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슬(鶴膝)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과협(過峽)의 다양한 생김새 가운데 하나로 학의 무릎처럼 생긴 장소.

개설

학슬은 용(龍)의 생사(生死)와 혈의 진위 여부를 살피는 데 중요한 풍수의 핵심 개념으로서 과협의 하위 개념이다. 과협을 이루는 두 산봉우리 사이가 긴 것을 학슬이라 하고, 그 사이가 짧은 것을 봉요(蜂腰)라고 한다. 대개 사람들이 고갯길로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자칫 지맥의 손상을 우려하여 조선왕조에서 왕릉이나 궁궐 뒤 과협에 출입을 통제하여 문제가 되기고 하고, 더러는 보토를 하거나 혹은 엷은 돌을 깔기도 했다.

내용 및 특징

생기(生氣)가 흐르는 증거로 보는 과협처의 학슬이 조선조 지관 선발 고시과목에서는 『명산론(明山論)』, 『감룡경(撼龍經)』, 『의룡경(疑龍經)』에 등장한다. 『명산론』에서는 산 능선, 즉 용이 벌의 허리[蜂腰]나 학의 무릎[鶴膝]과 같이 고개 부분이 잘록하거나[蜂腰], 약간 볼록하면 진짜 용이 되어 작으면 중소 도시를 이루며, 크면 도읍지를 이룬다고 하였다. 즉 혈(穴)의 형성에 필수 조건이 되는 셈이다.

『감룡경』과 『의룡경』에서도 『명산론』과 비슷한 개념 정의를 하고 있는데, 용이 뻗어나가는 과정에서 한 번 끊기고 두 번 끊기기를 거듭하여 학의 무릎과 벌의 허리와 같은 지형지세가 있으면 길지가 된다고 하여, 길지 형성의 필수 조건으로 보고 있다. 1433년(세종 15) 이진(李蓁)이 올린 상소문에 제생원 자리가 봉요학슬에 해당하여 길지의 형국임을 아뢴 것은(『세종실록』 15년 7월 19일), 이와 같은 풍수지리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학슬은 일종의 길지를 나타내는 징표로서, 봉요, 음성협, 양성협, 음절목, 양절목과 유사한 개념인데, 1464년(세조 10) 『조선왕조실록』 기사에 위의 용어들이 풍수지리서와 같이 인용되어 있다(『세조실록』 10년 4월 22일).

조선전기 학슬과 관련하여 유명한 단맥 논쟁이 있다. 1430년(세종 12) 상지관최양선(崔揚善)이 올린 한 장의 상소로 이후 30년 동안 헌릉(獻陵)에 대한 풍수 논쟁이 전개된다. 최양선은 여러 풍수고전을 근거로 하여 태종이 묻혀 있는 헌릉의 내룡, 즉 주산의 혈장에 이르는 산 능선이 고갯길로 끊겨서 후손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왕릉 뒤로 나 있는 고갯길을 막아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여기서 사람과 우마가 통행하면서 땅을 패여 나가게 하는 부분은 고갯길의 봉요와 학슬 부분이다(『세종실록』 12년 7월 7일). 이에 대해 다른 상지관은 그것은 오히려 기의 흐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반박하지만 결론이 나지 않아,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이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하도록 하기도 한다. 헌릉 단맥 논쟁은 그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1464년(세조 10) 이순지(李純之)에 의해 마무리된다. 이순지는 과협처의 학슬과 봉요 손상을 막기 위해 박석을 깔자는 절충안을 제시한다. 흔히 박석고개로 불리는 곳은 바로 이와 같은 봉요처를 보호함으로써 단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변천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조선전기 풍수 논쟁이 활발할 때 학슬이 잠깐 쓰이고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간 풍수서적이나 풍수술사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쓰고 있다.

참고문헌

  • 김두규, 『풍수학 사전』, 비봉출판사, 2005.
  • 서선계·서선술 저, 김동규 역, 『인자수지』, 불교출판사, 1989.
  • 양균송 저·김두규 교감역주, 『감룡경·의룡경』, 비봉출판사, 2009.
  • 채성우 저·김두규 역해, 『명산론』, 비봉출판사, 2002.
  • 村山智順 저·최길성 역, 『조선의 풍수』, 민음사, 1990.
  • 최창조 역주, 『청오경·금낭경』, 민음사, 1993.
  • 최창조, 『한국의 풍수사상』, 민음사, 1984.
  • 호순신 저·김두규 역해, 『지리신법』, 비봉출판사, 2004.
  • 안영배, 「조선조 풍수학 4대 고시과목에 나타난 氣개념 분석」, 원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徐善繼·徐善述, 『地理人子須知』, 臺灣, 竹林書局, 2007.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