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박순 묘 및 신도비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20 국문

초고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박순(1523~1589)의 묘와 신도비이다. 선생은 본관이 충주이고 호남사림의 기틀을 마련한 박상의 조카이다. 1565년(명종 20)에는 사간원의 대사간이 되어 훈척 세력의 대표 인물인 윤원형을 탄핵해 외척세력의 횡포를 제거하는데 주역이 되었고 1572년(선조 5) 우의정에 임명되었다. 박순은 이이가 탄핵되었을 때 그를 옹호하다 탄핵을 받고 스스로 관직에서 포천으로 물러났다. 그 뒤 포천의 옥병서원 등에 배향되었다. 박순의 묘는 부인인 개성 고씨와 쌍분으로 조성되었다. 박순의 신도비는 우암 송시열이 지었으며 현재 옥병서원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수정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박순(朴淳, 1523~1589)과 부인 개성 고씨의 합장묘 및 박순의 일생과 업적을 새긴 신도비이다. 박순은 명종 8년(1553)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명종 20년(1565) 훈척 세력의 대표 인물 윤원형(尹元衡, 1503~1565)을 탄핵해 외척 세력의 횡포를 제거하는데 주역이 되었다. 선조 5년(1572)에 영의정까지 올랐다. 이이(李珥, 1536~1584)가 탄핵되었을 때 그를 옹호하다가 탄핵을 받고 스스로 포천으로 물러났다. 옥병서원 등에 배향되었다.

봉분은 최근에 호석을 둘렀으며, 오른쪽에 1983년 새로 건립한 비석이 있다. 원래의 석물은 문인석과 망주석이 남아있고, 상석·향로석·장명등은 새로 만든 것이다.

옥병서원 앞에 순종 3년(1909)에 건립된 박순의 신도비가 있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지은 글을 11대 외손 이최수(李㝡秀)가 쓰고, 10대 외손 이승회(李承會)가 전액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