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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4.19혁명, 기억과 기념의 흔적

이야기

광주에서 일어난 4.19혁명3·15 부정선거에 대한 규탄에서 비롯되었다. 1960년 3월 15일 낮, 금남로4가 민주당 선거사무소 앞에 모인 시민 천여 명은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장송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했으며, 이 시위는 광주 3·15의거로 기록되었다. 불과 몇 시간 뒤 마산에서도 같은 시위가 일어나고, 결국 김주열 학생의 시신 발견으로 분노가 전국으로 번지면서 4·19혁명으로 확산되었다.

광주에서는 특히 광주고등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시위에 나섰고, 이들의 행동은 지역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이후 학교는 4·19 민주혁명역사관의 일부로 편입되어 항쟁의 기억을 전하는 공간이 되었다. 혁명의 현장을 기념하기 위해 광주 4·19혁명기념탑광주공원에 세워졌고, 4·19혁명코스에는 광주고등학교와 광주광역시 4·19민주혁명기념관이 포함되어 시민과 학생들의 투쟁을 기리는 길로 조성되었다.

또한 예술과 단체 활동을 통한 기념도 이어졌다. 화가 우제길은 《4·19 혁명의 빛》을 제작하여 혁명의 의미를 형상화하였고, 4·19민주혁명회는 전국적 기념 활동을, 광주전라지부는 지역 기념 운동을 주도했다. 2011년 출범한 호남4·19혁명단체총연합회는 호남의 여러 단체를 통합하여 기념사업을 체계적으로 이어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광주정신’은 4·19혁명과 더불어 계승되어, 이후 광주 민주화 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한편 버스 419번은 혁명을 기리는 상징적 번호를 달고 도심을 오가며, 시민들에게 일상적으로 4·19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문화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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