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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민스님(聖敏)'''
수락산 내원암에 주석하신 스님. 비구니 [[재문스님(載文, 1943生, 비구니) | 재문스님(載文) ]]의 은사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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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스님(聖敏)<ref>『한국비구니수행담록』은 '聖敏'으로 되어 있고, 『한국의 비구니 문중』은 '性敏'으로 되어 있음</ref>은 수락산 내원암에 주석하신 스님. 비구니 [[재문스님(載文, 1943生, 비구니)]]의 은사이다. </br>
 
수락산 내원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강원도 건봉사乾鳳寺)의 스님이 묘향산(妙香山)에 있던 16나한(十六羅漢)을 옮겨 내원암에 봉안하여 ‘성사(聖寺)’라고도 불렸다. </br>
 
수락산 내원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강원도 건봉사乾鳳寺)의 스님이 묘향산(妙香山)에 있던 16나한(十六羅漢)을 옮겨 내원암에 봉안하여 ‘성사(聖寺)’라고도 불렸다. </br>
 
《봉선사본말사지》에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사찰의 면모를 온전히 갖추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부터로 1794년(정조 18)부터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과 승려들의 노력으로 사세가 점차 번창하였다. 1794년 조정의 지원으로 내원암 서쪽에 칠성각(七星閣)을 지었으며, 1796년 사성전(四聖殿)을 건립하였고 1825년에 지족루(知足樓)를 새로 지었다. 이어 1880년(고종 17)에는 조정에서 내원암의 모든 전각을 중건하였고 이후 1950년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1955년부터 다시 옛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br>
 
《봉선사본말사지》에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사찰의 면모를 온전히 갖추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부터로 1794년(정조 18)부터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과 승려들의 노력으로 사세가 점차 번창하였다. 1794년 조정의 지원으로 내원암 서쪽에 칠성각(七星閣)을 지었으며, 1796년 사성전(四聖殿)을 건립하였고 1825년에 지족루(知足樓)를 새로 지었다. 이어 1880년(고종 17)에는 조정에서 내원암의 모든 전각을 중건하였고 이후 1950년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1955년부터 다시 옛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br>
 
비구니 성민(性敏)스님이 칠성각과 요사·대방(大房)을 신축하였으며, 1968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건립하였다. 그 후 영산각(靈山閣)과 요사 2동이 지어졌고 미륵전을 복원하였다.  </br>
 
비구니 성민(性敏)스님이 칠성각과 요사·대방(大房)을 신축하였으며, 1968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건립하였다. 그 후 영산각(靈山閣)과 요사 2동이 지어졌고 미륵전을 복원하였다.  </br>
 
수락산 내원암에 3층 부도탑 형식비구니 성민 사(師) 공덕비가 있다. </br>
 
수락산 내원암에 3층 부도탑 형식비구니 성민 사(師) 공덕비가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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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法起)문중|법기문중(法起門中)]]의 성민스님(性敏)은 계흔(桂昕,5)→[[창수스님(昌守,_1842生,_비구니)|창수(昌守,6)]]→[[상근스님(祥根,_1872生,_비구니)|상근(祥根,7)]]→보완(寶玩,8)→'''성민(性敏,9)'''→재현(載賢,10), [[재문스님(載文,_1943生,_비구니)|재문(載文,11)]], 효봉(曉逢,11), 재석(載錫,11), 재만(載晩,11)스님으로 계승된 세계를 이었다. </br> </br>
※ 출처 : [https://shimhkx.tistory.com/8697536 사찰 순례] (사찰 이야기) 순조의 탄생 비화가 전해오는 수락산 내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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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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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shimhkx.tistory.com/8697536 사찰 순례] (사찰 이야기) 순조의 탄생 비화가 전해오는 수락산 내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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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363, 364.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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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8.</br></br>
  
 
[[분류 : 비구니스님]]
 
[[분류 : 비구니스님]]

2024년 5월 19일 (일) 11:28 기준 최신판

  • 성민스님(聖敏)

성민스님(聖敏)[1]은 수락산 내원암에 주석하신 스님. 비구니 재문스님(載文, 1943生, 비구니)의 은사이다.
수락산 내원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강원도 건봉사乾鳳寺)의 스님이 묘향산(妙香山)에 있던 16나한(十六羅漢)을 옮겨 내원암에 봉안하여 ‘성사(聖寺)’라고도 불렸다.
《봉선사본말사지》에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사찰의 면모를 온전히 갖추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부터로 1794년(정조 18)부터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과 승려들의 노력으로 사세가 점차 번창하였다. 1794년 조정의 지원으로 내원암 서쪽에 칠성각(七星閣)을 지었으며, 1796년 사성전(四聖殿)을 건립하였고 1825년에 지족루(知足樓)를 새로 지었다. 이어 1880년(고종 17)에는 조정에서 내원암의 모든 전각을 중건하였고 이후 1950년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1955년부터 다시 옛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비구니 성민(性敏)스님이 칠성각과 요사·대방(大房)을 신축하였으며, 1968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건립하였다. 그 후 영산각(靈山閣)과 요사 2동이 지어졌고 미륵전을 복원하였다.
수락산 내원암에 3층 부도탑 형식비구니 성민 사(師) 공덕비가 있다.
법기문중(法起門中)의 성민스님(性敏)은 계흔(桂昕,5)→창수(昌守,6)상근(祥根,7)→보완(寶玩,8)→성민(性敏,9)→재현(載賢,10), 재문(載文,11), 효봉(曉逢,11), 재석(載錫,11), 재만(載晩,11)스님으로 계승된 세계를 이었다.

[참고자료]

  • 사찰 순례 (사찰 이야기) 순조의 탄생 비화가 전해오는 수락산 내원암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363, 364.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8.

  • 『한국비구니수행담록』은 '聖敏'으로 되어 있고, 『한국의 비구니 문중』은 '性敏'으로 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