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총명사 예념미타도량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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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총명사 예념미타도량참법
Yenyeom mita doryang chambeop (Contrition in the Name of Amitabha Buddha) in Chongmyeongsa Temple, Geoje
거제 총명사 예념미타도량참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거제 총명사 예념미타도량참법
영문명칭 Yenyeom mita doryang chambeop (Contrition in the Name of Amitabha Buddha) in Chongmyeongsa Temple, Geoje
한자 巨濟 聰明寺 禮念彌陀道場懺法
주소 경상남도 거제시 신부로4길 40 (장승포동, 총명사)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92호
지정(등록)일 2015년 10월 29일
분류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왕실본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책
웹사이트 거제 총명사 예념미타도량참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은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면서 모든 악업을 참회하고 극락왕생을 비는 불교의식인 ‘예참(禮懺)’의 절차와 내용을 소개한 책이다. 중국 금(金)나라의 왕자성(王子成)이 총 10권 2책의 분량으로 엮은 것인데, 조선 제7대 왕인 세조(1455~1468 재위)의 왕비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가 성종의 왕비인 공혜왕후의 명복을 빌고, 세종과 왕비, 소헌왕후 및 세조를 추모하기 위해 성임(成任, 1421~1484)에게 명령하여 목판본으로 간행했다.

거제 총명사 예념미타도량참법은 나무에 새겨 찍어낸 예념미타도량참법의 권6~10, 5권을 1책으로 엮은 것이다. 책 후미에 김수온(金守溫)의 글을 통해 조선 성종 5년(1474)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작에 참여한 승려와 왕실 및 종친 등의 직책과 이름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하였음은 물론, 참여한 인물들이 당시 최고 기술자들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책은 전국 각지에서 간행된 예념미타도량참법의 근본이 되는 책으로, 조선왕실에서 간행된 책 가운데 가장 정성을 들인 책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전기 고(古)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영문

Yenyeom mita doryang chambeop (Contrition in the Name of Amitabha Buddha) in Chongmyeongsa Temple, Geoje

Contrition in the Name of Amitabha Buddha (Yenyeom mita doryang chambeop) introduces the procedures and content of the repentance ritual, a Buddhist ceremony in which all unwholesome actions are repented and rebirth is prayed for while worshiping Amitabha, the Buddha of the Western Paradise. It was compiled by Wang Zicheng of Jin China (1115-1234) and consists of a total of 10 volumes in two books.

This woodblock printing of Contrition in the Name of Amitabha Buddha was produced in 1474 by the civil official Seong Im (1421-1484) on the order of Queen Jeonghui (1418-1483), the wife of King Sejo (r. 1455-1468)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Queen Jeonghui experienced several deaths in the royal family, including that of her husband and sons. Upon the early death of Queen Gonghye (1456-1474), the wife of Queen Jeonghui’s grandson King Seongjong (r. 1469-1494), she had this book printed to pray for the afterlife of the late royal family members and commemorate their lives.

Only the second book, consisting of Volumes 6 to 10, is kept at Chongmyeongsa Temple. It includes a postface written by the civil official Kim Su-on (1410-1481) with information on the publication of the book, such as the duties and names of the Buddhist monks and royal family members who participated in the printing. The record shows that the creation of the woodblocks for this printing was a national project involving the most skilled artisans.

This version of Contrition in the Name of Amitabha Buddha became the basis for further versions published across the country, and is therefore important in the study of printing history of the early Joseon period.

영문 해설 내용

『예념미타도량참법』은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면서 모든 악업을 참회하고 극락왕생을 비는 불교의식인 ‘예참(禮懺)’의 절차와 내용을 소개한 책이다. 중국 금(金)나라의 왕자성(王子成)이 총 10권 2책의 분량으로 엮었다.

목판본인 이 책은 조선 제7대 왕인 세조(재위 1455-1468)의 왕비 정희왕후(1418-1483)가 1747년 문신 성임(1421-1484)에게 명령하여 간행하였다. 정희왕후는 남편과 아들들을 비롯하여 여러 왕실 가족들의 죽음을 겪었다. 1474년 손자인 성종의 왕비 공혜왕후(1456-1474)마저 어린 나이로 죽자, 먼저 세상을 떠난 왕실 가족들의 명복을 빌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 책을 간행하였다.

현재 총명사에 남아 있는 책은 이때 간행된 『예념미타도량참법』 중 권6부터 권10까지를 1책으로 엮은 것이다. 책 끝에 실린 김수온(1410-1481)의 글을 통해 책의 간행 경위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발간에 참여한 승려, 왕실 및 종친의 직책과 이름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이 책의 목판을 만드는 일이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되었고 당시 참여한 인물들이 최고의 기술자들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후 전국 각처에서 간행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근본이 되는 책으로, 조선 전기 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자료

  • 거제 총명사 예념미타도량참법,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805920000&pageNo=1_1_1_1 →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은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해서 사후(死後)에 서방 극락정토의 왕생을 염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토신앙의 입문서로서, 아미타염불 신앙의 핵심이 요약되어 있다. 이 책은 5권(권6-10) 1책의 목판본(木板本)이다. 권6은 25장, 권7은 24장, 권8은 15장, 권9는 22장, 권10은 20장, 권10의 말미에 수록된 발문(跋文)은 3장으로 확인된다. 제첨서명은 ‘미타참법(彌陀懺法)으로 묵서로 기록되어 있다. 제첨의 길이는 세로 20.6㎝이고 가로는 4㎝로 최근에 개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권수제(卷首題)는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 ‘판심제(版心題)는 ‘미타참(彌陀懺)’으로 확인된다. 권말에는 ‘成化十年秋八月日…金守溫奉敎謹跋’이라는 간행기록(刊記)이 있어서 1474년 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이 책의 제1권부터 제5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제1책’은 산실(散失)되어 결락(缺落)되었다. 하지만, 현존하는 ‘제2책’에서 위와 같은 김수온의 발문이 남아 있어서, 이 책의 간행 경위와 의의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조선 초기의 고서중 귀중서(貴重書)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관리하고 있음
  • 조선시대 불교의식집 '예념미타도량참법' 거제시 총명사에서 발견, 거제매일뉴스, 2016.2.12. http://www.gj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295 → 총명사 주지인 호석 스님이 2014년 가을 충주에 있는 ‘석종사’ 템플스테이에서 책의 가치를 인지했기 때문이다. 호석스님은 1980년, 명오스님에게서 받은 ‘예념미타도량참법’이 떠올랐다. 호석 스님은 이 책의 가치에 대해 동국대학교에 문의했고 불교문화보존에 아주 중요한 서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문화재 지정을 신청, 2015년 10월 29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92호로 지정받았다. 하지만 호석 스님에게 참법을 전해 준 명오 스님도 그의 은사인 성하노 스님으로부터 “수행의 지침으로 삼아 불법홍포에 매진하라”면서 받은 책이어서 성하노 스님이 이 서적을 어떻게 갖게 됐는지는 안타깝게도 알 길이 없다. / 이 책은 원래 총10권으로 금나라 극락거사 왕자성이 집성했고, 숭경2년(1213년)에 이돈보가 지은 미타참서에 실려 있다. 총명사에 있는 이 책은 5권(권6~10) 1책의 목판본(木版本)이다. 권6은 25장, 권7은 24장, 권8은 15장, 권9는 22장, 권10은 20장, 권10의 끝에 수록된 발문(跋文)은 3장이다. 권10의 끝에 책을 간행하는 경위와 의의 등을 기록한 김수온의 발문에 이어 인수왕비 한 씨, 인혜왕대비 한 씨 등 시주자가 적혀 있다. / 발문에 따르면 1474년(성종5) 공혜왕후가 돌아가자 세종, 세종의 비 소헌왕후, 세조, 세조의 맏아들 의경대왕 덕종, 예종 등에 대한 추모의 정을 잊지 못해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중추부사 성임에게 명해 자비삼매참과 미타참을 다시 쓰게 해 판각했다고 한다. 시주에는 왕을 비롯한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 예종의 비인 인혜대비, 월산대군, 제안대군 등 종친과 공주, 숙의, 상궁 등이 참여했다. 또, 백종린, 권돈일, 이장손, 장막동, 이영산 등 판목을 새긴 화원들과 각자(刻字) 등 간행에 관여한 인물의 명단이 수록돼 있어 조선왕실에서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했음을 알 수 있다. / 조선 왕실에서 이뤄진 것 가운데 가장 정성을 들인 판본으로 조선 전기 고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조선 초기 왕실 발원으로 간행된 불경으로 이후 전국 각처에서 간행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모본으로 영향을 준 자료다. 같은 판본으로는 총명사에 있는 것을 포함해 보물 1144호(권6~10의 1책)로 지정돼 있는 목아박물관의 것과 보물 1470-1호로 지정돼 있는(권6~10) 영광 불갑사의 것,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48호(권1~5 1책)인 원주 고판화박물관의 것, 그리고 보물 제1165호(권3~4, 권7~8의 1책) 김영래 씨가 갖고 있는 것 등 모두 6종이 전하고 있는 것으로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다.
  • 예념미타 도량참법, 국립중앙박물관,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treasure/view?relicId=2361 → 예참(禮懺)이란 몸과 마음과 입으로 지은 모든 악업을 참회하는 의식을 말한다.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은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예참 의식의 절차와 내용을 소개한 의식집이다. 이 책은 세조(世祖)의 비(妃)인 정희대왕대비(貞熹大王大妃)가 손자 성종(成宗)의 아내였던 공혜왕후 한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목판본이다. 정희대왕대비는 당시 세조와 자신의 아들 의경세자[德宗], 예종(睿宗) 등 여러 왕실 가족의 죽음을 겪었다. 손자며느리인 공혜왕후가 19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뜨자 선왕 선후인 세종과 세종의 비 소헌황후 등을 비롯해 먼저 세상을 등진 이들의 극락왕생을 빌면서 성임(成任)에게 명하여 제작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