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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__NOTOC__ = '''5.18사적지 제21호, 5.18 최초발포지''' = == 이야기 == 5·18 최초발포지는 1980년 5월 19일 오후, 광주 동구 계림동...)
 
(5.18사적지 제21호, 5.18 최초발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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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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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2024-C042|국가폭력의 흔적과 시민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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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342|5.18사적지 제14호, 주남마을 인근 양민학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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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343|5.18사적지 제15호, 광목간 양민 학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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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345|5.18사적지 제17호, 고문과 폭력의 역사가 남아있는 상무대 옛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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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346|5.18사적지 제18호, 차량 시위가 시작된 곳 무등경기장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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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347|5.18사적지 제19호,  따뜻한 나눔이 있었던 시장 양동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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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348|5.18사적지 제20호, 광주공원 광장-시민군 편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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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349|5.18사적지 제21호, 5.18 최초발포지]]
  
 
== 주석 ==
 
== 주석 ==

2025년 12월 24일 (수) 18:32 기준 최신판


5.18사적지 제21호, 5.18 최초발포지

이야기

5·18 최초발포지는 1980년 5월 19일 오후, 광주 동구 계림동 광주고등학교와 계림파출소 사이에서 계엄군이 처음으로 시민을 향해 총을 쏜 현장이다. 당시 제11공수여단 제63대대 장갑차가 시위대에 포위되자, 당황한 운전병이 가로수를 들이받아 장갑차가 멈췄고, 진퇴양난에 몰린 계엄군은 처음에는 공포탄을, 이어 실탄을 발사했다. 이 과정에서 김영찬(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 3학년)이 손과 대퇴부 등에 총상을 입는 피해를 당했다.

당시 계엄군은 발포 사실을 은폐하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으며, 계엄사와 보안부대는 이를 유언비어로 치부하며 조사하려 했다. 그 결과 최초 발포는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못하고 시민들의 증언으로 전해졌다.

오늘날 이곳은 5·18 사적지 제21호로 지정되어, 국가 폭력의 실체와 시민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일깨우는 현장으로 보존되고 있다.

스토리 그래프



이야기 지도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