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혜운스님(慧雲, 1911生, 비구니)

biguni
이병두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8월 19일 (금) 16:12 판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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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혜운(慧雲)스님은 선암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부처님 오신 날을 국경일로 지정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서울 영화사에 있는 부처님 오신날 공휴일 제정 공적비에는 혜운스님이 비구니로는 유일하게 들어있는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11 경기도 양주 출생
1914 서울 미타사에서 정행(淨行)스님을 은사로 출가
1924 청호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32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41~1952 삼선암, 광주 신광사, 부도암, 남해 보리암 등 안거 성만, 미국 오하이오주 보덕사 불사
1954 한국불교 승단 정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제2회 임시 종회시 종회의원
1959 불교정화 후 구례 천은사 주지
1960 순천 선암사 주지
1965~1966 삼선암 주지
1967~1969 신광사 법당 건립
1970 양산 내원사 주지 및 가람불사
1973 신광사 요사채 건립
1974 청도 운문사 강원 주지
1982~1986 신광사에서 수행정진
1985 미국 오하이주에 보광사 개원
1986~1995 문중회장
1995 단일구족계단 비구니 증사(별소계단 17회 니화상(尼和尙))
2004 신광사 주지
2007 명사(明師) 법계 품서 받음
2009.4.2. 광주 신광사에서 입적( 세수 98세, 법납 95세)
문중 삼현(三賢)문중
수계제자 경법(敬法)・경인(敬仁)・경준(敬俊)・경덕(敬德)・경심(敬心)・경주(敬柱)・경봉(敬峯)・경희(敬喜) (한국의 비구니 문중: 경인(敬仁)・경법(敬法)경주(敬柱)・경호(敬鎬・)경심(敬心)・경준(敬俊)・경희(敬喜)・경덕(敬德)・경봉(敬峯)・경륜(敬輪)・경식(敬植)・경수(敬洙) 12명임)
혜운스님과 경주스님(오른쪽) 사진출처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 151

활동 및 공헌

출가

진금당(眞金堂) 혜운(慧雲)스님은 1911년 1월 20일 경기도 양주군 동부면 배알리의 문성공 23대 자손인 아버지 안군경과 어머니 경주 김씨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이름은 안말례이다. 스님은 깊은 불연으로 세 살 때부터 서울 미타사에서 성화(性崋)스님의 보살핌으로 자랐는데 애석하게도 부모와 같던 성화스님은 스님이 7세 되던 해에 입적하셨다.

미타사에서 도량 청소와 염불 등을 익히며 수행자로서의 기초를 익힌 스님은 1924년 13세에 정정행스님을 은사로, 강청호 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받았다. 당시의 노스님들은 종종 젊은 스님들이 학문을 배우면 못 쓴다고 생각하셔서 배움의 기회를 주지 않았는데, 마침 보문사에서 강원이 생겨서 스님은 금룡스님, 정명스님, 명주스님 같은 강사스님들로부터 초발심자경문과 법화경, 금강경, 능엄경, 화엄경을 배우게 되었다. 이후 22세인 1932년 3월 28일 동산 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고 1935년 5월 18일 탑골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6년 해인사 삼선암에서 대교를 배운 후에 하안거를 지내셨다.

여러 사찰 건립과 가람수호

스님은 수행의 길에 들어서시어 그동안 많은 불사를 하셨는데 31세인 1941년 광주 무등산에 처음 자운암을 신축하셨다. 그러나 직접 나무를 자르고 날라서 지은 자운암이 너무 높은 곳에 위치한 탓에 불편한 점이 많았으므로 조선대학교 뒤에 다시 신광사를 짓게 되었지만 이곳 또한 길이 없어 학교 앞을 지나가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많았다. 결국 예전에 논으로 쓰던 땅을 사들여 지금의 신광사를 건립하였다. 이후로도 스님은 여러 도량에서 많은 불사를 했으며, 특히 구례 천은사의 주지를 맡아서는 6·15전쟁으로 기울어진 도량을 중수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였다. 1970년에는 양산 내원사에서 논 이전 소송을 통해 농지를 정리하고 기와 불사 및 수도와 전기시설을 갖추는 등 사찰을 정비하셨다.

이러한 불사는 스님의 변함없는 기도정진을 그 바탕으로 이뤄졌다. 신광사 대웅전을 지은 스님은 지공, 나옹, 무학의 3화상을 모시고 천일기도를 하여 3년 만에 불사를 마치는 저력을 보이기도 하였으며 기도를 통해 운문사의 땅 문서를 찾기도 하였다.

운문사 강원 주지

1974년 청도 운문사 강원에 주지로 취임한 뒤 땅문서를 찾기 위해 고심하던 스님은 사리암에서 기도를 올렸다. 기도 3일째 되던 날 절을 하기 위해 엎드린 사이 스님은 누더기를 걸친 노장님이 하천 평지에 무엇인가를 놓고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마침내 사리암에서 기도하던 대처승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대처승은 주지스님의 기도가 효험을 발한 것이라며 전 주지였던 대처승을 찾아 만나 볼 것을 권해주었다. 이에 스님이 시자 두 명과 함께 당시 마을에 거주하던 대처승을 찾아가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3배를 드리고 땅문서 있는 곳을 묻자 스님의 태도에 대처승이 놀라워하며 땅문서 있는 곳을 일러주었고, 스님은 그것을 찾아 청도 법원에 등기하였다. 이렇게 해서 운문사의 땅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사리암 독성님 개금불사를 해 드릴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스님의 꿈에 나한님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거나 엎어져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를 이상하게 생긴 스님이 노장님께 꿈 내용을 말씀드리니 독성님께만 불사를 해 드리고 나한님을 안 해드려서 그렇다고 일러주셨다. 그리하여 스님은 나한님들도 개금을 해드렸다고 한다. 현재 사리암 독성님 계신 곳은 원래 법당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었는데, 법당을 꾸미고 나서 나한님의 계시를 받아 아래쪽 굴 밑에 사람의 출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스님의 기도를 통해 이뤄졌다.

1975년 스님은 운문사 주지를 사임하고 보덕사와 신광사 선원에서 안거를 하였다. 1985년에는 고암 큰스님을 모시고 미국 오하이오주에 보광사라는 절을 개원하였며, 다음해에 광주 신광사의 주지를 사임하였다. 1995년에는 문중 회장에 취임하여 소임을 보기도 하였다.

철저한 계율행

기도를 생활의 일부로 여기며 계율을 철저히 지키시는 스님은 간혹 젊은 스님들이 라면이라도 먹으려 하면 다 쫓아낼 정도로 엄격하였다. 때문에 ‘호랑이 스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마음공부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 스님은 소임 도중에도 항상 결제 대중과 같이 정진하여 신심이 장한 스님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비구니 구족계 전계 화상을 역임하였다.

명사 법계 품서되다.

2007년 10월 23일 스님은 조계종 종단 사상 처음으로 봉행된 비구니 스님에 대한 명사 법계 품서식에서 명사로 품서되었다.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은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봉행된 대한불교조계종 명사 법계 품서식에서 비구니 스님 7명에게 법계증과 가사를 수여하였다.

입적

[혜운스님의 다비식 모습] 사진출처 : 한국인의 문화와 삶(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knanuri12/221411157747 https://blog.naver.com/sknanuri12/221411160675
[신광사에 있는 혜운스님 부도] 사진출처 : 여행은 행복이다.(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ohmark/220968402768

스님은 2009년 4월 2일 광주 신광사에서 “이슬 같은 이 육신을 벗고서 보니, 뿌리 없는 나무에서 꽃이 피었네”라는 내용의 임종게를 남기로 조용히 원적에 들었다. 세수 98세, 법납 95세. 스님의 영결식은 4월6일 광주사암연합회장으로 엄수됐으며, 조계총림 송광사에서 다비를 모셨다. 모두 5과의 사리를 수습했다.

수계제자로는 경인(敬仁)・경법(敬法)・경주(敬柱)・경호(敬鎬・)경심(敬心)・경준(敬俊)・경희(敬喜)・경덕(敬德)・경봉(敬峯)・경륜(敬輪)・경식(敬植)・경수(敬洙)등이 있다.

광주 신광사

[신광사 대웅전] 사진출처: 여행은 행복이다.(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ohmark/220968402768

신광사는 광주 북구 두암동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말사이다. 1933년 광주시내에 거주하는 최동열 모친 김청제월 보살님의 시주금으로 당시 대본산 선암사 광주시 서방 포교당으로 창건하였다. 절은 본래 광주시 동구 지산동 495번지 조선대학교 교내에 있었으며 1991년 1월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절은 1944년 10월 20일에 주지 비구니 안혜운 스님이 인수 보호중 법당이 협소하여 1964년 4월에 법당과 선방을 중창하였다. 1974년 8월에 요사채가 고가(古家)로서 헐고, 다시 요사와 강당을 중창하여 현재에 이르렀으며, 그 뒤 경주(敬柱) 스님이 절 살림을 맡아 오던 중 1992년 대웅전에 3불과 4보살상을 봉안하고 요사와 삼성각 등을 불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은 호남의 명산인 무등산 줄기 산하호서 광주 시가지를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선남선녀 여러 불자들이 국태민안과 무운장구를 빌며 부처님의 진리를 탐구하는 선원으로써 유명한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대웅전(大雄殿)은 잘 정돈된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화려한 다포식(多包式)의 건물이다. 창호는 빗살창과 꽃창살이 어울어져 짜여져 있다. 중심의 어칸은 4분합의 문을 달았는데, 중앙을 꽃창살로 꾸몄고 그 옆칸은 3분합, 양 끝 협칸은 2분합의 문을 달아 비율을 맞추었다. 내부의 바닥은 마루를 깔았고,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여 꾸몄다. 안에는 석가모니를 주불로 약사와 아미타 삼존불과 문수, 보현, 관음, 지장보살 상을 모셨다. 후불탱, 감로탱, 신중탱, 지장탱, 증명탱 등의 여러 폭의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지장탱화는 1900년대 중기의 작품이고, 나머지 불화는 1995년에 조성하였다.

삼성각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안에는 독성상과 독성탱화, 산신탱화, 칠성탱화등이 봉안되어 있는데 모두 1965년에 조성하였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혜운(慧雲)스님 본항목 혜운스님(慧雲, 1911~2009) 慧雲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혜운스님(慧雲,_1911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혜운(慧雲)스님 삼현(三賢)문중 ~의 일원이다
혜운(慧雲)스님 정행(淨行)스님 ~의 제자이다
혜운(慧雲)스님 미타사 ~에서 출가하다
혜운(慧雲)스님 청호스님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혜운(慧雲)스님 동산(東山)스님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혜운(慧雲)스님 광주 신광사 ~을 중창하다
혜운(慧雲)스님 순천 선암사 ~의 감원(주지)을 역임하다
혜운(慧雲)스님 구례 천은사 ~의 감원(주지)을 역임하다
혜운(慧雲)스님 양산 내원사 ~의 감원(주지)을 역임하다
혜운(慧雲)스님 광주 신광사 ~의 감원(주지)을 역임하다
혜운(慧雲)스님 운문사 강원 ~의 감원(주지)을 역임하다
혜운(慧雲)스님 삼선암 ~의 감원(주지)을 역임하다
혜운(慧雲)스님 미국 오하이오주 보광사 ~을 창건하다

지도

  • 신광사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 3동 193)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