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도산서당(안동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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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퇴계 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기거하시던 방은 ‘완락재(玩樂齋)’라 하였고,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라 하였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이황(李滉, 1501~1570)이 만년에 머물면서 독서하고 수양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서당이다. 1560년(명종 15) 완성되었으며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이자 이황의 학문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황이 독서했던 방의 이름은 완락재(玩樂齋)이며, 제자를 가르쳤던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다. 두 이름 모두 주희(朱熹, 1130~1200)의 글에서 취한 것이다. 각각 “완상하며 즐긴다.(玩樂)” “바위에 깃들어(巖棲) 작은 효험을 바란다.”는 뜻으로 학문의 즐거움과 겸손의 마음을 담았다.

원래 부엌, 방, 마루 1칸씩 모두 3칸이었으나, 제자들이 늘면서 마루 옆에 살평상 1칸과 부엌 1칸을 더해 5칸이 되었다. 평상 위에는 달개지붕을 달았다.

1차 수정

도산서당은 이황(李滉, 1501~1570)이 만년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1560년에 완성되었으며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원래 부엌, 온돌방, 마루로 되어 있었는데, 제자들이 늘어나면서 부엌과 마루를 확장하였다. 확장한 마루 위에는 덧지붕을 달았다.

이황이 머물던 방의 이름은 완락재(玩樂齋)이며, 제자를 가르쳤던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다. 두 이름 모두 주희(朱熹, 1130~1200)의 글에서 취한 것이다. 각각 ‘완상하며 즐긴다.(玩樂)’, ‘바위에 깃들어(巖棲) 작은 효험을 바란다.’는 뜻으로 학문의 즐거움과 겸손의 마음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