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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실 정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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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5월 27일 (목) 02:33 판 (초고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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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실 정려각
무실 정려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무실 정려각
한자 務實 旌閭閣
주소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470-43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48호
지정(등록)일 1984년 5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무실 정려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조선 인조(仁祖) 때 류성(柳城)의 부인인 의성김씨의 정절(貞節)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김씨는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딸이며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여동생으로 24세에 남편이 죽자 손수 머리를 자르고 3년간 무덤을 지키다가, 단식 끝에 자결하였다. 그 후 인조 13년(1635)에 나라에서 열녀비(烈女碑)를 내렸다.

이 건물은 단칸이며 사각기둥을 세운 홑처마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단청을 하지 않고 별다른 장식이 없어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을 준다.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88년 이 곳으로 이건하였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유성(柳城)의 부인인 의성김씨의 정절(貞節)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각이다.

김씨는 청계(靑溪) 김진(金璡,1500~1580)의 딸이며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의 여동생이다.

24세에 남편이 죽자 머리카락을 자르고 3년간 무덤을 지키다가 단식 끝에 자결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의성김씨의 열행을 높이 평가하여 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조선 인조 13년(1635)에 나라에서 정려각이 건립되었고, 1988년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현재의 터로 옮겨 세웠다. 의성김씨의 두 아들 유복기(柳復起,1555~1617), 유복립(柳復立, 1558~1593)은 무실의 가계를 이어 오늘날의 ‘무실류씨’를 있게 하였다.

사각기둥의 단칸건물이며 서까래로만 된 홑처마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단청을 하지 않고 별다른 장식이 없어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을 준다. 안에 있는 비석에는 ‘절부고유학유성처문소김씨지각(節婦故幼學柳城妻聞韶金氏之閣)’이라고 새겨져 있다


※ 성씨 柳의 한글표기를 ‘유’로 통일했음. 논의가 필요함.
※ 의성김씨와 유성의 생몰년 확인불가

초고 수정

이 정려각은 류성(柳城, 1533~1560)의 부인 김옥정(金玉貞, 1536~1563)의 정절(貞節)을 기리며 내려진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김옥정은 의성김씨로, 조선시대의 학자 청계 김진(靑溪 金璡, 1500-1580)의 딸이다. 그녀의 남편 류성은 19세 때 김옥정과 결혼하면서 1550년 무렵 의성김씨의 집성촌인 천전리에 터전을 잡고 살게 되어 이 마을의 전주류씨(全州柳氏) 입향조가 되었으나, 28세의 나이로 일찍 죽었다.

김씨는 남편이 죽자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삼년상을 치렀으며, 삼년상을 마친 후 어린 두 아들을 동생 김성일(金誠一, 1538-1593)에게 맡긴 후 단식하다가 자결하였다.

이후 그녀의 행적을 높이 평가한 조정에서 조선 인조 13년(1635) 정려(旌閭)를 내리고 비석과 정려각을 함께 세우도록 했다.

건물은 단청이나 별다른 장식이 없는 작은 규모로,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을 준다.

안에 있는 비석의 앞면에는 ‘절부고유학유성처문소김씨지각(節婦故幼學柳城妻聞韶金氏之閣)’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그녀의 언행이 기록되어 있다.

전주류씨 집성촌인 안동 임동면 무실마을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인해 1988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 의성김씨의 두 아들 류복기(柳復起,1555~1617), 류복립(柳復立, 1558~1593)은 가계를 이어 오늘날의 ‘무실류씨’가 있게 하였다.
  • 그녀의 열행은 류성의 후손 양파(陽坡) 류관현(柳觀鉉)의 종가에 전하는 「가세영언(家世永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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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무실정려각,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791 -> 의성김씨는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딸이면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누이로, 24세에 남편 상을 당하자 손수 삭발을 하고 남편 무덤을 3년간 지킨 후 단식 끝에 자살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의성김씨의 열행을 높이 평가하여 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열부 의성김씨의 두 아들 류복기(柳復起), 류복립(柳復立)은 무실의 가계와 문한(文翰)을 이어 오늘날의 ‘무실류씨’를 있게 하였다. 의성김씨의 열행은 양파(陽坡) 류관현(柳觀鉉)의 종가에 전하는 「가세영언(家世永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무실 정려각은 1635년(인조 13) 류성의 처인 의성김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원래 전주류씨 집성촌인 안동의 무실마을에 있었으나 1988년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현재 위치인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로 이건되었다.
  •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조선시대 안동 양반家의 네 여인, 영남일보, 2020.10.30.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01030010003360 -> 김옥정은 임하 내앞(川前) 의성김씨 대종가 김진의 큰딸이자 학봉 김성일의 누이다. 영주에 사는 전주류씨 총각과 혼인해 친정 농장이 있는 무실(수곡)에 세거했다. 어린 아들 둘을 남기고 남편이 요절하자 김옥정은 친정아버지에게 자손이 번창할 묘자리라고 알려진 터를 달라고 간청해 얻어냈고 무실류씨 후손은 크게 발복했다고 한다. 3년상을 마친 뒤 어린 두 아들을 동생 김성일에게 맡겨 시댁 가문의 앞날을 부탁하고 단식, 자결했는데 그녀 나이 28세였다. 조정에서는 김옥정의 열행을 높이 평가해 1635년 정려(旌閭)를 내려 비각을 세웠고 비석 뒷면에 언행을 기록해 열부의 뜻을 새겼다. 이 비각이 수곡에 있는 '의성김씨 무실정려각'으로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두 아들은 외삼촌 학봉의 가르침으로 일문을 세웠고 어머니 뜻을 가훈으로 기렸다. 큰아들은 임진·정유 양란에 공을 세워 가문을 빛냈고, 작은아들은 학봉을 따라 의병이 되어 왜적과 싸우다가 진주성 2차 전투에 순국했다. 무실입향 100년 만에 증손자 류지가 장원급제하고 경주부윤에 이르자 김옥정은 숙인(淑人)으로 추증되었다. 대과 급제자가 연이어 나오고 후손이 번창해 영남세가로 우뚝 섰고 특히 문집 발간 후손이 100여 명이 되어 '글구덩이 집안'이라 했다. 후손으로 퇴계정맥을 이었다는 류치명을 비롯해 구한말 류인식, 류필영, 류림이 독립운동가로 큰 족적을 남겼다.
  • 전주류씨, 전주류씨 22세손 류병훈의 사랑방,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hyuni1121/10155916854 -> 9세 묵계공파 용인 입향기 ; 묵계공(류복립)의 자(字)는 군서(君瑞), 호는 묵계(墨溪)이며,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아버님 자고공(류성, 柳城)과 어머님 의성김씨(김옥정, 金玉貞)사이에서 명종13(1558)년 7월 21일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 임당 묘소(林塘墓所) 가) 부장자(附葬者) (1) 柳 城[사복시정(司僕寺正)] (1533~1560) [配는 의성김씨 김옥정(金玉貞)-학봉(鶴峰) 선생의 누님]
  • 전주류씨 박실[朴谷] 수정재고택, 전주류씨 22세손 류병훈의 사랑방,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hyuni1121/221379694810 -> 무실 정려각 ; 창건 1635년, 이건 1988년 전주류씨 수곡파 입향조 증사보시정 류성 (1533〜1560)의 부인 의성김씨 김진의 딸 김옥정(1536〜1563)의 정렬貞烈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임동면 무실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1988년에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 무실정려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9120 -> 무실은 수곡리를 지칭한다. 400여 년 전 전주유씨(全州柳氏) 수곡파(水谷派)의 파시조인 인의공(引儀公) 유선(柳善)의 아들 유성(柳城)이 터를 잡았다. 입향조 유성은 처음 낙향한 아버지와 영주에 살면서,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천전동(내앞)의 청계(淸溪)김진(金璡)의 사위가 되어 수곡에 입향하였다. 이 일대에 거주하는 전주유씨를 흔히 ‘무실유씨’라고도 한다. 무실정려각은 입향조 유성의 처 의성(義城)김씨의 정열(貞烈)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인조 13년(1635)에 세운 비각이다. 열부 김씨는 남편이 28세로 사망하자 함께 죽고자 하였다. 그러나 젖먹이 두 자식을 생각하여 자결을 중단하고 삭발한 뒤 조석으로 상식(上食)을 드리면서 냉방에서 침식하는 가운데 사계절 삼베옷(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삭망(朔望)마다 10여리 떨어진 임당(林塘)에 찾아가 ‘버선’ 한 켤레씩 남편의 묘 앞에 묻으며 3년간 시묘(侍墓)로서 정열을 다하였다. 삼년상을 마친 뒤 바로 단식을 시작하여 자결하였는데, 나이 27세였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그의 열행(烈行)을 높이 평가한 임금께서 정려를 내려 비각을 세웠다. 비문은 ‘節婦故幼學柳城妻聞韶金氏之閣(절부고유학유성처문소김씨지각)’으로 새기고 각(閣)을 세워 열행을 추모하였다. 김씨에 대한 기록은 양파(陽坡) 유관현(柳觀鉉) 종가에 전하는 「가세영언(家世永言)」(楮紙 두루마리, 국문)에 자세히 적고 있다.
  • 안동 의성김씨 종택 -> 김진, 김성일, 천전리 정보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