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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화는 제작연대, 시주자, 만들게 된 동기가 뚜렷할 뿐만 아니라 1관∼16관에 모두 명문이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먼저 각 관이 사각형으로 연결되는 구성이 조화롭다. 상부와 중앙부에는 1관에서부터 13관까지, 하단부에는 상배관인 14관이, 양 가장자리에는 15관인 중배관과 16관인 하배관을 배치하고 있어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의 관경16관변상도와는 구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이러한 구성의 관경16관변상도는 고려말∼조선초에 유행하였다. | 이 불화는 제작연대, 시주자, 만들게 된 동기가 뚜렷할 뿐만 아니라 1관∼16관에 모두 명문이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먼저 각 관이 사각형으로 연결되는 구성이 조화롭다. 상부와 중앙부에는 1관에서부터 13관까지, 하단부에는 상배관인 14관이, 양 가장자리에는 15관인 중배관과 16관인 하배관을 배치하고 있어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의 관경16관변상도와는 구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이러한 구성의 관경16관변상도는 고려말∼조선초에 유행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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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극락회의 아미타불좌상은 머리에 반달형의 중앙계주가 장식되어 있는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왼손의 위치는 매우 암시적이다. 왜냐하면 불상의 수인(手印)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가슴에서 배를 향해 점차 아래로 내려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승각기를 묶는 장식이 보이는 등 안정감이 넘치는 형태 묘사는 14세기 전반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화려한 채색 위로 덧그려진 금니의 선묘는 섬세하고 단정하며 유려하다. 붉은색과 부드러운 녹색, 청색에 가까운 감색·갈색, 옥색에 가까운 흰색 등 밝은 색조가 옅은 녹색을 배경으로 전면에 깔린 것은 사이후쿠지 소장 관경16관변상도와 비슷하다. 각각의 형태는 문양으로 채워지고 배경 구실을 하는 1관∼7관이 부각되었다. 붉은 해는 화면 중앙 꼭대기를 장엄하여 마치 극락을 비추는 듯하며(제1일몰관(日沒觀)), 이 아래 물(제2수관(水觀))과 금줄로 엮인 녹색의 극락땅(제3지관(地觀)), 일렬로 늘어선 보수(寶樹, 제4수관(樹觀)), 학·공작·앵무새·가릉빈가 등 극락조(極樂鳥)로 채워진 극락의 연못(제5지관(池觀)⑥)과 아미타전각의 화려함(제6총관(摠觀)), 보개(寶蓋)를 갖춘 대좌(臺座, 제7화좌관(華座觀)), 외연대를 장식하는 보수와 당(幢)도 섬세하다. 화면 중심축에 세 번 나타난 아미타삼존불 [(1)제8상관(像觀) (2)제9불색신관(佛色身觀)·제10관세음관(觀世音觀)·제11대세지관(大勢至觀) (3)제13잡상관(雜想觀)] 중 제9불색신관(佛色身觀)·제10관세음관(觀世音觀)·제11대세지관(大勢至觀)이 아미타극락회(阿彌陀極樂會)의 설법하는 아미타삼존불좌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14관∼16관(구품연못 ①②③)은 아미타불일행과 왕생자로 귀결된다. | 아미타극락회의 아미타불좌상은 머리에 반달형의 중앙계주가 장식되어 있는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왼손의 위치는 매우 암시적이다. 왜냐하면 불상의 수인(手印)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가슴에서 배를 향해 점차 아래로 내려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승각기를 묶는 장식이 보이는 등 안정감이 넘치는 형태 묘사는 14세기 전반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화려한 채색 위로 덧그려진 금니의 선묘는 섬세하고 단정하며 유려하다. 붉은색과 부드러운 녹색, 청색에 가까운 감색·갈색, 옥색에 가까운 흰색 등 밝은 색조가 옅은 녹색을 배경으로 전면에 깔린 것은 사이후쿠지 소장 관경16관변상도와 비슷하다. 각각의 형태는 문양으로 채워지고 배경 구실을 하는 1관∼7관이 부각되었다. 붉은 해는 화면 중앙 꼭대기를 장엄하여 마치 극락을 비추는 듯하며(제1일몰관(日沒觀)), 이 아래 물(제2수관(水觀))과 금줄로 엮인 녹색의 극락땅(제3지관(地觀)), 일렬로 늘어선 보수(寶樹, 제4수관(樹觀)), 학·공작·앵무새·가릉빈가 등 극락조(極樂鳥)로 채워진 극락의 연못(제5지관(池觀)⑥)과 아미타전각의 화려함(제6총관(摠觀)), 보개(寶蓋)를 갖춘 대좌(臺座, 제7화좌관(華座觀)), 외연대를 장식하는 보수와 당(幢)도 섬세하다. 화면 중심축에 세 번 나타난 아미타삼존불 [(1)제8상관(像觀) (2)제9불색신관(佛色身觀)·제10관세음관(觀世音觀)·제11대세지관(大勢至觀) (3)제13잡상관(雜想觀)] 중 제9불색신관(佛色身觀)·제10관세음관(觀世音觀)·제11대세지관(大勢至觀)이 아미타극락회(阿彌陀極樂會)의 설법하는 아미타삼존불좌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14관∼16관(구품연못 ①②③)은 아미타불일행과 왕생자로 귀결된다. | ||
− | 이상과 같은 1관~16관의 명문(도면) 외, 붉은 바탕에 은니로 쓴 화기에는 "임종시 아미타불을 만나뵈어 극락왕생하기를 원하며, 이 공덕이 누구에게나 두루 미처 모든 중생이 다함께 불도를 이루기를 기원한다"고 쓰여 있는데, 이는 관경16관변상도가 조성된 배경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구실을 한다. 이어 1323년 4월에, 내시(內侍) 서지만 등 5명이 발원하고, 강원도 낙산(落山)의 비구와 비구니 등 승려 10명(남자 2, 여자 8), 경기(京畿)의 4명(남자 2, 여자 2), 중도(中道)의 호장(戶長) 박영견(朴永堅) 등 8명(남자 4, 여자 4)이 참가하였으며, 양주(楊州)의 향도(香徒)들이 시주하였다. 이는 고려시대 아미타 신앙의 대중화를 말해주는 중요한 내용이다. | + | 이상과 같은 1관~16관의 명문(도면) 외, 붉은 바탕에 은니로 쓴 화기에는 "임종시 아미타불을 만나뵈어 극락왕생하기를 원하며, 이 공덕이 누구에게나 두루 미처 모든 중생이 다함께 불도를 이루기를 기원한다"고 쓰여 있는데, 이는 관경16관변상도가 조성된 배경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구실을 한다. 이어 1323년 4월에, 내시(內侍) [[서지만]] 등 5명이 발원하고, 강원도 낙산(落山)의 비구와 비구니 등 승려 10명(남자 2, 여자 8), 경기(京畿)의 4명(남자 2, 여자 2), 중도(中道)의 호장(戶長) 박영견(朴永堅) 등 8명(남자 4, 여자 4)이 참가하였으며, 양주(楊州)의 향도(香徒)들이 시주하였다. 이는 고려시대 아미타 신앙의 대중화를 말해주는 중요한 내용이다. |
− | 14세기 전반 경 활동한 화가이다. 1323년 일본린쇼지(隣松寺) 소장 <관경십육관변상도>를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화기를 보면, 서지만(徐智滿) · 심환(心幻) · 지탁(智鐸) · 성원(性圓) 등이 주축이 되어 발원하였고, 그 외에 20여명 이상의 향도(香徒)가 동참하였음을 알 수 있다. 1관부터 16관이 모두 묘사된 린쇼지(隣松寺)소장 <관경십육관변상도>본을 통해 볼 때, | + | 14세기 전반 경 활동한 화가이다. 1323년 일본린쇼지(隣松寺) 소장 <관경십육관변상도>를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화기를 보면, [[서지만]](徐智滿) · 심환(心幻) · 지탁(智鐸) · 성원(性圓) 등이 주축이 되어 발원하였고, 그 외에 20여명 이상의 향도(香徒)가 동참하였음을 알 수 있다. 1관부터 16관이 모두 묘사된 린쇼지(隣松寺)소장 <관경십육관변상도>본을 통해 볼 때, [[서지만]]의 화풍은 적색(朱)의 사용에 적극적이고 그 외에 군청 · 녹청 · 백색 안료를 적절히 배색하였으며, 윤곽선을 비교적 뚜렷하게 그리는 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서지만]]은 직급이 내시(內侍)이고 더구나 화기를 수정한 흔적이 뚜렷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재로서는 화승으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
2022년 9월 27일 (화) 08:11 판
서지만 (徐智滿) (내시(內侍). 관경16관변상도)
고려 내관. 화가
14세기 전반 경 활동한 화가이다. 1323년 일본린쇼지(隣松寺) 소장 <관경십육관변상도>를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화기를 보면, 서지만(徐智滿) · 심환(心幻) · 지탁(智鐸) · 성원(性圓) 등이 주축이 되어 발원하였고, 그 외에 20여명 이상의 향도(香徒)가 동참하였음을 알 수 있다.
1관부터 16관이 모두 묘사된 린쇼지(隣松寺)소장 <관경십육관변상도>본을 통해 볼 때, 서지만의 화풍은 적색(朱)의 사용에 적극적이고 그 외에 군청 · 녹청 · 백색 안료를 적절히 배색하였으며, 윤곽선을 비교적 뚜렷하게 그리는 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서지만은 직급이 내시(內侍)이고 더구나 화기를 수정한 흔적이 뚜렷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재로서는 화승으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21(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에서 거행된다.
이천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徐靖),우복야 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徐嶙), 평장사 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대구달성 서씨(달성 서씨 대구 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徐寶 연성군)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 (남양 서씨 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중화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명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진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관경16관변상도(觀經十六觀變相圖)
이 불화는 제작연대, 시주자, 만들게 된 동기가 뚜렷할 뿐만 아니라 1관∼16관에 모두 명문이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먼저 각 관이 사각형으로 연결되는 구성이 조화롭다. 상부와 중앙부에는 1관에서부터 13관까지, 하단부에는 상배관인 14관이, 양 가장자리에는 15관인 중배관과 16관인 하배관을 배치하고 있어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의 관경16관변상도와는 구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이러한 구성의 관경16관변상도는 고려말∼조선초에 유행하였다.
아미타극락회의 아미타불좌상은 머리에 반달형의 중앙계주가 장식되어 있는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왼손의 위치는 매우 암시적이다. 왜냐하면 불상의 수인(手印)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가슴에서 배를 향해 점차 아래로 내려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승각기를 묶는 장식이 보이는 등 안정감이 넘치는 형태 묘사는 14세기 전반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화려한 채색 위로 덧그려진 금니의 선묘는 섬세하고 단정하며 유려하다. 붉은색과 부드러운 녹색, 청색에 가까운 감색·갈색, 옥색에 가까운 흰색 등 밝은 색조가 옅은 녹색을 배경으로 전면에 깔린 것은 사이후쿠지 소장 관경16관변상도와 비슷하다. 각각의 형태는 문양으로 채워지고 배경 구실을 하는 1관∼7관이 부각되었다. 붉은 해는 화면 중앙 꼭대기를 장엄하여 마치 극락을 비추는 듯하며(제1일몰관(日沒觀)), 이 아래 물(제2수관(水觀))과 금줄로 엮인 녹색의 극락땅(제3지관(地觀)), 일렬로 늘어선 보수(寶樹, 제4수관(樹觀)), 학·공작·앵무새·가릉빈가 등 극락조(極樂鳥)로 채워진 극락의 연못(제5지관(池觀)⑥)과 아미타전각의 화려함(제6총관(摠觀)), 보개(寶蓋)를 갖춘 대좌(臺座, 제7화좌관(華座觀)), 외연대를 장식하는 보수와 당(幢)도 섬세하다. 화면 중심축에 세 번 나타난 아미타삼존불 [(1)제8상관(像觀) (2)제9불색신관(佛色身觀)·제10관세음관(觀世音觀)·제11대세지관(大勢至觀) (3)제13잡상관(雜想觀)] 중 제9불색신관(佛色身觀)·제10관세음관(觀世音觀)·제11대세지관(大勢至觀)이 아미타극락회(阿彌陀極樂會)의 설법하는 아미타삼존불좌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14관∼16관(구품연못 ①②③)은 아미타불일행과 왕생자로 귀결된다.
이상과 같은 1관~16관의 명문(도면) 외, 붉은 바탕에 은니로 쓴 화기에는 "임종시 아미타불을 만나뵈어 극락왕생하기를 원하며, 이 공덕이 누구에게나 두루 미처 모든 중생이 다함께 불도를 이루기를 기원한다"고 쓰여 있는데, 이는 관경16관변상도가 조성된 배경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구실을 한다. 이어 1323년 4월에, 내시(內侍) 서지만 등 5명이 발원하고, 강원도 낙산(落山)의 비구와 비구니 등 승려 10명(남자 2, 여자 8), 경기(京畿)의 4명(남자 2, 여자 2), 중도(中道)의 호장(戶長) 박영견(朴永堅) 등 8명(남자 4, 여자 4)이 참가하였으며, 양주(楊州)의 향도(香徒)들이 시주하였다. 이는 고려시대 아미타 신앙의 대중화를 말해주는 중요한 내용이다.
14세기 전반 경 활동한 화가이다. 1323년 일본린쇼지(隣松寺) 소장 <관경십육관변상도>를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화기를 보면, 서지만(徐智滿) · 심환(心幻) · 지탁(智鐸) · 성원(性圓) 등이 주축이 되어 발원하였고, 그 외에 20여명 이상의 향도(香徒)가 동참하였음을 알 수 있다. 1관부터 16관이 모두 묘사된 린쇼지(隣松寺)소장 <관경십육관변상도>본을 통해 볼 때, 서지만의 화풍은 적색(朱)의 사용에 적극적이고 그 외에 군청 · 녹청 · 백색 안료를 적절히 배색하였으며, 윤곽선을 비교적 뚜렷하게 그리는 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서지만은 직급이 내시(內侍)이고 더구나 화기를 수정한 흔적이 뚜렷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재로서는 화승으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