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스님(慧鏡, 1924生, 비구니)
혜경(慧鏡)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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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혜경(慧鏡) |
법호 | |
속명 | 김점례 |
출생 | 1924.05.28. |
출가 | 1941년 |
입적 | 2015.10.15(음9.3) (세수 92세, 법납 76세) |
사찰 | 혜원사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339-4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혜경스님(慧鏡)은 3살 적에 친부모를 잃고 9세에 양부모를 만났으나 형편이 어려워 13세에 출가했는데 은사스님은 물론 자신조차도 병약하여 고생했던 경험들을 거울 삼아 힘들고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잘 헤아려 평생 자비행을 실천하신 대한민국의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한국비구니수행담록)[1] | 연도 | 내용(혜원사 카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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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 | 전북 부안 출생 | 1924 | 전북 정읍 출생 |
1941 | 청일암에서 지승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40 | 청일암에서 지승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40 | 예산 수덕사 만공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
1942 | 예산 정혜사에서 경전 수학 | 1942 | 예산 정혜사에서 경전 수학 |
정호내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45 | 호내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
국묵담(黙潭)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64 | 묵담(默潭)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
1965~1975 | 부안 월명암에서 수선 안거 성만 | 1965~1975 | 부안 월명암에서 수선 안거 성만 |
2000 | 혜원사 주석 | 1999 | 청일암에서 혜원사로 사찰명 변경, 제24교구 선운사 말사로 등록 |
2015 | 2015.10.15(음 9월3일) 세납 92세, 법납 76세로 입적 |
문중 | 계민문중(戒珉) |
수행지침 | 하루하루 부처님 법대로 열심히 살자 |
특기 | 어려운이웃 보살피기 (독거노인) |
취미 | 화초기르기 |
상훈 | 보건사회부장관 감사패외 다수 |
수계제자 | 선재·정원(靜園)·태정(兌禎) |
활동 및 공헌
출가
혜경(慧鏡)스님은 1924년 5월 28일 전북 부안군에서 경주 김씨 김기섭과 배성녀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경주이고 이름은 김점례이다. 스님은 세 살 되던 해에 양친을 모두 잃는 불운을 겪고 외가에서 살던 중 9세에 양부모를 만났다.[3]. 그러나 양부모 역시 형편이 어려워 힘들게 살아가다가 우연히 13세에 한 스님과 연이 닿아 출가하고자 했으나 양부모의 반대로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중한 불연이 있었던지 다시 지승스님과의 만남으로 이어져 18세 되던 해에 부안 청일암에서 지승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수행
출가 후, 79세의 연로하신 은사 지승스님을 시봉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지극한 효심으로 보살행을 실천했으며, 염불은 물론 절 살림에 이르기까지 소홀함이 없었다. 그 당시 연로하신 은사스님은 지병으로 건강이 몹시 나빴지만 혜경스님이 강원에서 수학하기를 원했다. 은사스님을 모실 스님이 없기도 했지만 스님은 효심이 지극하여 주위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시봉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스님은 대중 생활이나 강원 생활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하고 배움의 열정을 뒤로 접어두고 수행과 절 살림에만 전념해야 했다. 그러던 혜경스님 조차도 29세 되던 해에 스님도 결국 몸져누울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날 은사스님이 하얀 대접에 하나 가득 약을 가져다주는 꿈을 꾸었다. 스님이 감사히 그 약을 받아 7홉 정도 마시고 꿈에서 깨어나니 신통하게도 그동안 전혀 움직일 수 없었던 몸이 가볍기 그지없었고 병색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얼마 뒤에 완전히 회복되었다. 은사스님이 입적하신 후에 스님은 늦게나마 배움의 기회를 가지려고 했으나 다시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기도수행과 아이들 키우는 일에 정진했다.
자비행
스님은 부안군 부안읍 청우고등공민학교 부근의 오막살이 암자에서 신도도 한명 없이 어렵게 생활을 이어 가면서도 어릴 적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주위에 버려지는 핏덩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보듬어 동고동락의 삶을 실천했다. 그러나 본래부터 허약했던 스님은 많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 스님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키운 아이들이 성장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갔다. 스님은 찾아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간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다 자란 아이들이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당시 빈곤하여 굶는 일이 비일비재 생활 형편에도 아이들이 헐벗거나 밥을 굶는 일이 없도록 애를 썼다. 혜경스님의 자비행은 이뿐만이 아니라 무의탁 노인을 모시고 있다가 세상을 떠나면 장례까지 정성스럽게 치러주고 그 어려운 가운데도 틈틈이 노인복지회관을 방문하여 무의탁 노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옷을 세탁해주기도 했다. 이런 일들로 스님은 그동안 국가로부터 복지 부분에 관한 많은 상을 수상했는데, 스님은 시상식에 일부러 간 일이 전혀 없고 관련 단체에서 절로 직접 가져와 전달했다고 한다. 자신의 어려움을 잊은 채 칠십 평생을 고아들을 위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아온 스님은 진정한 보살이 아닐 수 없다. (혜경스님 다비식) 사진 : 연화회 (홈페이지; http://yunwha.com)
참고문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년, pp. 522~526)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년, p. 533)
- 법보신문 2015.10.16일자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9269
- 혜원사 다음카페 https://cafe.daum.net/hyewonsa/GAyx/134
- 연화회 홈페이지 http://yunwha.com/maha/g4/bbs/board.php?bo_table=history3&wr_id=169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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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慧鏡)스님 | 본항목 | 혜경스님(慧鏡, 1924~2015) | 慧鏡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혜경스님(慧鏡,_1924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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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慧鏡)스님 | 계민문중(戒珉) | ~의 일원이다 | |
혜경(慧鏡)스님 | 지승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
혜경(慧鏡)스님 | 부안 청일암(현 혜원사) | ~에서 출가하다 | |
혜경(慧鏡)스님 | 호내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혜경(慧鏡)스님 | 묵담스님(默潭)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혜경(慧鏡)스님 | 안거 | ~을(를) 성만하다 | 진주 월명암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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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혜원사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339-4
주석
다른 비구니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