓)-진설(陳設)-시가(始加)-재가(再加)-삼가(三加)-초례(醮禮)-관자(冠字)-현우존장(見于尊長)의 순서로 진행한다. 왕실과 사가의 절차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먼저 종묘나 사당에 관례를 거행한다는 사실을 고하고, 이어서 본의식이 삼가례 거행 및 아이에게 예주(醴酒)를 주고 자(字)를 지어주는 것으로 진행되며, 의식이 끝난 후 빈과 찬 등에게 예를 갖춰 감사를 표하고 아이가 왕이나 집안 어른을 알현한다.
관례의 상징
관례의 주인공은 의례 장소에 나올 때 어린아이의 복식을 입고, 그 후 삼가례삼가례(三加禮)를 통해 성인의 관과 옷을 입히는데 초가에서 삼가로 가면서 점차 높은 등급의 복식을 착용시킨다. 특히 왕이나 왕세자는 삼가복으로 그들의 특권적 신분을 드러낼 수 있는 복식인 익선관복(翼善冠服), 원유관복(遠遊冠服), 면복(冕服)을 쓴다. 이렇게 삼가례에서 점차 높은 등급의 복식을 착장시키는 것은 어린아이가 점차 성인이 되어간다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고, 그 덕(德)이 점차 진전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삼가례 후 자(字)를 지어주는 것은 아이가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처음 받은 이름인 명(名)을 존중하기 위해서이다. 자(字)를 받고 나면 부모나 스승은 명(名)을 부를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字)를 부른다. 또 자(字)를 받은 사람도 왕이나 부모 앞에서는 본명을 말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자(字)를 말한다.
관례물품 진설(陳設)
관례 거행에 필요한 물품은 관례 복식과 예주(醴酒) 등이다. 관례 복식은 아이의 머리를 빗겨서 상투를 튼 후 묶을 때 사용할 빗과 끈, 삼가례에 쓸 초가복(初加服), 재가복(再加服), 삼가복(三加服)이다. 빗은 즐(櫛), 상투를 묶는 끈은 총(總)이라 한다. 왕이나 왕세자의 초가복은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 재가복은 원유관(遠遊冠)에 강사포(絳紗袍), 삼가복은 면관(冕冠)에 장복(章服)이다. 관례장소는 세 구역으로 나뉜다. 장관자가 관례장소에 나오기 전에 대기하거나 옷을 갈아입는 동쪽 방 즉 동서(東序), 빈(賓)이 아이에게 관을 씌워주는 장소인 당(堂), 자(字)를 지어주는 정(庭)이다. 동서에는 빗과 끈, 삼가에 입을 옷인 곤룡포, 강사포, 면복 상의와 면복 하상, 예주 등을 둔다. 삼가에 쓸 익선관, 원유관, 면관은 정(庭)에 두는데, 조선후기 왕세자 관례를 그린 <수교도(受敎圖)>(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에는 정의 위쪽인 섬돌에 두었다.
초출(初出)과 삼가례(三加禮)
삼가례(三加禮)는 관례의 핵심 의식이다. 광의로는 초가(初加=始加), 재가(再加), 삼가(三加)를 통칭해서 삼가례라 하고, 협의로는 삼가의 마지막 의식을 삼가례라 한다. 아이의 머리에 관을 덧씌워주기 때문에 ‘가(加)’라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동쪽 방 즉 동서(東序)에 대기하고 있다가 의례가 시작되면 관례 장소인 당(堂)으로 나오는데, 이를 초출(初出)이라 한다. 당에는 빈, 주인, 찬자 등이 대기하고, 아이가 동서에서 나오면 초가례(初加禮)를 행한다. 삼가에 쓸 관은 모두 정(庭)에 진설하는데, 초가례를 거행할 때가 되면 찬자가 초가관(初加冠)을 집어 올려주고 빈은 당 아래로 한 계단을 내려와 관을 받아서 당에 올라 아이에게 씌워준다. 초가관을 쓴 아이는 동서로 들어가 초가복(初加服)을 입고 나온다. 이어 재가례(再加禮)를 행한다. 찬자가 재가관(再加冠)을 집어 올려주고 빈은 두 계단을 내려와 관을 받아서 아이에게 씌워주면, 아이는 동서로 들어가 재가복(再加服)을 입고 나온다. 이어 삼가례를 행한다. 찬자가 삼가관(三加冠)을 집어 올려주고 빈은 세 계단을 내려와 관을 받아서 아이에게 씌워주면, 아이는 동서로 들어가 삼가복(三加服)을 입고 나온다.
초출복(初出服)
관례에서 장관자(將冠者) 즉 관례를 할 어린아이는 동쪽 방 즉 동서(東序)에 대기하고 있다가 의례가 시작되면 관례 장소인 당(堂)으로 나오는데, 이를 초출(初出)이라 한다.
아이의 초출복은 이제까지 미성년자로서 입었던 복식이다. 『국조오례의』 「왕세자관의(王世子冠儀)」에서 왕세자의 초출복으로 시복(時服)을 입는다고 하였고, 시복은 ‘평상시의 복식’을 의미한다. 왕이나 왕세자의 평상시 복식은 익선관에 곤룡포이므로, 조선전기에는 익선관과 곤룡포를 초출복으로 썼다. 그러나 익선관복은 관례의 초가복으로 사용하는 복식이다. 따라서 조선후기에 예학의 발달과 함께 익선관복을 초출복으로 사용할 경우 관례의 상징인 ‘성인의 복식을 갈아입음으로써 점차 성인으로써의 덕을 높여간다’는 의미를 형상화할 수 없음에 이의가 제기된다. 이로 인해 곤룡포 대신 직령(直領)이나 도포(道袍)를 입도록 바뀌고, 관모도 현종이 왕세손으로 책봉되던 1649년에 미성년 왕자의 관모로 공정책(空頂幘)을 새로 만들게 된다. 이후 조선말기까지 초출복은 쌍동계(雙童髻)에 공정책을 쓰고, 직령이나 도포를 입는다. 쌍동계는 어린아이가 정수리 양쪽에 트는 쌍상투이다. 그 모양이 동물의 뿔[角]과 같고, 밑동을 총(總)이라는 끈으로 묶기 때문에 ‘총각(總角)’이라고도 한다.
관례 시기
관례를 거행하는 시기는 고례(古禮)에서 20세 약관(弱冠)의 나이로 설정했다. 조선에서는 15~20세 사이에 치르고, 말기로 가면서 12세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조선왕실에서는 후기로 가면서 조혼(早婚)이 성행하였는데, 왕자나 왕녀의 부마는 혼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관례를 먼저 치렀다. 순종이 왕세자 신분으로 혼례를 올릴 때의 사례를 보면, 신부 재간택(再揀擇)과 삼간택(三揀擇) 사이에 관례를 거행하였다. 한편 여자도 관례 즉 계례(笄禮)를 거행하는데, 여자의 관례는 허가(許嫁)하면 행한다. 허가의 시점은 납징(納徵)을 끝냈을 때이다. 납징 즉 납폐(納幣)를 마치면 신부는 계례를 행한다. 조선왕실에서는 조혼으로 인해 10~11세 즈음에 먼저 혼례를 올린 후 15세를 즈음하여 첫 생리를 하면 날을 잡아 관례를 올리고, 며칠 후 신랑과 합방을 올렸다. 즉 조선후기 왕실에서 여자의 관례는 합방을 의미한다.
삼가복(三加服)
삼가복(三加服)은 관례의 삼가례(三加禮)를 거행할 때 착용하는 복식이다. 삼가례는 관례의 핵심 의식으로 초가(初加=始加), 재가(再加), 삼가(三加)를 거치면서 미성년자인 장관자에게 성인의 관과 옷을 갈아입히는 의식이다. 조선왕실에서 왕, 왕세자, 왕세손이 초가례에 쓴 초가복은 '익선관복' 즉 익선관과 곤룡포이고, 재가복은 '원유관복' 즉 원유관과 강사포이며, 삼가복은 '면복' 즉 면관과 면복 상의와 면복 하상이다. 익선관은 모두 같은 색과 형태이다. 곤룡포는 왕이 대홍색이고, 왕세자와 왕세손은 아청색(흑청색)이다. 왕과 왕세자의 곤룡포는 가슴, 등, 양쪽 어깨에 총4개의 둥근 용보(龍補)를 부착하고, 왕세손은 가슴과 등에만 네모난 용보를 부착한다. 원유관은 왕 9량(梁), 왕세자 8량, 왕세손 7량이다. 면관은 왕이 9류(旒), 왕세자는 8류, 왕세손은 7류이고, 장복은 왕이 9장(章), 왕세자 7장, 왕세손 5장이다. 왕의 9장복(구장복)은 용(龍), 산(山), 화(火), 화충(華蟲), 종이(宗彛), 조(藻), 분미(粉米), 보(黼), 불(黻) 등 9종의 무늬를 면복 상의와 면복 하상에 표현한다. 왕세자의 7장복(칠장복)은 용과 산을 제외한 나머지 7종의 무늬를 쓰는데, 상의에 화부터 종이까지 3장을 쓰고 하상에 나머지 4장을 쓴다. 왕세손의 5장복(오장복)은 종이부터 불까지 5종의 무늬를 쓰는데, 상의에 종이, 조, 분미를 쓰고 하상에 보와 불을 쓴다.
왕실여자의 관례[계례]
여자들의 관례는 머리를 쪽찌어서 비녀를 꽂기 때문에 ‘계례(笄禮)’라고도 한다. 여자의 관례는 사가(私家)에서는 삼가례(三加禮)를 모두 거행하지 않고 한번만 비녀를 꽂는 '단가례(單加禮)'로 행했지만, 왕실여자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삼가례를 행하고 궁녀만 단가례를 했다. 여자의 관례는 허가(許嫁) 즉 납폐(納幣))를 끝내면 한다. 조선왕실에서는 조혼으로 인해 10~11세 즈음에 먼저 혼례를 올린 후 15세를 즈음하여 첫 생리를 하면 날을 잡아 관례를 올리고, 며칠 후 신랑과 합방을 올렸다. 즉 조선후기 왕실에서 여자의 관례는 합방을 의미한다. 궁녀는 20세 전후가 되면 관례를 올리고, 궁녀의 남자는 왕이므로 그들의 관례는 신랑없는 혼례가 된다.
왕실여자의 관례복
왕실여자의 관례는 삼가례(三加禮)를 행했는데, 삼가례 절차에 따른 복식에 관해서는 경빈김씨가 헌종의 간택후궁으로 궁에 들어올 때의 기록인 『정미가례일기』에 나타나있다. 초가례에는 수식(首飾) 즉 대수(大首)를 쓰고 원삼을 입었고, 재가례에는 광식을 하고 원삼을 입었으며, 삼가례에는 큰머리를 하고 원삼을 입고 봉대(鳳帶)를 둘렀다. 광식은 학자에 따라 조짐머리에 조짐칠보장식을 한 것으로 보는 견해와 어여머리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 삼가례 절차에 따른 복식은 아니지만 1887년 순종이 왕세자로 혼례를 올릴 때 왕세자빈인 순명황후의 관례복이 기록에 나타나는데, 붉은색 원삼에 송화색과 분홍색 저고리를 입고 한삼(汗衫)을 받쳐입었고, 하의는 남색 직금 스란(膝襴) 전향웃치마 아래 붉은색과 남색 치마를 입고 속에 너른바지, 단속곳, (속)바지, 속속곳을 입었으며,신은 운혜(雲鞋)를 신었다.
수교도(受敎圖)
수교도(受敎圖)는 19세기에 거행된 조선 왕세자의 관례를 의식절차에 따라 나눠서 총13폭으로 그린 그림첩이다. 관례의 주인공을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1819년 거행된 효명세자의 관례를 그린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수교도’라는 이름은 관례 당일 의식이 왕으로부터 빈(賓)이 교서(敎書)를 받아 왕세자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으로 보인다. 내용은 아래와 같이 구성된다. 왕이 빈과 찬(贊)에게 왕세자의 관례를 행하도록 명하면서 교서를 내려주는 ‘임헌명빈찬(臨軒命賓贊)’, 왕세자가 세자궁에 소속된 관원과 집사(執事)로부터 절을 받는 ‘세자수궁관집사배 (世子受宮官及執事拜)’, 세자가 2품 이상 관원의 절을 받고 답배를 하는 ‘세자여이품이상답배(世子與二品以上答拜)’, 3품 이하에게 절을 받는 ‘세자수삼품이하배(世子受三品以下拜)’, 왕세자가 사부와 빈객 등에게 절을 하는 ‘세자강계배사부빈객(世子降階拜師傅賓客)’, 왕세자가 주인(主人: 종친이 맡음)과 절을 주고받는 ‘세자여주인답배(世子與主人答拜)’, 왕세자가 교서를 받는 ‘세자수교(世子受敎)’, 왕세자가 동서(東序)로 들어가는 ‘세자승계입동서(世子陞階入東序)’, 관례 본의식인 삼가례를 거행하는 ‘삼가(三加)’, 왕세자가 예주(醴酒)를 받는 ‘세자수예(世子受醴)’, 빈이 왕세자에게 자(字)를 주는 ‘빈자세자(賓字世子)’, 왕세자가 관례 후 왕을 알현하는 ‘왕세자조알의(王世子朝謁儀)’, 관례를 집행한 빈과 객(客)을 접대하는 ‘회빈객(會賓客)’이다.
관례 전후 의례의 복식
조선왕실에서 관례 당일 의식을 거행할 때는 먼저 왕이 관례를 거행하라는 교서(敎書)를 내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왕이 교서를 내릴 때 입는 복식은 왕의 조복인 원유관에 강사포이고, 교서를 받는 주인(왕을 대신해 종친이 맡음), 빈(賓), 찬(贊) 등 신하들도 관원으로써의 백관의 조복을 입는다. 조복은 양관(梁冠)에 조복 상의와 조복 하상 차림이고, 이 외 여러 부속품을 갖춘다. 관례 후에 왕세자가 왕을 알현하는 '왕세자조알의(王世子朝謁儀)'에 왕세자는 관례의 삼가복(三加服)인 왕세자의 대례복을 입는다. 면복은 8류(旒) 면관(冕冠)에 7장문이 있는 면복 상의이다. 왕세자의 7장복(칠장복)은 화(火), 화충(華蟲), 종이(宗彛), 조(藻), 분미(粉米), 보(黼), 불(黻) 등 7종의 무늬를 상의(上衣)와 하상(下裳)에 나누어 표현하는데, 상의에 화부터 종이까지 3장을 쓰고 하상에 나머지 4장을 쓴다.
-단국대학교 전통의상학과 교수 최연우-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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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도 | 관례 | A에 B가 그려져 있다 | A ekc:depicts B |
관례 | 고유제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관례 | 임헌명빈찬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관례 | 삼가례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관례 | 초례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관례 | 명자례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관례 | 회빈객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관례 | 조알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왕 | 관례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왕비 | 관례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왕세자 | 관례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왕세자빈 | 관례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왕세손 | 관례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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