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묵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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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서원은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과 응계(凝溪) 옥고(玉沽)를 봉향하는 곳으로 조선 숙종(肅宗) 13년(1687)에 처음 건립되었다. 보백당은 성종(成宗) 때 대제학을 지냈고 응계는 세종(世宗) 때 사헌부 장령을 지냈다. 서원철폐령으로 훼철 되었는데, 1925년 강당과 읍청루․진덕문․동재 건물 등이 복원되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 3칸에 마루를 두었고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서원의 왼쪽에는 정면 6칸, 측면 5칸의 ‘口’자형 주사가 있다.

묵계종택은 정침(正寢)과 별당 및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口’자형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6칸의 규모가 비교적 큰 건물이다. 안채에는 용계당(龍溪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사당은 낮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1.12.13. 명칭변경 (묵계서원 및 안동김씨 묵계종택 → 안동 묵계서원 및 보백당종택)

수정 국문

초고

서원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묵계서원은 청백리로 이름을 떨쳤던 김계행(金係行1431~1517)과 옥고(玉沽, 1382~1436)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서원 건립에 대한 논의는 조선 숙종 13년(1687)부터 이루어졌으나, 사당이 건립된 후 두 사람의 위패를 사당에 안치하게 된 시기는 숙종 32년(1706)이었으며, 서원의 모습을 온전히 갖추게 된 것은 숙종 38년(1712)이다.

김계행은 성종 11년(1480) 과거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지냈으나, 두 번의 사화를 겪은 후 낙향하였으며, 연산군 4년(1498) 이후 처가가 있는 이 마을에 자리를 잡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옥고는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인 길재(吉再, 1353~1419)에게 수학하여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던 학자이다. 조선 정종 원년(1399)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안동 지역의 수령으로 부임해 선정을 펼치기도 하였다.

고종 6년(1869)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지만 고종 32년(1895) 강학 공간 일부를 다시 지어 명맥을 이었으며, 1998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현재 경내에는 외삼문, 2층으로 된 누각, 강당, 기숙사인 동재, 내삼문, 사당이 일직선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좌측 담장 너머에는 서원을 관리하는 건물인 주사(廚舍)가 있는데, 묵계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져 있다. 서원 오른쪽에 있는 김계행의 신도비와 비각은 후대에 세워진 것이다.

*주사 건물은 21년까지도 보수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 -> 공사 완료되었는지 확인 필요. (여러 블로그에서 보이는 카페(만휴정)가 이곳에서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임)
*김계행 신도비 건립 시기 확인 필요함
*묵계서원 복원 과정에서 언급되는 시기는 최은주 저서 내용을 기준으로 작성함.
*주사 건물이 창건 당시의 건물이라는 서술이 많이 보이나, 정확한 시기를 언급할 만한 근거는 부족하다고 판단됨.

  • 서쪽에 보백당 종택이 있다.

1차 수정

서원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묵계서원은 조선시대의 문신 보백당 김계행(寶白堂 金係行, 1431~1517)과 응계 옥고(凝溪 玉沽, 1382~1436)를 기리기 위해 숙종 13년(1687)에 창건되었다. 숙종 32년(1706) 사당을 세우고 두 사람의 위패를 모셨다.

김계행은 풍산현 불정촌(지금의 하리리 지역) 출신으로 성종 11년(1480)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그러나 연산군의 폭정이 시작되자 연산군 4년(1498) 안동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옥고는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인 길재(吉再, 1353~1419)의 제자이며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던 학자이다. 정종 1년(1399)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안동 지역에 부임해 선정을 펼치기도 하였다.

묵계서원은 고종 6년(1869)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고종 32년(1895) 일부 건물을 다시 지어 강학 공간으로서의 명맥을 이어가다가 1997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현재 경내에는 외삼문인 진덕문(進德門), 누각인 읍청루(揖淸樓), 강당인 입교당(入敎堂), 동재인 극기재(克己齋), 내삼문, 사당인 청덕사(淸德祠)가 있다. 좌측 담장 너머에는 서원 관리인이 사용하는 주사가 있고, 서원 오른쪽에는 김계행의 신도비가 있다. 서원에서 북서쪽으로 약 280m 떨어진 곳에 김계행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는 보백당 종택이 있다.

  • 자료마다 서원 복원 시기가 다름.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이야기 옷을 입은 경북 문화재 기행』 내용에 따라 1997년으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