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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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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5월 19일 (수) 19:15 판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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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Head House of the Tapdong Branch of the Goseong Yi Clan, Andong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영문명칭 Head House of the Tapdong Branch of the Goseong Yi Clan, Andong
한자 安東 固城李氏 塔洞派 宗宅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임청각길 103 (법흥동)
지정(등록) 종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85호
지정(등록)일 1984년 1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0필지/ 지정구역 2,943㎡, 보호구역 891㎡
웹사이트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집의 본채는 조선 숙종(肅宗) 30년(1704)에 좌승지(左承旨) 이후식(李後植)이 지었고, 북정(北亭)은 영조(英祖) 51년(1775)에 진사 이종주(李宗周)가 지었다고 한다.

솟을대문채, 사랑채, 안채, 정자와 연못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나중에 방앗간채, 사랑채, 외양간채가 더 지어졌다. 사랑마당에는 연못이 있고, 안채의 동쪽에는 3칸 크기의 사당이 있다. 안채는 정면 8칸, 측면 6칸으로 높은 자연석 축대 위에 세워졌다. 이 집은 숲이 우거진 야산과 계곡에 흐르는 물을 건물과 잘 조화시킨 사대부 가옥의 전통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집은 고성이씨 탑동파 가문의 종택이다. 종택은 한 가문의 맏이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말한다.

고성이씨의 시조는 고려시대의 문신인 이황(李璜)이고, 고성이씨의 안동 입향조는 12세 이증(李增, 1419~1480)이다. 이증의 아들 이명(李洺)이 임청각을 지은 뒤 고성이씨 후손들이 법흥동 일원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명의 4세손 이적(李適)이 분파하면서 탑동파가 시작되었다. 이 마을은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법흥사가 있던 마을이므로 법흥동이라 하였고, 법흥사에 속해있던 전탑이 종택 앞에 남아 있어 이 문중은 탑동파라 불렸다.

탑동파 종택은 이적의 증손인 이후식(李後植, 1653~1714)이 1685년에 안채를 세우면서 짓기 시작하였다. 이어 사랑채를 건립하다 세상을 떠나자, 그의 손자 이원미(李元美, 1690~1765)가 사랑채인 정우재(淨友齋)와 별당인 영모당(永慕堂)을 지어 완성하였다. 안채에서 뒤편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북정(北亭)이라는 정자는 1775년에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 집 앞으로 중앙선이 놓이면서 풍경이 일부 퇴색되었지만, 이 종택은 주변 자연환경과 전통 건물을 잘 조화시킨 저택이다. 안채, 사랑채, 별당, 사당 등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으며, 가옥의 구조와 건축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어 전통 주택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