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정목스님(正牧, 1960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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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동 정각사에서 광우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정목스님은 1980년 해인사 금강계단에서 고암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으며, 해인사 삼선암에 주석하시던 성문 큰스님이 노스님이시다.
 
삼선동 정각사에서 광우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정목스님은 1980년 해인사 금강계단에서 고암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으며, 해인사 삼선암에 주석하시던 성문 큰스님이 노스님이시다.
[[파일:418-01.jpg|섬네일|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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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418-01.jpg|섬네일|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38]]
  
 
===수학과 포교활동과  삼소회(三笑會)를 창립===
 
===수학과 포교활동과  삼소회(三笑會)를 창립===

2022년 7월 27일 (수) 19:02 판



정의

정목(正牧)스님은 광우(光雨)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활발한 방송 포교를 하고 마음공부전문방송 유나 개설하고 정각사 주지를 역임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60 서울 출생
1976 서울 정각사에서 광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1976 지관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80 해인사 금강계단에서 고암(古庵)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82~1984 대학생 불교연합회 종로지부 7개 대학 지도법사
1984~1985 은석국민학교 불교학생회 지도법사
1985 동국대학교 선학과 졸업
1986~1990 서울대학병원 지도법사
1988~1989 삼소회(불교, 천주교, 원불교의 여성종교인 모임) 창립 및 활동
1990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
1990~1993 전화상담기관 ‘자비의 전화’ 창립 및 이사 취임
1990~1995 불교방송 최초의 승려 MC로 ‘차 한잔의 선율’, ‘거룩한 만남’ 진행
1994~1995 ‘맑고 향기롭게’ 추진위원
1998 선다암 창건, 부처님 오신 날과 연말에 ‘아픈 어린이돕기 사랑의 운동’ 전개
1999 KBS FM에서 종교프로그램 진행
2004 선다암 주석, 마음고요선원 운영
2007 마음공부전문방송 유나 개설
2002 서울 성북구 정각사 주지

기타사항

문중 계민(戒珉)문중
수행지침 매순간 마음의 현상들을 관찰하며 깨어 있기, 무상과 고, 무아의 속성 깨닫기, 진리의 길을 걷기 위한 열반 증득의 유일한 길 따라 수행하기
저서 및 작품 『마음고요』, 학고재, 2002

『산빛 이야기』, 바움, 2007

『마음 밖으로 걸어가라』, 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티벳 사자의 서(오디오북)』, 정신세계사, 2008

『오늘은 내 기쁜 생의 첫날』, 공감,2012

『비울수록 가득하네』, 쌤앤파커스, 2013

『꽃도 꽃피우기 위해 애를 쓴다』, 꿈꾸는서재, 2017

『마음아 행복하여라』, 모과나무,2018 (공저)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수오서재, 2020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모네의정원(모네정원), 2021

광우편/정목정리, 『묘법연화경 한글 독송본』, 김영사, 2021

상훈 불교방송 공로패, 제18회 한국방송대상 사회자상 외 다수
수계제자 현산(玄山)·현동(玄東)·현오(玄悟)·현견(玄見)·현조(玄照) (한국의 비구니 문중에서 첨가)

활동 및 공헌

출가

praina 정목(正牧)스님은 1960년 음력 6월 1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이름은 이신혜이다. 스님은 부처님과 일찍 인연을 맺어 6세 때부터 절에서 자랐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국민학교 글짓기 시간이나 장래 희망을 이야기할 때면 조금도 망설임 없이 스님이 되겠다고 답하였다. 스님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당연하다는 듯이 삭발을 결심했다. 이에 은사스님이 놀라며 좀 더 커서 하기를 권하였으나 조르다시피 하여 삭발을 하였다. 1976년, 스님의 나이 17세 때였다.

삼선동 정각사에서 광우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정목스님은 1980년 해인사 금강계단에서 고암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으며, 해인사 삼선암에 주석하시던 성문 큰스님이 노스님이시다.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38

수학과 포교활동과 삼소회(三笑會)를 창립

스님은 1985년 동국대학교 선학과를 졸업하였고, 1990년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였다. 정목스님은 대학에서 공부에 열중하는 한편 포교 일선에도 열정을 쏟았다. 1982년부터 1984년까지 대학생 불교연합회 종로지부 7개 대학 지도법사,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은석국민학교 불교학생회 지도법사, 1986년부터는 서울대병원 지도법사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1988년에는 불교, 천주교, 원불교의 여성 종교인 모임인 삼소회(三笑會)를 창립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또한 1990년부터 1993년에 이르는 동안 전화상담 기관 ‘자비의 전화’를 창립하고 이사를 역임하였다.

===불교방송 최초의 승려 MC로 활동 스님의 진가가 유감없이 드러난 것은 1990년 불교방송 최초의 승려 MC로서 ‘차 한 잔의 선율’과 ‘거룩한 만남’을 진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스님의 호소력 강한 목소리는 불자는 물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까지 사로잡았다. 마침내 종교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방송대상 사회상 및 방송 프로듀서 연합회 사회상을 수상하는 등 전문 방송인을 뛰어넘는 재능을 인정받았다. 노래 ‘바람 부는 산사’

은사와 상좌의 입적

1995년 가을, 갑작스럽게 존경하던 은사스님이 입적했고 다음해인 1996년에는 꽃다운 나이의 제자를 떠나보냈다. 이에 정안스님은 생사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스님은 3년만 열심히 정진하면 생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람 수호와 포교 의무를 일단 접어둔 채 천진암은 제자에게 일임하고, 지장암은 권속에게 부탁한 후 오로지 참선 수행에만 몰입하였다.

오대산 지장암 면모 일신

지장암의 모습

스님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공부와 일상생활이 둘이 아니며 자신이 머물고 있는 처처가 다 배움터요, 행하는 모든 일이 공부 아님이 없다는 자각이 분명해졌다. 이에 스님은 지장암으로 돌아왔고 5년간 상상을 초월하는 커다란 화두와 직면하게 되었다.

나날의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화두, 곧 육신을 죽일 것인가, 설자리를 버릴 것인가, 마음을 죽일 것인가 등등이 꼬리를 물고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님은 공동체 삶속에서 발생하는 각종 에피스드를 수행의 재료로 삼아 어려움을 통해 겸손을, 가난한 살림살이를 통해 감사를 배웠다고 한다.

또한 북방 최초의 비구니 선원이라는 명성에 조금이라도 부응할 수 있도록 지장암 내 기린선원을 정비하여 많은 대중이 살 수 있게끔 조건을 갖추는데 공헌했다.

사찰

  • 보덕사(☎ 041-353-9306):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207-36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정안(淨岸)스님 본항목 정안스님(淨岸, 1951~2014) 淨岸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안스님(淨岸,_1951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정안(淨岸)스님 봉래(蓬萊)문중 ~의 일원이다
정안(淨岸)스님 혜종(慧宗)스님 ~의 수계제자이다
정안(淨岸)스님 오대산 남대 지장암 ~에서 출가하다
정안(淨岸)스님 희찬(喜燦)스님(1919~1983; 비구스님)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정안(淨岸)스님 성원(性源)스님(1927~2004; 비구스님)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정안(淨岸)스님 오대산 남대 지장암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
정안(淨岸)스님 백양사 천진암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
정안(淨岸)스님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을 중창하다
정안(淨岸)스님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을 설립하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