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法住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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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후궁 영빈이씨(暎嬪李氏)의 원당으로, 충청북도 보은군속리산에 위치한 절.

개설

법주사(法住寺)는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속리산(俗離山)에 위치하며 조선시대에는 주로 속리사(俗離寺)로 칭해졌다. 세종대 선·교 양종 가운데 교종 18개 사찰에 포함되었고 조선시대 왕실의 주요 원당(願堂)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후기에도 사격이 유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연원

삼국시대인 553년(백제 성왕 31)에 의신(義信)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의신이 서역에서 경전[法]을 전래해 와 머물렀다[住]는 전설에서 법주사라는 사찰 명칭이 유래하였다. 이후 진표(眞表)가 제자 영심(永深) 등에게 속리산에 가서 길상초가 난 곳에 절을 지으라고 하여 776년(신라 혜공왕 12)에 중창하였고 길상사(吉祥寺)로 칭했다고 한다. 1101년(고려 숙종 6) 숙종이 동생 대각(大覺) 국사(國師)의천(義天)을 위한 인왕경회(仁王經會)를 베푼 곳이기도 하다.

변천

법주사는 조선시대에는 주로 속리사로 불렸고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태조는 부속 암자인 상환암(上歡庵)에서 기도하였고 세조는 복천암(福泉庵)에서 치병을 위한 법회를 열었다.

1424년(세종 6) 세종은 기존의 7개 종단을 선·교 양종으로 나누고 각각 18개씩 36개 사찰만 공인하였는데, 이때 법주사는 교종 18사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법주사는 당시 보은 속리사로 칭해졌는데 원래 보유하고 있던 토지 60결에 140결이 추가 지급되어 200결이 인정되었고 거주하는 승려는 100명으로 정해졌다(『세종실록』 6년 4월 5일).

같은 충청도 지역인 충주의 보련사(寶蓮寺)는 소유 전답 80결에 70결이 더해져 150결이 되었고 거주 승려는 70명으로, 법주사의 위상과 규모가 훨씬 컸음을 알 수 있다. 당시 36개 사찰의 대부분이 도 단위 이상에서 지정되었고, 그 중 20개 이상이 왕실 관련 사찰로서 적극적인 보호와 후원을 받았다. 『세종실록』「지리지」 보은현 항목에서는 속리산은 명산이며 신라시대에는 속리악으로 칭해졌고 중사(中祀)의 하나였다고 기술하면서, 그 서쪽에 속리사가 위치하며 교종 소속 사찰로 토지 200결이 지급되었다고 하고 있다.

숭불 군주였던 세조대에는 성균관 유생 최유숙(崔有淑)이 속리사 승려 혜등(惠登)이 입적하자 그의 사리 3매를 바친 일이 있었고(『세조실록』 9년 6월 20일), 세조 자신이 친히 속리사에 행차하여 쌀과 콩 30석을 하사하기도 하였다(『세조실록』 10년 2월 28일). 한편 억불 정책을 이어간 성종대에는 속리사 승려가 본사의 전세(田稅)를 거둘 때 함부로 외람된 짓을 저지르고 도망간 일도 있었는데(『성종실록』 24년 12월 20일), 당시까지 보유 전지가 존속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법주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는데, 현존하는 목탑 형식의 팔상전(八相殿)은 1605년(선조 38)에 재건되었고, 대웅전(大雄殿) 등 대부분의 사우는 1624년(인조 2)에 남한산성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던 벽암각성(碧巖覺性)이 중창하였다. 각성은 전주송광사(松廣寺), 구례화엄사(華嚴寺) 등 호남과 호서 일대의 사찰 중창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이후 1650년에 세워진 세존사리비에는, 이 절의 사리탑이 1362년(고려 공민왕 11)에 세워졌고 공민왕이 통도사(通度寺)에 있는 불사리 1과를 옮겨 봉안하게 하였다고 적고 있다. 인조대에는 6장(약 18m) 높이의 불상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기이한 현상이 있었고(『인조실록』 13년 2월 23일), 비슷한 사례는 효종대에도 나타났다.

한편 역대 조사들의 진영이 봉안된 조사각(祖師閣)은 영조의 후궁 영빈이씨(暎嬪李氏)의 원당이었다.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임제법통과 교학전통』, 신구문화사, 2010.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탁효정, 「조선시대 왕실원당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2.
  • 高橋亨, 『李朝佛敎』, 寶文館,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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