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거제 총명사 예념미타도량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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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예념미타도량참범(禮念彌陀道場懺法)‘은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면서 모든 악업을 참회하고 보리심을 내여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법회의 절차를 수록한 의식서로 아미타염불 신앙의 핵심이 요약되어 있다. 거제 총명사 「예념미타도량참법」은 5원(권6~권10) 1책의 목판본으로, 표지(表紙)의 서명은 ‘미타참법(彌陀懺法)’ 이라 묵서(墨書)로 기록되어 있으며, 권말(卷末)에 ‘成化十年楸八月日.... 金守溫奉敎謹跋’이라는 간행기록(刊記)이 있어서 1474년에 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가 손부(孫‘)인 공혜왕후 한 씨의 명복을 빌고, 아울러 먼저 죽은 세종 및 세종의 비 소헌왕후와 세조 등에 대한 추모의 정을 잊지 못해, 지중추부사 성임에게 명하여 ’자비삼매참‘과 ’미타참‘을 다시 쓰게 하여 판가(板刻)한 것이다. 성임이 본문 글씨를 다시 썼고, 이장손과 백종린이 도상(圖像)을 그렸으며, 당시 일류 기술자들이 판각에 동원되었다. 그리고 인수대비와 인혜대비를 비롯하여 내명부(內命‘)와 종친, 신미(信眉)등 당시 고승 등이 간행에 적극 참여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전국 각처에서 간행된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모본(母本)으로, 조선왕실에서 간행된 책 가운데 가장 정성을 들인 판본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조선 초기의 귀중도서이며, 조선전기 고인쇄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은 지극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의 악업(惡業)을 참회해 죽은 후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예참(禮懺) 의식의 절차와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원래 중국 금(金)나라의 왕자성(王子成)이 총 10권 2책의 분량으로 엮은 것으로, 총명사에는 권6부터 권10까지의 1책만 전하고 있다. 권10의 끝에는 책의 간행 경위 등을 밝힌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발문(跋文), 시주자 및 간행에 관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남아 있다.

조선 성종(成宗) 5년(1474)에 성종의 왕비(王妃) 공혜왕후(恭惠王后, 1456~1474)가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세조(世祖)의 왕비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가 공혜왕후를 포함해 자신이 먼저 떠나보낸 왕실의 여러 가족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성임(成任, 1421~1484)에게 명령해 이 책의 목판을 제작하게 했다고 한다.

책의 제작을 위해 성종을 비롯한 왕실의 여러 사람들이 시주한 것을 통해 이 책의 판각(板刻)이 국가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던 것임을 알 수 있으며, 판목을 새긴 화원들의 명단도 남아 있다.

총명사 소장본은 조선 초기 왕실 발원으로 간행된 불경으로 이후 전국 각처에서 간행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모본(模本)으로 영향을 준 자료이다. 또한 조선 왕실에서 이뤄진 것 가운데 가장 정성을 들인 것으로 조선 전기 고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정희왕후를 대비로 쓰려면 ‘자성대왕대비’로 써야 하고, 인수대비를 왕후로 쓰려면 ‘소혜왕후’로 써야하는데, 두 사람은 현재 언급한 명칭이 사람들에게 더 익숙하기 때문에 고민해볼 필요가 있음.
  • 총명사는 1913년에 창건된 사찰로, 당시 이 절에서 수행하던 성하노 스님으로부터 이 책이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성하고 스님-명오 스님-호석 스님:문화재 신청자) 성하노 스님이 이 책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 같은 판본으로는 총명사에 있는 것을 포함해 보물 1144호(권6~10의 1책)로 지정돼 있는 목아박물관의 것과 보물 1470-1호로 지정돼 있는(권6~10) 영광 불갑사의 것,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48호(권1~5 1책)인 원주 고판화박물관의 것, 그리고 보물 제1165호(권3~4, 권7~8의 1책) 김영래 씨가 갖고 있는 것 등 모두 6종이 전하고 있는 것으로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다.
  • 제첨서명은 ‘미타참법(彌陀懺法)으로 묵서로 기록되어 있다. 제첨의 길이는 세로 20.6㎝이고 가로는 4㎝로 최근에 개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권수제(卷首題)는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 ‘판심제(版心題)는 ‘미타참(彌陀懺)’으로 확인된다.

1차 수정

예참(禮懺)이란 몸과 마음과 입으로 지은 모든 악업을 참회하는 의식을 말한다.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은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예참 의식의 절차와 내용을 소개한 의식집이다.

원래 중국 금(金)나라의 왕자성(王子成)이 총 10권 2책의 분량으로 엮은 것으로, 총명사에는 성종 5년(1474)에 간행된 권6부터 권10까지의 1책만 전하고 있다. 권10의 끝에는 책의 간행 경위 등을 밝힌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발문과 시주자 및 간행에 관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남아 있다.

총명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책은 조선 제7대 왕인 세조(1455~1468 재위)의 왕비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가 성임(成任, 1421~1484)에게 명령하여 목판을 제작하게 하였다. 정희왕후는 남편을 비롯하여 아들 의경세자(1438~1457)와 예종(1450~1469) 등 여러 왕실 가족들의 죽음을 겪었다. 성종 5년(1474) 손자인 성종의 왕비 공혜왕후(恭惠王后, 1456~1474)가 어린 나이로 죽자, 먼저 세상을 떠난 왕실의 여러 가족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책을 간행하도록 하였다. 성종을 비롯한 왕실의 여러 사람들이 시주한 것으로 보아 이 책의 목판을 만드는 일이 국가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판목을 새긴 화원들의 명단도 남아 있다.

이후 전국 각처에서 간행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모본이 되며, 조선 전기 고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수정내용: 수정 문안보다 기존 문안이 더 논리적으로 서술되어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본 수정 문안은 두 문안을 합해서 수정했음.
    • 예념미타도량참범(禮念彌陀道場懺法)은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면서 모든 악업을 참회하고 보리심을 내여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법회의 절차를 수록한 의식서이다. 로 아미타염불 신앙의 핵심이 요약되어 있다. 원래 중국 금(金)나라의 왕자성(王子成)이 총 10권 2책의 분량으로 엮은 것으로, 었는데, 거제 총명사에는 성종 5년(1474)에 간행된 권6부터 권10까지의 1책만 전하고 있다. 권10의 끝에는 간행연도와 간행 경위 등을 밝힌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발문과 시주자 및 간행에 관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남아 있다. (김수온은 1981년에 건립한 김수온의 신도비문에 의하면, 출생연도가 태종 9년, 즉 1909년이어서 삭제하거나 확인 필요함)
    • 거제 총명사 「예념미타도량참법」은 5권(권6~권10) 1책의 목판본으로, 표지(表紙)의 서명은 ‘미타참법(彌陀懺法)’이라 묵서(墨書)로 기록되어 있으며, 권말(卷末)에 ‘成化十年楸八月日.... 金守溫奉敎謹跋’이라는 간행기록(刊記)이 있어서 1474년에 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총명사 소장의 책은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가 손부(孫婦)인 공혜왕후 한 씨의 명복을 빌고, 아울러 먼저 죽은 세종 및 세종의 비 소헌왕후와 세조 등에 대한 추모의 정을 잊지 못해, 지중추부사 성임(成任, 1421~1484)에게 명하여 ’자비삼매참‘과 ’미타참‘을 다시 쓰게 하여 판각(板刻)한 것이다. 성임이 본문 글씨를 다시 썼으며, 이장손과 백종린이 도상(圖像)을 그리고렸으며, 당시 일류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판각했다. 에 동원되었다. 그리고 인수대비와 인혜대비를 비롯하여 내명부(內命)와 종친, 신미(信眉) 등 당시 고승 등이 간행에 적극 참여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왕실에서 간행된 책 가운데 가장 정성을 들인 판본 중의 하나이고, 이후에 전국 각처에서 간행 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모본(母本)으로, 조선왕실에서 간행된 책 가운데 가장 정성을 들인 판본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 되었기 때문에 조선 초기의 귀중도서이며, 조선전기 고인쇄사 연구에 매우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자료가 되고 있다.
  1. 분야별 자문위원 2
    • 예참(禮懺)이란 몸과 마음과 입으로 지은 모든 악업을 참회하는 의식을 말한다.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은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예참 의식의 절차와 내용을 소개한 의식집이다.
    • 원래이 책은 중국 금(金)나라의 왕자성(王子成)이 총 10권 2책의 분량으로 엮은 것으로,인데 총명사에는 성종 5년(1474)에 간행된 권6부터 권10까지의 1책만 전하고 있다. 권10의 끝에는 책의 간행 경위 등을 밝힌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발문과 시주자 및 간행에 관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남아 있다.(이 문장은 뒤로 옮김)
    • 총명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책 조선 제7대 왕인 세조(1455~1468 재위)의 왕비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가 성임(成任, 1421~1484)에게 명령하여 목판을 제작하게 하였다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정희왕후는 남편을 비롯하여 아들 의경세자(1438~1457)와 예종(1450~1469) 등 여러 왕실 가족들의 죽음을 겪었다.은데다 성종 5년(1474) 손자인 성종의 왕비 공혜왕후(恭惠王后, 1456~1474) 마저 어린 나이로 죽자, 먼저 세상을 떠난 왕실의 여러 가족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책을 간행하도록 하였다. 성종을 비롯한 왕실의 여러 사람들이 시주한 것으로 보아 이 책의 목판을 만드는 일이 국가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판목을 새긴 화원들의 명단도 남아 있다.
    • 총명사에는 성종 5년(1474)에이 때 간행된 권6부터 권10까지의 1책만 전하고 있다. 권10의 끝에는 책의 간행 경위 등을 밝힌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발문과 시주자 및 간행에 관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남아 있다.
    • 이후 전국 각처에서 간행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모본이 되며, 조선 전기 고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1.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 * 수정의견 >
    • 1. 예참과 예념미타도량참법의 연관성을 한 눈에 알아보기 힘들어 이해에 혼란을 주므로 구태여 ‘예참’의 의미를 먼저 풀어줄 필요가 없어 보임
    • 2. 총명사 소장본에 대한 설명에 세조, 정희왕후, 성임 등 인물과 생몰연대 등 수많은 정보의 나열로 이해도를 떨어뜨림으로 간략한 설명 후 자세한 내용 풀이로 가는 게 좋을 듯
    •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은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면서 모든 악업을 참회하고 극락왕생을 비는 불교의식, ‘예참(禮懺)’의 절차와 내용을 소개한 책이다.
    • 원래 중국 금(金)나라의 왕자성(王子成)이 총 10권 2책의 분량으로 엮은 것으로, 총명사에는 성종 5년(1474)에 간행된 권6부터 권10까지의 1책만 전하고 있다. 권10의 끝에는 책의 간행 경위 등을 밝힌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발문과 시주자 및 간행에 관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남아 있다.
    • 성종 5년(1474), 성종의 왕비 공혜왕후가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수렴청정을 하던,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1418~1483)는 공혜왕후와 먼저 세상을 떠난 왕실의 여러 가족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성임(成任,1421~1484)에게 명령하여 목판을 제작하게 하였다.

    • 성종을 비롯한 왕실의 여러 사람들이 시주한 것으로 보아 이 책의 목판을 만드는 일이 국가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판목을 새긴 화원들의 명단도 남아 있다.
    • 이후 전국 각처에서 간행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모본이 되며, 조선 전기 고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2차 수정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은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면서 모든 악업을 참회하고 극락왕생을 비는 불교의식인 ‘예참(禮懺)’의 절차와 내용을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은 중국 금(金)나라의 왕자성(王子成)이 총 10권 2책의 분량으로 엮은 것인데, 조선 제7대 왕인 세조(1455~1468 재위)의 왕비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가 성임(成任, 1421~1484)에게 명령하여 목판본으로 간행하도록 하였다. 정희왕후는 남편을 비롯하여 아들 의경세자(1438~1457)와 예종(1450~1469) 등 여러 왕실 가족들의 죽음을 겪었다. 성종 5년(1474) 손자인 성종의 왕비 공혜왕후(恭惠王后, 1456~1474)마저 어린 나이로 죽자, 먼저 세상을 떠난 왕실 가족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책을 간행하였다. 성종을 비롯한 왕실의 여러 사람들이 시주한 것으로 보아 이 책의 목판을 만드는 일이 국가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총명사에는 이때 간행된 책 중 권6부터 권10까지의 1책만 전하고 있다. 권10의 끝에는 책의 간행 경위 등을 밝힌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발문과 시주자 및 간행에 관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남아 있다. 이후 전국 각처에서 간행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모본이 되며, 조선 전기 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