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남천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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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권장(權璋)이 조선 철종(哲宗) 1년(1850)에 그의 셋째 아들 권수(權繡, 1832~1901)에게 지어준 집이다. 권수의 택호에 따라 남천고택으로 불려왔다. 사랑채는 서당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집 앞에는 넓은 마당과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전면에 ‘一’자형의 대문채를 두고 그 뒷편에 안채와 익사를 둔 튼 ‘口’자형으로 좌측 트인 부분을 담으로 막아 폐쇄성을 확보했다. 3량가 납도리 수장집이다. 안채 배면 두칸에 벽장을 들인 구성은 주목된다.

일반적으로 19세기 말에 들어 건축물이 많은 수장공간을 확보하려는 경향을 띠는데, 19세기 중반에 지어진 이 건물이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19세기 말 직전의 건축구조의 변화 추이를 보여주는 모습이라 여겨진다.

수정 국문

초고

이 집은 권장(權璋)이 조선 철종 1년(1850)에 셋째 아들 권숙(權繡, 1832~1901)을 분가시키면서 지어준 살림집이다. 집의 이름은 권숙의 호를 따서 지었다.

집은 문간채, 좌우 날개채가 딸린 안채,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집의 사랑채는 권숙이 학문을 익히며 문중의 후학들을 양성하는 강학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겸하기도 하였다.

안채에 동선의 편의를 위한 툇마루를 시설한 것이나, 배면에 벽장을 들여 수장 공간을 확보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 지어진 한옥의 건축 특징을 잘 보여준다.

  • 집 앞에 다른 건물과 넒은 마당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어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 안방 좌측에는 안채 부엌과 고방이 세로로 길게 놓여 좌측 날개를 이루고 있고, 안대청 우측에는 마루방·상방·샛방이 뻗어 우측 날개를 이루고 있다.
  • 사랑채에서 내려다보이는 연못과 정원은 후대에 조성된 것이다.

1차 수정

남천고택은 권장(權璋)이 철종 1년(1850)에 셋째 아들 권숙(權繡, 1832~1901)을 분가시키면서 지어준 집이다. 집의 이름은 권숙의 호를 따서 지었다. 남천고택이 위치한 가일마을은 15세기 초부터 안동권씨가 대대로 살고 있는 마을이다.

고택은 문간채, 좌우 날개채가 딸린 안채,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채는 권숙이 문중의 후학들을 가르치는 서당으로서의 역할을 겸하기도 하였다.

안채 앞면과 뒷면에는 툇마루를 두어 이동하기 쉽게 하였고, 안채와 사랑채에 벽장을 두어 수장 공간을 확보하였는데 이러한 구조는 19세기에 지어진 한옥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