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자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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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자형정
Jahyeongjeong Pavilion, Hampyeong
함평 자형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평 자형정
영문명칭 Jahyeongjeong Pavilion, Hampyeong
한자 咸平 紫荊亭
주소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월야석계길 61(월계리 419)
지정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85호
지정일 2017년 8월 2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465㎡
웹사이트 함평 자형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자형정은 광산 김씨 가문의 김상순(金相純, 1842~1912)과 김상린(金相麟, 1853~1917) 형제가 만년에 지은 정자이다. 고종 38년(1901) 이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며, 지금의 건물은 김상순의 손자와 김상린의 아들이 1910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정자의 이름 ‘자형’은 박태기나무를 뜻하는데,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한다.

자형정은 중앙에 방을 두고 사방에 마루를 둘렀으며, 방문을 들어 올리면 방과 마루가 연결되어 공간이 확장된다. 건물의 앞면과 옆면에는 지붕을 이중으로 덧대어 회랑(回廊) 형식의 공간을 두었다.

자형정은 김상순, 김상린 두 형제가 최익현(崔益鉉, 1833~1907), 기우만(奇宇萬, 1846~1916) 등 당시 전라도 지역에 연고가 있는 항일 우국지사들과 교유하며 모여 강학하고 토론하던 곳이다.

자형정이 있는 월계리는 18세기 말 이후로 광산 김씨가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다.

영문

Jahyeongjeong Pavilion, Hampyeong

This pavilion was built by Kim Sang-sun (1842-1912) and Kim Sang-rin (1853-1917), two brothers from the Gwangsan Kim clan, in their later years. It is located in Wolgye-ri, a clan village of the Gwangsan Kim clan since the late 18th century. The name Jahyeongjeong menas “pavilion of the redbud tree,” which is a symbol of brotherly love.

The pavilion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before 1901. The brothers, having lived during the period leading up to Japan’s colonization of Korea (1910-1945), are known to have gathered at this pavilion for study and discussion with anti-Japanese civilian army leaders of the Jeolla-do region, such as Choe Ik-hyeon (1833-1907) and Gi U-man (1846-1916).

The current building was renovated in 1910 by a grandson of Kim Sang-sun and a son of Kim Sang-rin. It has an enclosed room in the center that is surrounded on all sides by a wooden veranda. The room can be opened to the outside by lifting its doors. The front and sides of the building feature an extended second eave, which creates a kind of covered corridor around the veranda.

영문 해설 내용

광산김씨 가문의 김상순(1842-1912)과 김상린(1853-1917) 형제가 만년에 지은 정자이다. 자형정이 있는 월계리는 18세기 말 이후로 광산김씨가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다. 정자의 이름 ‘자형’은 박태기나무를 가리키며,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한다.

정자는 1901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형제는 최익현(1833-1907), 기우만(1846-1916) 등 당시 전라도 지역에 연고가 있는 항일지사들과 교유하였으며, 이곳에 모여 강학하고 토론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김상순의 손자와 김상린의 아들이 1910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중앙에 방을 두고 사방에 마루를 둘렀으며, 방의 문을 들어 올리면 방과 마루가 연결되어 공간이 확장된다. 건물의 앞면과 옆면에는 지붕을 이중으로 덧대어 회랑(回廊) 형식의 공간을 만들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