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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5~592. |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5~592. | ||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53. |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53. | ||
− |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211, 413 | + |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211, 410, 413. |
* 영남일보, [우리시대 인물열전 .27] 불복장 의식 전문가 선진 스님 (2006년)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060508.010280759230001 | * 영남일보, [우리시대 인물열전 .27] 불복장 의식 전문가 선진 스님 (2006년)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060508.010280759230001 | ||
* 불교타임즈, '부처가 똥독과 술독에 빠지다' 선진 스님 ‘동이이(同而異)’전 (2009년) https://bud1080.tistory.com/1048 | * 불교타임즈, '부처가 똥독과 술독에 빠지다' 선진 스님 ‘동이이(同而異)’전 (2009년) https://bud1080.tistory.com/10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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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8일 (수) 07:56 기준 최신판
선진(善眞)스님 | |
---|---|
법명 | 선진(善眞) |
법호 | |
속명 | 정명자 |
출생 | 1961.01.02. |
출가 | 1980년 |
입적 | |
사찰 | 보현암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257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선진(善眞)스님은 유광(琉光)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 법당을 개원하고 불복장 의식 연구를 하고 불교설치미술가인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61 | 경북 고령 출생 |
1978 | 대구 경명여고 졸업 |
1980 | 운문사에서 유광(琉光)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61 |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86 |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운문사 강원 졸업 |
1993 | 서울 노원구에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법당 창립 |
1994 | 중앙승가대학교 4학년 때 아나율 승가회 창립 및 회장 역임 중앙승가대학교 졸업 |
2000 | 원광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
2002 –2022 | 대구 보현암 주지 |
2003 | 원광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취득 |
2006 | 불교설치미술 '옴' 전시회 |
2009 | ‘동이이(同而異)’ 전시회 |
2010 | `점심` 전시회 |
2012 | ‘惚!恍!(홀!황!)전’ |
2013 | '천강월(千江月)' 전시회 |
2014 | '하루헌 궁리전’ 전시회 |
2015 | ‘안횡비직’ 전시회 |
2016 | ‘불연지 대연’ 전시회 |
2017 | '지금 여기(卽時現今)' 전시회 |
2022 | '바로 지금 여기' 전시회 |
문중 | 봉래문중(蓬萊) |
수행지침 | 육자진언 10만장 배포와 불복장의식(佛服裝儀式) 연구에 원력을 둠. |
생활신조 | 고통은 정화의 과정이다. |
저서 및 작품 | 『불복장의식에 관한 연구』 |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 본공(本空, 6)→선행(善行, 7)→명성(眀星, 8)→유광(琉光, 9)→선진(先眞, 10) |
활동 및 공헌
출가
선진(善眞)스님은 1961년 1월 2일 경북 고령 운수면에서 아버지 동래 정씨와 어머니 성주 이씨 사이의 1남 5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동래이며, 이름은 정명자이다. 경북 고령에서 중학교를 마친 뒤 1978년 대구 경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님은 어려서부터 또래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조용히 사색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유복한 집안에서 별다른 근심 걱정 없이 남부럽잖게 생활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로 고뇌하였다.
‘사람은 왜 태어나고 왜 죽어야 하는가?’, ‘왜 해는 뜨고 져야 하나?’, ‘어째서 어떤 이는 공부를 잘하고 어떤 이는 못하는 걸까?’, ‘왜 어떤 이는 부자이고 어떤 이는 가난하게 사는 것일까?’ 등 일찍부터 삶에 관한 의문과 문제 의식이 많았다. 스님은 부모님께 출가의 뜻을 밝혔으나 유교를 굳건히 숭상하던 집안인지라 허락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집안의 만류 속에서도 불법을 향한 스님의 마음은 쉽게 꺾이지 않았고 안타까움만 간직한 채 불연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1980년 5월 18일에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알게 되면서 생사의 근원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뇌하였고, 이는 결국 출가의 뜻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해 11월 스님은 운문사에서 유광(琉光)스님을 은사로 삭발하였다. 스님의 나이 20세 때였다. 이어서 스님은 1981년 2월 자운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고, 같은 해 3월 운문사 강원에 입학하였다.
스님이 행자 생활을 하던 시절 승단의 현실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조실부모하고 동진 출가한 스님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스님은 삶에 무상함을 느끼고 뒤처진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이 절집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심각하리만치 회의에 젖곤 하였다. 그 무렵 선진스님의 눈에는 스님들이 한결같이 무지하며 현실 감각이 너무 없는 탓에, 명석하고 뛰어난 사람도 절집에 들어오면 시나브로 전반적인 개념들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비쳐지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차츰 세월이 흘러 어느 정도 불법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너무 그릇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스님은 사람의 판단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철저히 깨달았다.
섣부른 소견으로는 현상과 본질을 동시에 고찰하기란 쉽지 않았다. 속세의 편협한 잣대로 보면 스님들 생활만큼 불행한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좀 더 깊고 그윽한 눈으로 본질적인 가치를 탐구해나가면서 스님은 부처님 법을 만난 일만큼 지중하고 거룩한 것이 없음을 깊이 자각하였다. 세상의 명예와 이익에 눈이 멀어서는 무상 발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세속의 가치로는 이해할 수 없고 하찮게 보이는 일들이 불법의 가치로는 참으로 숭고하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아가며 스님은 더없이 큰 환희를 느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기한(飢寒)에 발보리심(發菩提心)’, 곧 춥고 배고플 때 오히려 보리심이 일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스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행자의 길이야말로 ‘축복이 가득한 삶’이라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다.
강원생활
강원에 있을 때 선진스님은 절집이 중생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방법을 구하다가 회보의 필요성을 느끼고 치문반 때 운문회보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또한 관람객들이 찾아오면 스스로 나서서 안내를 도맡았다. 그리고 배구대회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어른스 님들을 설득하여 승낙을 얻어내는 등 불법에 귀의한 이래 환희에 젖어 의욕적으로 활동하였다. 이처럼 바쁜 생활 속에서도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자각하고 『금강경』을 하루에 7편씩 3년 동안 독송하기도 하였다.
스님은 『능엄경』을 공부하면서 재발심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치문』에는 수행자를 향한 조사 스님들의 경책과 당부의 말씀이 대부분인데 스님은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을 읽었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럴 즈음 『능엄경』을 접하고 나서 불교는 철학은 물론이고 물리, 심리학, 우주 과학 등을 폭넓게 아우른 종교임을 재인식하면서 신심을 돈독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중앙승가대학교에 입학과 불의의 사고
1986년 스님은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받고 강원을 졸업하였다. 그 후 파주에서 군인들을 위한 포교를 2년간 하면서 1990년에는 중앙승가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1992년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불상사를 계기로 실의에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성찰을 통해 복지 이념을 확고히 다지며 졸업 논문도 〈심신장애 승려의 복지 의식과 욕구〉라는 주제로 썼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뒷날 장애인 복지사업에 대한 열의로 꽃피어났다.
‘아나율승가회’를 창립
선진스님은 1994년 중앙승가대학교 4학년 재학 중에 학인으로서 ‘아나율승가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아나율승가회에 가입한 스님들은 20여 명으로 회원들 대부분이 교통사고를 당한 분들인데, 후원회 없이 힘겹게 운영하다 보니 활동이 점차 뜸해지고 있어 스님은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 법당을 개원
스님은 대학 졸업 후 1993년 33세 때 서울 노원구에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 법당을 개원하였다. 법당이 2층에 있는 까닭에 장애인들을 일일이 업고 오르내려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이러한 불편이 장애인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스님의 열정을 식히지는 못했다.
스님은 장애를 입고 난 뒤에야 자신보다 낮은 곳에 있는, 그리고 자신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돌볼 마음이 비로소 생겼다고 한다. 세상의 아픔이 가슴속에 절절히 스며들며 자비의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옛 조사스님들 중에도 무리한 수행 정진의 열정으로 말미암아 장애를 입게 되신 분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신체적인 손상이 수행자에게 결코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며 스님 역시 그저 묵묵히 불법의 길을 당당히 걸어왔다. 밖으로 한없이 치닫는 마음을 자기 극복의 발판으로 삼아 내면을 깊이 성찰하며 불심을 펴온 것이다.
다라니 수행과 불복장 의식 연구
학교를 졸업한 스님은 몸이 불편한데다 거처할 곳 또한 마땅치가 않아 천안에서 기도를 하며 2년 동안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스님은 빨간 글씨로 써진 다라니 육자진언을 3번이나 받았고, 그 뒤로도 붓과 먹을 받는 꿈을 자주 꾸었다.
스님은 그 꿈을 몸이 불편한 자신을 안타까이 여기신 부처님께서 수행의 방편으로써 가피를 주신 것으로 여기고 글씨를 쓰기 시작하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광명진언이나 육자진언을 100만 장을 쓰리라고 계획하였다. 그런데 그 일이 너무 힘에 부치자 육자진언으로 기도하며 광명진언이나 육자진언을 써서 배포하는 것으로 포교를 대신하며, 현재 2만5천 장을 목표로 붓을 잡고 있다.
이와 같이 다라니 수행을 하다 보니 스님은 자연히 불복장 의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비구니로서는 드물게 불복장 의식을 주제로 원광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전국 사찰에서 불복장 의식에 대한 문의가 오면 이에 관한 실제적인 정보와 전반적인 물품 및 다라니를 보시하고 있다. 한편 인터넷 포교를 위해 생명, 환경, 평화 등을 중심 주제로 ‘하루헌(何陋軒)’이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포교활동
그동안 스님은 군인들을 위한 포교를 비롯하여 탄광촌에서 강론도 하고 일반 신도들과 법회도 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수행과 경험 부족으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낄 때, 게다가 재정적인 연유로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을 포기해야만 할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교 포교가 높은 곳에는 항상 지원을 넉넉히 하는 반면 낮은 곳은 쳐다보기조차 꺼려한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작 포교가 필요한 곳은 낮은 곳임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고통은 정화 과정’이라고 확신하는 스님은 ’팔풍 경계에 끄달려 불의에 타협하지 말자‘는 좌우명으로 자신을 곧추세우고 있다.
스님은 자신이 본받고 싶은 수행자로 부여 봉곡사의 법진 노스님을 꼽는다. 동진 출가하신 이후 항상 천진불과 같은 모습으로 초야에 묻혀 일말의 흐트러짐도 없이 수행 정진하신 법진 노스님에게 늘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다. 보는 이 없는 곳에서도 자기 자신을 최대의 경계로 삼아 계율을 철저히 지키며 살다가신 노스님의 거룩한 수행을 높이 우러르며 따르고자 노력한다.
‘각자의 분상에서 모두 최선을 다해 살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 가운데는 훌륭하고 훌륭하지 않은 것이 따로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는 선진스님은 앞으로 불사가 끝나면 땅을 마련하여 불교 전문 갤러리를 개원해서 문화예술 포교에 전념하는 한편 대안학교를 설립할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밖에도 노스님이나 소외받는 이웃들과 더불어 ‘그룹 Home’을 운영하여 함께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더욱 열심히 진언을 써서 나누어줌으로써 스님의 글을 받은 모든 이들이 부처님의 자비 광명 속에서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살고 싶다고 한다.
대구 수성구 보현암
대구 보현암은 상동교회의 큰 건물사이에 위치한 작은 암자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말사이다. 약 50년 전에 손덕봉 보살이 생활하던 집을 선행 스님(운문사 명성 스님의 은사)에게 시주하여 이루어진 절로 암자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도심 속의 포교 사찰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전통 불복장의 맥을 전수 받으신 보현암 주지 선진스님께서 수행 정진하시는 도량으로 선진스님은 신도들의 공부와 포교를 위해 '하루헌'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아울러 다도회와 봉사회 등을 만들어 불자들의 친교에도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5~592.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53.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211, 410, 413.
- 영남일보, [우리시대 인물열전 .27] 불복장 의식 전문가 선진 스님 (2006년)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060508.010280759230001
- 불교타임즈, '부처가 똥독과 술독에 빠지다' 선진 스님 ‘동이이(同而異)’전 (2009년) https://bud1080.tistory.com/1048
- 경북매일, 선진스님, 불교설치미술 `점심`전 열어 (2010년)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188946
- 불교신문, 대구 보현암 선진스님 여덟번째 개인전 열려 (2012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2678
- 현대불교, 선진 스님, ‘하루헌 궁리전’서 전시 (2014년)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1778
- 현대불교, 선진 스님, ‘하루헌 궁리전’서 전시 (2015년)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1778
- 주간불교, 선진스님, 13일 개인전... 매년 전시회 (2016년) http://m.bulgyonews.co.kr/news/33447
- 불교신문, 선진스님 개인전 ‘바로 지금 현재에만 있을 뿐’ (2017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2224
- BBS, 대구 보현암 주지 선진 스님 "불교의 조사선(祖師禪) 정신을 조형언어로 표현해 대중과 소통할 것" (2019년) https://www.youtube.com/watch?v=JD1X6CpMMyc
- 한국일보, 현대 설치미술가 선진 스님 초대전 '바로 지금 여기' 열린다 (2022년)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32418380002708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
선진(善眞)스님 | 본항목 | 선진스님(善眞, 1961~) | 善眞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선진스님(善眞,_1961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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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스님(善眞) | 봉래문중(蓬萊) | ~의 일원이다 | |
선진스님(善眞) | 유광스님(琉光) | ~의 수계제자이다 | |
선진스님(善眞) | 청도 운문사 | ~에서 출가하다 | |
선진스님(善眞) | 자운스님(慈雲)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비구니계 |
선진스님(善眞) | 대구 보현암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감원) |
지도
- 보현암 :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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