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원홍주 등 6군상무사 임선생인손지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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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당시 대흥에 살던 원홍주 등 6군상무사 초대접장인 임인손(林仁孫)의 묘비로서 상무사에 전해지는 청금록(靑衿錄)에 의하면 1851년 4월 조령(朝令)을 받고 초대 접장(接長)에 피선되었다. 당시 홍주, 결아성, 보령, 청양, 대흥 등 5읍의 임방을 개설하고 임무를 감당할 사람을 택하여 여러 업무를 관장(管掌)케 하였다.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임인손이 중심이 되어 서해안변에 인접한 홍성, 광천, 보령, 청양, 대흥, 결성 등 여섯곳을 중심으로 상권을 형성하여 결성한 보부상(褓負商) 단체이다.

보부상은 전통사회에서 시장을 중심으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행상을 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가 이루어지도록 중간자 역할을 했던 전문적인 상인을 일겉는데, 보상(褓商)과 부상(負商)을 총칭하는 명칭이며, ‘부보상(負褓商)’이라고도 한다.

보상은 주로 기술적으로 발달된 정밀한 세공품이나 값이 비싼 사치품 등의 잡화를 취급한 데 반하여, 부상은 조잡하고 유치한 일용품 등 가내수공업품을 위주로 하였다.

보부상 초기에는 방문판매를 하다가 인구의 증가와 생활의 향상으로 시장을 중심으로 거래가 되고 시장이 번창하면서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전국팔도를 연결하는 통신수단이기도 하였다. 또한, 전시에는 군사물자를 운반하거나 무기를 들고 전장을 나가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시장에서 보상은 세공품 위주의 사치품을 주로 팔았으며 부상은 농산물, 수공업 제품, 수산물, 약재 같은 것들을 취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부상 백달원 선생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를 세운 공으로 오조물건(어,염,수철,토기,목물)에 대한 전매특권을 부여받아 조직이 크게 성장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경제권이 빼았겨 조직이 흩어졌으며 광복과 더불어 일시적으로 활기를 띄다가 빠른 경제성장으로 점차 쇠퇴하면서 이제는 보부상이 없는 시장만이 남게 되었다.

보부상의 가장 중요한 행동강령에는 병구사장(病救死葬) 병든자는 치료해주고, 죽은 자는 장사 지낸다. 환난상구(患難相救) 어려움에 처하면 십시일반으로 서로 돕는다. 조동모서(朝東暮西) 아침저녁으로 동서로 뛰며 부지런히 일한다. 라는 조항이 있다.

이에 벌목조항도 있어 장사 이전에 도리를 다하자는 것이 먼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홍도원에는 원홍주 등 6군상무사 소유의 1만여 평 토지와 건물, 묘지 비석 등이 남아있으며, 매년 한식날에는 위령비와 단제비에 제사를 지낸다.

또한 이들은 매2년마다 총회를 열어 회장인 접장을 선출하며,〈청금록〉〈선생안〉〈완문〉〈절목〉등의 많은 보부상 관련 문서들을 소장하고 있다. 한일합방이 되면서 우리나라의 모든 보부상 조직이 소멸하였으나 우리 지역의 보부상단체인 원홍주 등 6군상무사만이 소멸되지 않고, 위령비 단제비 등 홍도원 유적과 함께 지금까지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오고 있다.

1차 수정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1851년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 조직된 보부상 단체이고, 임선생인손지묘비는 이 단체의 초대 접장인 임인손(林仁孫)의 묘비이다.

보부상은 봇짐장수인 보상(褓商)과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을 합쳐서 부르는 말로, 전국 각지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던 상인들을 가리킨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보부상들은 지역별로 상무사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상호 협력하며 시장을 운영하였다. 충청도 서해안 일대에서는 홍성, 광천, 보령, 청양, 대흥, 결성 등 여섯 지역의 상권을 관할하는 상무사가 설립되었고, ‘홍주(충청남도 홍성 지역의 옛 이름)를 중심으로 하는 여섯 고을의 보부상 단체’라는 뜻으로 원홍주 등 6군상무사라 불렸다.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시장마다 설치된 지역사무소인 임소(任所)와 임소를 총괄하는 본소(本所)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며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851년부터 1989년까지 상무사의 임원 명단을 기록한 『청금록(靑衿錄)』에 따르면, 임인손은 대흥(지금의 예산군 대흥면)에 살던 인물이다. 1851년 4월 상무사의 우두머리인 접장으로 선출되어 상무사 전반의 업무를 총괄하였다.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지금도 매년 한식날이면 옛 보부상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한식 전날에는 임인손의 묘에서 제사를 올리고, 한식날에는 보령에 있는 홍도원의 단제비와 선고인합동위령비에서 제사를 지낸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초대 접장인 임인손(林仁孫)의 묘비이다.
      → 충남 예산군 광시면 가덕리 448-6에 세워진 초대 접장인 임인손(林仁孫)의 묘비이다. (묘비 뒷 부분에 혹시 글자가 있다면 추가 소개 필요)
    • 본소(本所)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며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본소(本所)로 구성되었으며, 그 후손들이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활동과 선대 보부상들을 기리는 공문제를 통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1851년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 조직된 보부상 단체이고, 임선생인손지묘비는 이 단체의 초대 접장인 임인손(林仁孫)의 묘비이다.
      -> 임선생인손지묘비는 1851년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 조직된 보부상단체의 초대 접장인 임인손(林仁孫)의 묘비이다.
    •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앞 문장에서 다루고 부연 설명이 뒤에 정리되도록 수정안을 검토.
    • 임선생인손지묘비는 1851년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 조직된 보부상단체의 초대 접장인 임인손(林仁孫)의 묘비이다.
    • 1851년부터 1989년까지 상무사의 임원 명단을 기록한 『청금록(靑衿錄)』에 따르면, 임인손은 대흥(지금의 예산군 대흥면)에 살던 인물이다. 1851년 4월 상무사의 우두머리인 접장으로 선출되어 상무사 전반의 업무를 총괄하였다
    • 보부상은 봇짐장수인 보상(褓商)과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을 합쳐서 부르는 말로, 전국 각지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던 상인들을 가리킨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보부상들은 지역별로 상무사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상호 협력하며 시장을 운영하였다.
    • 충청도 서해안 일대에서는 홍성, 광천, 보령, 청양, 대흥, 결성 등 여섯 지역의 상권을 관할하는 상무사가 설립되었고, ‘홍주(충청남도 홍성 지역의 옛 이름)를 중심으로 하는 여섯 고을의 보부상 단체’라는 뜻으로 원홍주 등 6군상무사라 불렸다.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시장마다 설치된 지역사무소인 임소(任所)와 임소를 총괄하는 본소(本所)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며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지금도 매년 한식날이면 옛 보부상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한식 전날에는 임인손의 묘에서 제사를 올리고, 한식날에는 보령에 있는 홍도원의 단제비와 선고인합동위령비에서 제사를 지낸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1851년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 조직된 보부상 단체이고, 임선생인손지묘비는 이 단체의 초대 접장인 임인손(林仁孫)의 묘비이다.
    • 보부상은 봇짐장수인 보상(褓商)과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을 합쳐서 부르는 말로, 전국 각지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던 상인들을 가리킨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보부상들은 지역별로 상무사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상호 협력하며 시장을 운영하였다. 충청도 서해안 일대에서는 홍성, 광천, 보령, 청양, 대흥, 결성 등 여섯 지역의 상권을 관할하는 상무사가 설립되었고, ‘홍주(충청남도 홍성 지역의 옛 이름)를 중심으로 하는 여섯 고을의 보부상 단체’라는 뜻으로 원홍주 등 6군상무사라 불렸다.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시장마다 설치된 지역사무소인 임소(任所)와 임소를 총괄하는 본소(本所)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며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단체가 조직된 1851년부터 1989년까지 상무사의 임원 명단을 기록한 『청금록(靑衿錄)』에 따르면, 임인손은 대흥(지금의 예산군 대흥면)에 살던 인물이다. 1851년 4월 상무사의 우두머리인 초대 접장으로 선출되어 상무사 전반의 업무를 총괄하였다.
    •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지금도 매년 한식날이면 옛 보부상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한식 전날에는 임인손의 묘에서 제사를 올리고, 한식날에는 보령에 있는 홍도원의 단제비와 선고인합동위령비에서 제사를 지낸다.

2차 수정

임선생인손지묘비는 원홍주 등 6군상무사의 초대 접장인 임인손(林仁孫)의 묘비이다.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1851년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 조직된 보부상 단체이다.

보부상은 봇짐장수인 보상(褓商)과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을 합쳐서 부르는 말로, 전국 각지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던 상인들을 가리킨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보부상들은 지역별로 상무사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상호 협력하며 시장을 운영하였다. 충청도 서해안 일대에서는 홍성, 광천, 보령, 청양, 대흥, 결성 등 여섯 지역의 상권을 관할하는 상무사가 설립되었고, ‘홍주(충청남도 홍성 지역의 옛 이름)를 중심으로 하는 여섯 고을의 보부상 단체’라는 뜻으로 원홍주 등 6군상무사라 불렸다.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시장마다 설치된 지역사무소인 임소(任所)와 임소를 총괄하는 본소(本所)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후손들이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활동과 선대 보부상들을 기리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1851년부터 1989년까지 상무사의 임원 명단을 기록한 『청금록(靑衿錄)』에 따르면, 임인손은 대흥(지금의 예산군 대흥면)에 살던 인물이다. 1851년 4월 상무사의 우두머리인 접장으로 선출되어 상무사 전반의 업무를 총괄하였다.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지금도 매년 한식날이면 옛 보부상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한식 전날에는 임인손의 묘에서 제사를 올리고, 한식날에는 보령에 있는 홍도원의 단제비와 선고인합동위령비에서 제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