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촉장(箭鏃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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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를 단련하고 갈아서 화살촉을 만드는 장인.

개설

조선전기 때 경공장(京工匠)에만 편성되어 있었으나, 곧바로 폐지되고 야장(冶匠) 또는 연장(鍊匠) 등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담당 직무

세종 시기에 화살 제작 과정이 분업화되어 전촉장(箭鏃匠)은 군기감(軍器監)에서 화살촉만을 만들었다. 화살촉을 만드는 일은 화살을 만드는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전촉장은 고도의 기술을 갖고 있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의하면 화살촉의 재료는 야철을 사용하였으므로 전촉장의 장역(匠役)이 없어진 후에는 야장, 연장이 화살촉을 제작하였다. 1640년(인조 18)에 화살을 대량으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화살촉이 부족한 이유는 작업 인원의 구성이 전장(箭匠) 2명, 야장 1명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하여, 여기에 야장과 연장을 추가로 투입하였던 사례가 있는데, 이를 통해 화살촉을 만드는 장인을 알 수 있다.

변천

고려시대에는 무기를 제작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던 군기감에 전두장(箭頭匠) 1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전촉장은 경공장으로 1434년(세종 16)에 군기감 소속의 장인으로 등장하는데, 이때 13명에서 10명이 증원되어 총 23명이 활동하였다(『세종실록』 16년 6월 11일). 그러나 1460년(세조 6)이 되면 전촉장의 장역이 없어지고 대신 그 역할은 마경장(磨鏡匠)이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세조실록』 6년 8월 1일).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완성된 1485년에 이르면 군기시(軍器寺)에서 이 일을 담당했던 장인은 연장이었다. 당시 연장은 그 수가 군기시에서 가장 많은 수인 160명이었는데, 이들은 화살촉을 만드는 것 이외에도 화포 등 다양한 철제 무기를 제작하였다. 지방에서도 전촉장은 외공장(外工匠)에 편입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봄과 가을에 중앙에 공물로 바치는 화살과 자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야장 또는 연장이 화살촉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에 이들은 공역의 대가를 지급받기도 하였는데, 효종 때 화살촉을 만드는 일을 한 연장 2명은 호조(戶曹)병조(兵曹)에서 요포(料布)를 지급받았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경국대전(經國大典)』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강만길, 「조선전기의 관장제와 사장」, 『조선시대상공업사연구』, 한길사, 1984.
  • 이혜옥, 「조선전기 수공업체제의 정비」, 『역사와 현실』 33,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