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전리 유적(春川 泉田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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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일원에 위치한다. 춘천 분지의 지형은 크게 편마암을 기반으로 한 급경사 산지, 화강암 기반의 낮고 평평한 구릉지, 그리고 하천의 충적 작용으로 형성된 충적지로 분류된다. 이러한 지질·지형 분류에서 천전리 일대는 춘천 분지 내 대표적인 충적 지형 가운데 하나인 샘밭 범람원의 충적 대지에 해당한다. 천전리에 분포하고 있는 유적은 동서로 관통하는 46번 국도 부분이 미고지(微高地)이며 국도를 중심으로 양측에 분포하고 있다.

천전2리 685-7 주변에는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천전리 고인돌군이 위치하고, 고인돌군을 중심으로 동쪽 소양댐 방향 도로변을 따라 다수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천전리 121-16, 90-17, 90-19, 97-1, 97-8, 99-8, 900-1, 118-21, 78-1, 64-11 유적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소규모 택지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로, 좁은 면적의 조사이지만 천전리 일대의 청동기 시대 마을 분포와 영향권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춘천 신북 하수 종말 처리장 및 하수 관거 건설 공사 부지 내 유적, 춘천 신북읍 공병 대대-천전IC 간 도로 확·포장 부지 내 유적 등의 선형 구간 발굴 조사를 통해서 천전리 마을의 동쪽 범위가 세월교 인근의 천전리 64-11, 78-5 일대까지 이어지고 있음이 확인되었고, 서쪽으로는 충적 지대를 따라 율문리까지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천전리 1259 유적은 2002년 국도 46호선 동면-신북 간 확·포장 공사 구간에서 조사되었는데, 천전IC 교차로가 시설된 곳에 해당한다.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 집자리 1기, 청동기 시대 집자리 74기, 도랑무덤(周溝墓) 16기, 경작유구 약 11,180㎡(도랑 밭(溝狀耕作遺構): 약 3,380㎡, 소형 구덩이 군: 약 2,300㎡, 반 도랑 밭(半球狀耕作遺構): 약 5,500㎡), 함정(陷穽) 147기, 구덩이(竪穴) 260기를 비롯하여 철기~고려 시대 유구까지 총 541기가 조사되어 대규모 마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사에서 확인된 집자리는 중복 관계와 출토 유물, 내부 시설을 분석하여 크게 3단계(1~3단계)로 구분이 가능한데, 1단계는 화덕 자리가 설치되지 않는 작업 공간에 아무런 시설이 보이지 않는 무시설 단계이고, 2단계는 작업 구덩이만 설치되는 단계, 3단계는 작업공과 점토 다짐 구역이 모두 설치되는 단계이다. 1·2단계의 집자리로 판단되는 것은 A지역 가지구 남단의 3기(51·54·59호)이고 , 동서 방향으로 설치된 4·5호 도랑(溝)에 의해 구획되어 그 남쪽에만 분포한다. 3단계의 집자리는 전체에서 확인되는데 특히, A지역 가지구에서 확인된 집자리는 남단의 이른 시기 집자리와 2기의 도랑, 도랑무덤 등을 파괴하고 설치되어 시간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1단계 중 절대 연대가 확인된 것은 59호 집자리로, 출토된 목탄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서 290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90년)라는 연대가 검출되었다. 2단계의 경우 1단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으면서, 무시설의 공간에 작업 구덩이(作業孔)를 새롭게 설치한 구조이다. 유물은 민무늬의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1점만 출토되었고, 석기는 돌도끼(石斧), 턱 슴베 돌살촉(二段莖式石鏃)부리 모양 석기가 출토되었다.

3단계는 집자리의 중복 관계에서 가장 늦은 것으로, 작업 구덩이와 함께 점토 다짐 구역이 설치되어 작업 공간이 확립된 형태를 보여준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과 방형이 중심을 이루며 중심 기둥 구멍과 함께 일정한 안쪽 기둥 구멍 배치가 다수 확인된다. 화덕 자리는 점토 다짐 구역 반대편에 위치하고, 대부분 무시설식 혹은 구덩식 화덕 자리이다.

이와 같은 속성의 구조를 갖춘 집자리를 ‘천전리식 집자리’라 명명하였으며, 관련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유물의 출토 양상을 살펴보면 토기류는 구멍무늬 토기(孔列文土器)가 감소하고 민무늬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석기류는 돌도끼와 외날 돌도끼(片刃石斧), 기둥 모양 돌자귀(柱狀片刃石斧)는 모든 형태가 확인되며, 홈자귀(有溝石斧)는 3단계 집자리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의 대부분이 이 단계에 출토되고, 자루 간돌검(有柄式磨製石劍)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반달 돌칼은 배 모양(舟形)과 물고기 모양이 출토된다. 이 단계의 절대 연대가 검출된 것을 종합하면 기원전 8~6세기로 판단되고 하한은 좀 더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

청동기 시대 무덤으로는 도랑무덤과 파괴된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16기가 확인된 도랑무덤은 고인돌에 앞서 채택되었던 이른 시기의 무덤으로 돌널(石棺)매장 주체부로 한다. 도랑무덤은 인근 강원도의 홍천 철정리, 양구 고대리, 정선 아우라지 유적을 비롯해 사천 이금동, 진주 남강 옥방 8지구 유적에서 조사된 것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의 기원과 계통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고인돌은 도랑무덤을 파괴하고 형성된 집자리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청동기 시대의 시기에 따른 취락과 매장 공간의 변화상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도랑 밭(球狀耕作遺構)은 경작 방식과 재배 작물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 구덩이군과 함께 B지역에서는 가장 이른 단계의 유구로 추정되는데,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기 때문에 명확한 시기를 설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들 유구를 파괴하고 함정이 조성되어 하한은 최소한 함정의 연대로 보거나 이보다 이른 것으로 조사 당시 판단하였다. 이후, 중도동 유적에서 동일한 형태의 도랑 밭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단계 집자리 보다 빠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어 천전리 유적의 도랑 밭 역시 시기가 상향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반 도랑 밭(半球狀耕作遺構)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으며, 다른 유구는 물론 도랑 밭과 소형 구덩이군과의 관계도 명확치 않다. 다만, 전체적인 토층 양상에서 유구 폐기 이후에 철기 시대로 판단되는 1호 수로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보다는 앞선 철기 시대의 이른 시기나 청동기 시대로 소급될 가능성이 있으며, OSL을 이용한 연대 측정에서 1900±100 BP의 값이 측정되기도 하였다.

B지역의 함정은 구상 경작유구를 파괴하며 조성하였고, 덧띠 토기(粘土帶土器)와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는 구덩이보다 앞서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B지역 56호와 129호 함정에서 수습된 시료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각각 244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590년), 253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650년)로 도출되었다.

한편, 천전리 121-16 유적에서는 돌 깐 돌 두름식 화덕 자리(石床圍石式爐址)와 구덩식 화덕 자리를 설치한 집자리에서 돋을띠무늬 토기,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비뚠 문살무늬 토기(斜格字文土器), 돌기 돋을띠무늬 토기(瘤狀突帶文土器) 등이 출토되어 천전리 일대에도 미사리 유형의 집자리가 분포하고 남아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121-16 및 118-21 유적에서 확인된 소형 돌널무덤 등 다양한 무덤은 마을 내 무덤 연구에 좋은 사례이다.

천전리 121-23 유적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 34기가 확인되었으며, 방형 집자리에서 민무늬 토기와 함께 청동 투겁창(銅矛)이 출토되기도 하여 랴오닝식 동검(遼寧式銅劍), 청동 도끼(銅斧)가 출토된 중도동 유적 집자리와 함께 북한강 유역 청동기 시대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