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사천 사촌리 도요지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21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흥무산(해발 454,7m)과 장군당(해발 378.8m)의 지맥이 뻗은 남서사면 구릉의 해발 150m 정도에 위치하는 이곳은 속칭 ‘양달골’이라고 불리우는 일조량이 양호하며 물과 흙이 풍부한 곳으로 가까이에 있는 사천만을 통한 해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일찍부터 발달되어 있다.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학술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가마의 위치나 구조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는 확보되지 않았으나 이곳에서 백자를 전문적으로 생산한 곳임은 알 수 있었다. 그릇의 종류는 사발과 접시, 종지 등으로 대부분 생활용기에 속하는 것이다. 출토된 그릇의 특징으로 미루어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백자를 생산한 지방가마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정 국문

초고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백자를 생산했던 가마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곳은 예전부터 가마터가 있었다고 전해져 왔으며, 일조량과 물, 양질의 점토가 풍부하며, 가까이에 있는 사천만을 통한 해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일찍부터 발달해 가마터가 자리 잡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2002년에 시굴 조사가 실시되었고,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했던 흔적과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었던 도구, 백자 조각 등이 확인되어 이곳이 가마터임을 확인하였다. 발견된 유물들은 사발과 접시, 종지 등 생활용기에 속하는 것이다.

가마의 흔적도 일부 발견되었으나 무덤 등으로 유규의 훼손이 심해 가마의 위치나 구조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된 그릇의 특징으로 미루어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백자를 생산한 지방가마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차 수정

사촌리 도요지는 조선시대인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백자를 생산한 가마가 있던 곳이다. 이 일대는 일조량, 물, 양질의 점토가 풍부하며, 사천만을 통한 해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일찍부터 발달하여 가마터가 자리 잡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조사 결과 가마의 흔적이 일부 발견되었으나, 무덤 등이 조성되면서 이미 유구가 심하게 훼손되어 가마의 위치나 구조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했던 흔적과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었던 도구, 백자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사발, 접시, 종지 등 생활용기에 속하는 다양한 그릇들이 출토되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사촌리 도요지는 흥무산(해발 454,7m)과 장군당(해발 378.8m)의 지맥이 뻗은 남서사면 구릉의 해발 150m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는 일조량, 물, 양질의 점토가 풍부하며, 사천만을 통한 해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일찍부터 발달하여 가마터가 자리 잡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도요지 조사 결과 가마의 흔적이 일부 발견되었으나, 무덤 등이 조성되면서 이미 유구가 심하게 훼손되어 가마의 위치나 구조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했던 흔적과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었던 도구, 백자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사발, 접시, 종지 등 생활용기에 속하는 다양한 그릇들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그릇의 특징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시대인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백자를 생산한 가마가 있던 곳으로 보고 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2차 수정

사촌리 도요지는 조선시대인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백자를 생산한 가마가 있던 곳이다. 흥무산(해발 454.7m)과 장군당(해발 378.8m)의 지맥이 뻗은 남서사면 구릉의 해발 150m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는 일조량, 물, 양질의 점토가 풍부하며, 사천만을 통한 해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일찍부터 발달하여 가마터가 자리 잡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조사 결과 가마의 흔적이 일부 발견되었으나, 무덤 등이 조성되면서 이미 유구가 심하게 훼손되어 가마의 위치나 구조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했던 흔적과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었던 도구, 백자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사발, 접시, 종지 등 생활용기에 속하는 다양한 그릇들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