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권성 선생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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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이 그림은 조선 후기 문신인 권성(權偗, 1653~1730)의 초상화이다.

권성은 1687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703년에는 현명한 군주가 행해야 할 18개의 항목을 뽑아 『국조명신주의집록(國朝名臣奏議輯錄)』을 편찬하여 숙종(1674~1720 재위)에게 바쳤다. 또한 여러 지방의 관찰사를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어 명관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 그림은 현재 화산사(華山祠) 내의 영당에 소장되어 있다. 화산사는 옛 향현사(鄕賢祠)의 전통을 이은 사당으로 권성과 그의 형인 권변(權忭, 1651~1726)을 제사지내고 영정을 모시고 있었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두 영정은 안동권씨 종가에 모셔졌다가 1968년 지금의 위치에 사당을 건립한 뒤 다시 모셔졌다. 이후 명칭도 지금의 화산사로 고쳤으며 5명의 인물을 추가하여 총 7명의 인물을 제사지내는 사당으로 발전하였다.

1차 수정

조선 후기 문신인 권성(權偗, 1653~1730)의 초상화이다.

권성은 1687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703년에는 현명한 군주가 행해야 할 18개의 항목을 뽑아 『국조명신주의집록(國朝名臣奏議輯錄)』을 편찬하여 숙종(1674~1720 재위)에게 바쳤다. 또한 여러 지방의 관찰사를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어 이름이 높았다.

권성의 초상화는 현재 화산사(華山祠) 내의 영당에 소장되어 있다. 화산사는 옛 향현사(鄕賢祠)의 전통을 이은 사당으로 권성과 그의 형인 권변(權忭, 1651~1726)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두 영정은 안동권씨 종가에 모셔졌다가 1968년 지금의 위치에 사당을 건립한 뒤 다시 모셔졌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수정안 2줄 : 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 수정안 셋째 단락 : 권성의 초상화는 현재 화산사(華山祠) 내의 영당에 소장되어 있다. 화산사는 옛 향현사(鄕賢祠)의 전통을 이은 사당으로 권성과 그의 형인 권변(權忭, 1651~1726)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두 영정은 안동권씨 종가에 모셔졌다가 1968년 지금의 위치에 사당을 건립한 뒤 다시 모셔졌다. -> 권성의 초상화는 현재 화산사(華山祠) 내의 영당에 소장되어 있다. 화산사는 옛 향현사(鄕賢祠)의 전통을 이은 사당으로 권성과 그의 형인 권변(權忭, 1651~1726)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봉안하고 있었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두 영정은 안동권씨 종가에 모셔졌다가 로 옮겨졌다가, 1968년 지금의 위치에 사당을 건립한 뒤 다시 모셔졌다. 건립된 영당에 다시 봉안되었다.
  2.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권성은 1687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여러 지방의 관찰사를 비롯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어 이름이 높았다.
    • 1968년 지금의 장소에 사당을 건립한 뒤 다시 모셔졌다. 이후 이 사당을 화산사로 다시 부르게 되면서, 원래의 2위 이외에 권벽(權擘)을 주벽으로 하여 과거 건암서원(建巖書院)에 제향되었던 조수륜(趙守倫)과 권양(權讓)을 포함하여 모두 7위의 인물을 모시는 사당이 되었다.

2차 수정

조선 후기 문신인 권성(權偗, 1653~1730)의 초상화이다.

권성은 1687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여러 지방의 관찰사를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어 이름이 높았다. 1703년에는 현명한 군주가 행해야 할 18개의 항목을 뽑아 『국조명신주의집록(國朝名臣奏議輯錄)』을 편찬하여 숙종(1674~1720 재위)에게 바쳤다.

권성의 초상화는 현재 화산사(華山祠) 내 영당에 소장되어 있다. 화산사는 옛 향현사(鄕賢祠)의 전통을 이은 사당으로 권성과 그의 형인 권변(權忭, 1651~1726)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었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두 영정은 안동권씨 종가로 옮겨졌다가, 1968년 지금의 위치에 건립된 영당에 다시 봉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