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남해 남면 향약계 관련 자료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21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향약(鄕樂)은 조선시대 향촌의 자치규약, 또는 그 규약에 기초한 조직체. 중국 송(宋)나라 때의 ‘여씨향약’이 기원이며, 4강목은 덕업상권(德業相勸) · 과실상규(過失相規) · 예속상교(禮俗相交) · 환난상휼(患難相恤)이다. 향약계는 조선시대 향촌민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향약과 우리나라 전통의 계가 결합되어 만들어졌다. 농민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사창곡 마련, 현물부조, 노동력 제공 등을 규약으로 정하였으며, 구성원들간의 상호 협력을 목적으로 하였다. 사족을 중심으로 농민들의 경제적 요인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의 역할을 하였다. 남면 향약계는 남행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남전여씨향약(藍田呂氏鄕約)을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다. 향약계는 면 행정의 의결, 명령기관으로 효열 표창과 향리의 풍기를 단속하고 후손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 기능까지 담당하였다. 율곡 이이의 위패를 봉안한 남면 율곡사에는 조선시대에 현령으로부터 하달된 절목 11통과 오래된 문헌 등이 보존되어 있다.

  • 위치 관련: 남면 율곡사에서 보관하는 것으로 추정(남해군에서 보내준 안내문 원경사진이 율곡사임)되어 율곡사의 주소를 적음

수정 국문

초고

향약계는 향약(鄕約)의 이칭으로 시행주체·규모 ·지역 등에 따라 향규(鄕規)·일향약속(一鄕約束)·향립약조(鄕立約條)·향헌(鄕憲)·면약(面約)·동약(洞約)·동계(洞契)·동규(洞規)·촌약(村約)·촌계(村契)·이약(里約)·이사계(里社契)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다.

향약(鄕約)은 조선시대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마을의 자치 규약으로 덕행과 협동정신을 고취시키는 기능을 하였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이 좋은 행실은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서로 예의를 지키며 사귀고(禮俗相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돕고(患難相恤), 잘못된 일은 서로 깨우쳐 주자(過失相規)는 유교적 덕목을 담고 있다.

남면 향약계 관련 자료는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당항리 율곡사(栗谷祠)에서 소장하고있는 약 10여 종의 항약 관련 고문헌을 총칭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율곡사는 조선시대의 학자 이이(李珥, 1536~1584)를 제향(祭享)하는 사당(祠堂)이다. 이이는 향약의 보급을 위해 중국의 『여씨향약(呂氏鄕約)』과 이황(李滉, 1501~1570)의 『예안향약(禮安鄕約)』을 근거로 『서원향약(西原鄕約)』과 이를 자신이 수정 증보하여 1577년에 『해주향약(海州鄕約)』을 만들었다. 이이가 정리한 향약은 조선후기에 가장 널리 보급된 한국 향약으로서는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면 항약계는 이이의 향약을 모범으로 삼았기 때문에 율곡사를 중심으로 향약을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향약계는 1784년(정조 8) 면민의 각 호주를 계원으로 하고 임원인 공원 1명, 유사 1명, 상무 1명으로 정하여 조직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해마다 3월과 9월 15일에 계회를 진행한다.

  • 鄕約稧: 백과사전 등에는 契라는 단어를 쓰지만 소장된 책에 쓰여진 계는 이체자인 계(稧)라고 쓰여있다.

1차 수정

향약계는 향약(鄕約)의 이칭으로, 조선시대에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마을의 자치 규약이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좋은 행실은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서로 예의를 지키며 사귀고(禮俗相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돕고(患難相恤), 잘못된 일은 서로 깨우쳐 주자(過失相規)는 유교적 덕목을 담고 있다.

남면 향약계는 남면에서 1784년부터 실시해온 향약으로, 지금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여 매년 3월 15일과 9월 15일에 율곡사(栗谷祠)에서 계회를 개최하고 있다. 율곡사는 1964년 계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시대의 학자 이이(李珥, 1536~1584)의 향약을 계승하고 제례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율곡사에는 조선시대 현령으로부터 하달된 절목, 향약의 기본 운영방침, 규정, 임원 명단 등 남면 향약계와 관련된 자료가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향약과 관아와의 관계, 향약계의 구성원과 운영 양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좋은 행실은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 앞의 예를 보면 한자를 병기할 때 음을 표기한 경우는 ( )를 사용하고, 이 경우처럼 의미를 풀었을 때는 []를 사용한 듯합니다. 통일안이 있을 테니 통일안을 준수했으면 합니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 자료의 건수를 다만 몇 가지라도 구체적으로 밝히고, 내용도 소개하면 좋겠습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향약계는 향약(鄕約)의 다른 명칭으로, 조선시대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실행할 목적으로 만든 마을의 자치 규약이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좋은 행실은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서로 예의를 지켜 사귀고(禮俗相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돕고(患難相恤), 잘못된 일은 서로 깨우쳐 주자(過失相規)는 덕목을 담고 있다.
      남면 향약계는 1784년(정조 8)부터 남면에서 실시된 향약으로, 지금까지 그 전통이 계승되어 매년 3월 15일과 9월 15일에 율곡사(栗谷祠)에서 마을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율곡사는 1964년 계원 중심으로 이이(李珥, 1536~1584)의 향약을 계승하고 제례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현령으로부터 하달된 절목과 향약의 기본 운영 방침, 규정, 임원 명단 등 남면 향약계 운영과 관련된 자료가 많이 남아있다. 이들 자료는 향약과 관아의 관계, 향약계의 구성원과 운영 상황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혼선되는 정보는 빼고 이해하기 쉽게 순서와 문장 변경) 남면 향약계는 남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향약(鄕約)이다. 향약은 조선시대에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마을의 자치 규약으로, 좋은 행실은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서로 예의를 지키며 사귀고(禮俗相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돕고(患難相恤), 잘못된 일은 서로 깨우쳐 주자(過失相規)는 유교적 덕목을 담고 있다.
      1784년부터 시작해 온 남면 향약계는 지금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여 매년 3월 15일과 9월 15일에 율곡사(栗谷祠)에서 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율곡사는 1964년 계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시대의 학자 이이(李珥, 1536~1584)의 향약을 계승하고 제례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율곡사에는 조선시대 현령으로부터 하달된 절목, 향약의 기본 운영방침, 규정, 임원 명단 등 남면 향약계와 관련된 자료가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향약과 관아와의 관계, 향약계의 구성원과 운영 양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2차 수정

향약계는 향약(鄕約)의 다른 이름으로, 조선시대에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실행할 목적으로 만든 마을의 자치 규약이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좋은 행실은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덕업상권], 서로 예의를 지키며 사귀고[禮俗相交: 예속상교],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돕고[患難相恤: 환난상휼], 잘못된 일은 서로 깨우쳐 주자[過失相規: 과실상규]는 유교적 덕목을 담고 있다.

남면 향약계는 남해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향약이다. 정조 8년(1784)부터 실시해왔으며, 지금까지 그 전통이 계승되어 매년 3월 15일과 9월 15일에 율곡사(栗谷祠)에서 마을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율곡사는 1964년 계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시대의 학자 이이(李珥, 1536~1584)의 향약을 계승하고 제례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율곡사에는 조선시대 현령으로부터 하달된 절목, 향약의 기본 운영방침, 규정, 임원 명단 등 남면 향약계와 관련된 자료가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향약과 관아의 관계, 향약계의 구성원과 운영 상황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지자체 감수결과

향약계는 향약(鄕約)의 다른 이름으로, 조선시대에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실행할 목적으로 만든 마을의 자치 규약이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좋은 행실은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덕업상권], 서로 예의를 지키며 사귀고[禮俗相交: 예속상교],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돕고[患難相恤: 환난상휼], 잘못된 일은 서로 깨우쳐 주자[過失相規: 과실상규]는 유교적 덕목을 담고 있다.

남면 향약계는 남해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향약이다. 정조 8년(1784)부터 실시해왔으며, 지금까지 그 전통이 계승되어 매년 3월 15일과 9월 15일에 율곡사(栗谷祠)에서 마을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율곡사는 1964년 계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시대의 학자 이이(李珥, 1536~1584)의 향약을 계승하고 제례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율곡사에는 조선시대에 현령으로부터 하달된 절목, 향약의 기본 운영방침, 규정, 임원 명단 등 남면 향약계와 관련된 자료가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향약과 관아의 관계, 향약계의 구성원과 운영 상황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공공언어 감수결과

남면 향약계*는 남해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향약이다. 조선 정조 8년(1784)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매년 양력 4월 15일 춘향다례제를 봉행하고 있다.

율곡사는 1964년 계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 시대 학자 율곡 이이의 향약을 계승하고 제례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이곳에는 조선 시대에 현령으로부터 하달된 절목, 향약의 기본 운영 방침, 규정, 임원 명단 등 남면 향약계와 관련된 상세한 자료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들 자료들은 향약과 관아의 관계, 향약계의 구성원과 운영 상황 등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화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