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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주 사롱사(四聾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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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조가 단종으로 부터 강제로 왕위를 양위받자, [[서호(조선)|서호]](徐顥(灝). 남원부사. 정 3품. 전남도지사.차관.한성부판윤 (漢城府判尹) 정 2품. 장관)의 큰 아들인 [[서효리]](徐孝理.예롱공(豫聾公). 통훈대부(通政大夫). 정 3품. 차관)은 벼슬을 버리고,남평 본집에 돌아와 세 아우들과 사룡사를 구축하고 은퇴하여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으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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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우인 [[서효주]](徐孝宙.수롱공(隨聾公) 무공랑별제(務功郞別提) 정 7품),[[서효환]](徐孝寰.점롱공(漸聾公) 이조판서(吏曹判書). 정 2품. 장관),[[서효당]](徐孝堂. 익롱공(益聾公) 이조판서(吏曹判書). 정 2품. 장관)이 그 말을 듣고, 의리에 합당한 일이라고 여기고 역시 맏형을 따라 듣는 것을 피하는 귀머거리가 되니, 당시 마을 사람들이 사롱(四聾)이라 하였다. 또한 호도 귀머거리 롱(聾)자를 써서,예롱(豫聾),수롱(隨聾),점롱(漸聾),익롱(益聾)이라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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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월당 [[김시습]]과 추광 [[남효원]]과 송백지교를 맺고, 서로가 모여서 시를 수창한 일이 많았다. 조선 세조 4년 서기 1458년 10월 24일에 단종이 사약을 받았다. 이에 매년 10월 24일이면 단을 만들어 영월땅을 바라보며서 세 아우들과 같이 곡을 하니,당시 이를 꺼리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여러번 곤경에 당하였다. 항시 파양자(삿갓)을 쓰고, 하늘의 해를 보지 않고 살았는데, 세조가 벼슬길에 나와달라고 여러번을 불렸으나 나가지 않고, 각동리에 은거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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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롱사(四聾祠)가 있던 곳은 지금은 밭이 되어 있으나,50년 전만해도 주춧돌이 나왔다 한다. 마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하는데,호랑이가 많이 나와 유지되지 못하고 없어졌다. |
2022년 8월 15일 (월) 20:16 판
정의
고려 중기의 문신. 좌복야를 지냈다.
출생-사망 ? ~ ?
내용
이천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徐靖),우복야 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徐嶙), 평장사 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대구달성 서씨(달성 서씨 대구 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徐寶 공조전서.정3품 .장관)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 (남양 서씨 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중화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명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진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가족
시조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부총리)
2세 서필(徐弼 내의령(內議省).종 1품.국무총리)
3세 서희(徐熙 내사령(內史令).종 1품.국무총리)
나주 사롱사(四聾祠)
세조가 단종으로 부터 강제로 왕위를 양위받자, 서호(徐顥(灝). 남원부사. 정 3품. 전남도지사.차관.한성부판윤 (漢城府判尹) 정 2품. 장관)의 큰 아들인 서효리(徐孝理.예롱공(豫聾公). 통훈대부(通政大夫). 정 3품. 차관)은 벼슬을 버리고,남평 본집에 돌아와 세 아우들과 사룡사를 구축하고 은퇴하여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으셨다.
아우인 서효주(徐孝宙.수롱공(隨聾公) 무공랑별제(務功郞別提) 정 7품),서효환(徐孝寰.점롱공(漸聾公) 이조판서(吏曹判書). 정 2품. 장관),서효당(徐孝堂. 익롱공(益聾公) 이조판서(吏曹判書). 정 2품. 장관)이 그 말을 듣고, 의리에 합당한 일이라고 여기고 역시 맏형을 따라 듣는 것을 피하는 귀머거리가 되니, 당시 마을 사람들이 사롱(四聾)이라 하였다. 또한 호도 귀머거리 롱(聾)자를 써서,예롱(豫聾),수롱(隨聾),점롱(漸聾),익롱(益聾)이라 하였다.
매월당 김시습과 추광 남효원과 송백지교를 맺고, 서로가 모여서 시를 수창한 일이 많았다. 조선 세조 4년 서기 1458년 10월 24일에 단종이 사약을 받았다. 이에 매년 10월 24일이면 단을 만들어 영월땅을 바라보며서 세 아우들과 같이 곡을 하니,당시 이를 꺼리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여러번 곤경에 당하였다. 항시 파양자(삿갓)을 쓰고, 하늘의 해를 보지 않고 살았는데, 세조가 벼슬길에 나와달라고 여러번을 불렸으나 나가지 않고, 각동리에 은거하였다.
사롱사(四聾祠)가 있던 곳은 지금은 밭이 되어 있으나,50년 전만해도 주춧돌이 나왔다 한다. 마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하는데,호랑이가 많이 나와 유지되지 못하고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