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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국채보상운동
이야기
1907년부터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에 진 빚을 국민 스스로 갚아 국권을 회복하려는 민족운동이었다. 광주에서는 대동의무소가 중심이 되어 국채보상기성회를 발족하고, 지역 인사인 김홍두, 최성기, 한남수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 순검이었던 최흥종은 일본경찰 고문부 사도하라로부터 국채보상운동 주모자 체포와 최성기 상점(현 충장로3가)에 걸린 대동의무소 간판 철거를 지시받았다. 그는 고심 끝에 경찰서에 수감 중이던 의병장 백낙구와 상의하여 지시 내용을 외부에 알렸고, 이에 따라 간판이 미리 철거되고 관련자들이 피신할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최흥종은 순검직을 사임하였다.
광주 시민들은 전통적 협동 정신인 십시일반을 실천하며 광주 좀도리 운동을 통해 국채보상기금을 모았다. 식사 때마다 쌀 한 숟가락을 덜어 기부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훗날 사회복지 차원의 사랑의 좀도리 운동으로 계승되어 새마을금고 주관 아래 지속되고 있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