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가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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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리마 | |
| 加里亇 | |
| ckid | costume0742 |
|---|---|
| 한글 | 가리마 |
| 한자 | 加里亇 |
| 영문(음역) | Ga-ri-ma |
| 영문(의미) | Woman’s headdress |
| 분류 | 관모 및 쓰개 |
| 성별 | 여 |
| 시대 | 조선 |
| 연령 | 성인 |
| 신분 | 기녀, 의녀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가리마】 | |
정의
- 조선시대 부녀자들이 쓰던 납작한 책갑형태의 쓰개
- Woman’s squared headdress during the Joseon period
해설
검은색이나 혹은 자색 비단의 전폭(全幅) 2척 2촌을 반으로 접어서 그 사이에 두꺼운 종이를 넣어 납작하게 만들어 이마에서 머리를 덮어 뒤로 드리우게 착용한다. 머리 위 앞가르마를 덮는다는 뜻의 차액(遮額)을 우리말로 풀이한 것이며 한자로는 다시 가리마의 음을 차용하여 ‘加里亇’ 혹은 加里丫’ 라고도 적는다. 『정조실록(正祖實錄)』12년(1788) 10월 3일 신묘(辛卯) 기록에, 각 궁방(宮房)의 무수리[水賜里]·내의녀(內醫女)·침선비(針線婢)와 각 영(營)·읍(邑)의 기녀(妓女)들은 머리를 땋아 위에 얹고 그 위에 가리마를 착용하도록 하였으며, 재료로 내의녀는 모단(冒緞)을, 그 외에는 검은 삼승포(三升布)를 사용하도록 하였다.『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별집(別集) 권13 정교전고(政敎典故)에 광해군 중년 이후로 족두리(足頭裏)를 사용하면서 가리마의 제도는 없어졌다고 하였으나, 신윤복(申潤福)의 「청금상연(聽琴賞蓮)」과 19세기로 추정되는 작자미상의 풍속화에서도 전모(牋帽) 아래에 가리마를 착용한 모습이 있는 것을 볼 때 조선후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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