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스님(明心, 1947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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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일 (목) 19:32 판
명심(明心)스님 | |
---|---|
법명 | 명심(明心) |
법호 | |
속명 | 서정희(徐貞姬) |
출생 | 1947.06.22. |
출가 | 1974년 |
입적 | |
사찰 | 동림사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동부리 722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명심스님은 폐사가 되다시피 했던 전통사찰 청도 대비사와 칠곡 금곡사를 일으켜 세운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47 | 대구 출생 |
1974 | 대구 관음사에서 선행(善行)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75 | 대구 동화사에서 서운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80 | 해인사에서 고암(古庵)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81 | 운문사 강원 16기로 졸업 |
1983 | 제9교구 말사 청도 대비사 주지 취임 |
1984~1994 | 대비사 중창 불사 , 부도군 정리
(대웅전 기와 불사, 전기 불사, 향로전 이전복원, 진입로 확장, 미등기토지 13필지 정리, 대웅전 문화재등록 보물 제834호 지정) |
1996 | 제9교구 말사 칠곡 금곡사 주지 취임 |
1997 | 금곡사 요사채 보수 및 토지 9필지 정리 |
2001 | 동림사 주지 취임 |
2004 | 현재 동림사 주지 |
문중 | 봉래(蓬萊)문중 |
생활신조 | 불제자(佛弟子)답게 살자. |
수계제자 | 도선(道禪)·도민(道玟) |
활동 및 공헌
마을 내 사찰에 다니며 불심을 키워 출가의 길을 택하다
명심(明心)스님은 1947년 6월 22일 대구시 동구 도동에서 아버지 서팔수(徐八洙)와 어머니 이유이(李有伊) 사이의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속명은 서정희이다. 막내로 태어난 스님은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잘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리더십이 탁월했다. 또한 어린 나이 때부터 불교를 좋아하여 마을의 관음사에 왕래하곤 했다. 그 후 스님은 1974년 선행스님을 만나 출가했고, 1975년 서운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받았다. 한동안 은사스님을 시봉하던 명심스님은 1977년부터 운문사강원을 다녔으며, 1980년 해인사에서 고암 대종사를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폐사나 다름없던 청도 대비사의 면모를 일신하다
스님은 1981년 운문사강원을 졸업하고 여러 선방을 다니며 정진했다. 1983년 어느 날 동안거를 준비하던중 어른스님으로부터 청도 대비사 소임을 맡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받아 선방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청도 대비사로 옮겼다. 도착해서 보니 대비사는 거의 폐사나 다름없었다. 실망한 스님은 하룻밤만 묵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밤을 보냈다. 다음날 법당에 가보니 전날 밤에 내린 비로 부처님과 좌대의 방석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님은 차마 떠나지 못하고 급한 대로 기와 불사라도 해서 부처님을 편안히 모셔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스님은 마을 노보살님과 함께 진입로를 확장하는 한편 도량정비 원력을 세우고 기도를 시작했다. 1984년 만등 불사를 시작하여 마침내 기와 불사까지 원만히 회향할 수 있었다. 이후 10년 동안 스님은 전기 불사를 비롯해서 사찰 미등기 토지 13필지를 정리하여 폐농지로 있던 땅을 다시 일구고 곡식을 심어 옥토로 바꾸어 놓았으며, 향로전을 이전 복원하였다. 또한 대웅전을 문화재로 등록시켜 보물 제834호로 지정받았다. 또한 대비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부도군을 여법하게 정리하여 모셨고, 매년 음력 9월 9일이면 진수를 준비하여 부도에 재를 올리는 의례도 정식화했다. 마침내 요사채를 보수하고 도로확장 공사까 마무리함으로서 대비사가 명실상부한 전통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금곡사 주지로 부임하여 사찰 면모를 일신하다
그런데 이렇게 혼신의 힘을 기울여 폐사지나 다름없던 대비사의 불사를 원만히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4년 느닷없이 본사로부터 주지직 퇴임 요청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대비사를 떠나야 할 처지에 놓인 명심스님은 당장 갈 곳이 없어 신도 집을 얻어 머무르다가 1996년 9월 칠곡군 금곡사 주지로 부임하였다.
가산면 금화리 274번지에 위치한 금곡사는 선덕여왕 7년(633년)에 김란(金蘭)이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금곡사 역시 앞의 대비사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여서 부임하자마자 허술한 요사채부터 보수하였고 토지대장을 살펴서 자칫 잃어버릴 뻔했던 소중한 문중 토지 중 미등기된 9필지 땅을 찾아 놓았다. 그러나 스님은 금곡사 또한 떠날 수밖에 없었고 2001년 동림사로 옮겨 새로이 가람을 이루었으며, 신도 교육과 가람 수호에 힘쓰고 있다. 명심스님은 2004년 현재 동림사의 주지로 재임 중이며, 수계제자로는 도선(道禪)·도민(道玟)스님이 있다.
참고문헌
-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뜨란출판사, 2007, pp. 502~506.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116.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
명심(明心)스님 | 본항목 | 명심(明心, 1947~) | 明心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명심스님(明心,_1947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
명심(明心)스님 | 봉래(蓬萊)문중 | ~의 일원이다 |
명심(明心)스님 | 대구 관음사 | ~에서 출가하다 |
명심(明心)스님 | 선행(善行)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명심(明心)스님 | 서운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수지하다 |
명심(明心)스님 | 고암(古庵)대종사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수지하다 |
명심(明心)스님 | 운문사강원 | ~을(를) 졸업하다 |
명심(明心)스님 | 청도 대비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 |
명심(明心)스님 | 대비사 대웅전 | ~의 문화재를 등록하다(보물 제834 지정) |
명심(明心)스님 | 대비사 부도군 | ~을(를) 정리하다 |
명심(明心)스님 | 칠곡 금곡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 |
명심(明心)스님 | 동림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 |
지도
- 동림사 :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동부리 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