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字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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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동아시아에서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사랑하고 보호한다는 의미의 외교적 용례.

개설

자소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사대(事大)와 서로 상대적인 개념으로,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중국과 맺은 조공 책봉(朝貢冊封) 관계를 바탕으로 중국에 대하여 조선이 사대하고, 중국은 조선에 대하여 자소한다고 인식하였다. 반면 자소의 용례는 대마도 왜인과 여진 세력에 대해서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조선이 대국으로써 대마도 왜인과 여진 세력을 자소한다고 생각하였고, 작은 세력인 대마도 왜인과 여진 세력은 대국인 조선에 사대한다고 인식한 것을 보여 준다.

내용 및 특징

전근대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인 조공 책봉 관계에 있어서 조공을 하는 국가는 사대를 하고 책봉해 주는 국가는 자소하는 것이 일반적 관념이었다. 『춘추좌씨전』을 보면,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고[事大],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사랑해 주는 것[字小]으로 되어 있어, 사대와 자소가 서로 상대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사대의 구체적 형식이 바로 조빙(朝聘)의 예를 교환하는 ‘조빙사대(朝聘事大)’라고 하며, 중국의 진한(秦漢) 시기 중국 황제가 이웃한 조공국의 군주를 국왕(國王)으로 임명하고 인신(印信)을 내려 주면서 국제 관계에서의 책봉이 성립하였다. 이에 사대의 구체적이고 형식적인 표현이 조공·자소의 표현 방식이 책봉이라 할 수 있고, 정형화된 ‘사대 자소 관계’, ‘조공 책봉 관계’에서는 조공국이 중국의 황제에 대하여 사대하고, 중국의 황제는 조공국에 대해 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는 자소의 용례 대부분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쓰였다. 조선을 건국한 신진 사대부들, 즉 성리학자들은 중국의 주(周)나라 시기에 가장 이상적인 정치가 행해졌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중국과의 사대 관계 등 대외 관계도 유교의 예 규범(禮規範)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조선의 교린 사상의 이상이 열국 사이의 교빙(交聘)이 존재하였던 춘추(春秋)시대에 있었으며, 이에 따라 조선이 스스로 여진 세력이나 대마도 왜인들보다는 대국(大國)이라 생각하였다. 결국 조선이 대국이라는 관점에서 작은 세력인 여진과 대마도 왜인들을 자소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작은 세력인 여진과 대마도 왜인들은 대국인 조선에 사대하고 있다고 인식하였다.

변천

조선시대 중국에 대한 자소 용례는 대부분 조선이 중국에 보낸 자문(咨文)에 나타나는데, ‘玆蓋伏遇皇帝陛下 仁以字小, [이것은 대개 황제 폐하께서 인(仁)으로써 소민(小民)을 사랑하고](『태조실록』 2년 9월 21일)’, ‘자개복우황제폐하 (중략) 자소이덕(玆蓋伏遇皇帝陛下 (중략) 字小以德, [이것은 대개 황제 폐하께서 (중략) 덕으로써 소민을 사랑하시고])(『태조실록』 3년 1월 16일)’, ‘자개복우황제폐하 심돈자소(玆蓋伏遇皇帝陛下 心敦字小, [이는 대개 황제 폐하의 마음이 소민 사랑하시기에 도타우시고])(『세종실록』 즉위년 9월 8일)’ 등 정형화되고 의례화된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대마도 왜인과 여진인에 대해서는 대부분 ‘자소이인(字小以仁, 소민 사랑하기를 인으로써 함)’, ‘자소지의(字小之義, 소민을 사랑하는 의리)’, ‘이대자소(以大字小, 큰 것으로서 작은 것을 사랑함’, ‘자소지은(字小之恩, 소민을 사랑하는 은혜)’, ‘자소지인(字小之仁, 소민을 사랑하는 인(仁))’, ‘자소지심(字小之心, 소민을 사랑하는 마음)’ 등의 관용구로 나타나며, ‘자소’라는 용어로만 나타나기도 하였다.

왜인에 대한 자소는 세종대부터 명종대까지 나타나고, 주로 대마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특히 대마도 정벌 이후 보이기 시작하며, 대마도 왜인의 조선 체류 문제(『세종실록』 20년 6월 13일), 고초도(孤草島: 현 거문도)에서 고기 잡는 것[釣魚]을 허락하는 문제(『세종실록』 23년 11월 21일), 대마도 특송(特送)의 과다한 물품 청구 문제(『연산군일기』 8년 1월 22일), 세견선(歲遣船)의 증액과 환원 문제(『명종실록』 12년 4월 1일), 왜인들의 진상(進上) 물품의 수량 문제(『명종실록』 12년 12월 30일) 등 조선과 대마도의 여러 가지 현안 문제와 함께 나타나고 있다.

야인에 대한 자소의 용례는 세종대 조선과 통교한 적이 없었던 홀라온 올적합(忽剌溫 兀狄哈)의 내조(內朝)를 받아들이는 문제(『세종실록』 19년 9월 9일)를 시작으로 조선이 번리(藩籬: 울타리)로 인식하고 있던 회령(會寧)에 거주하는 오도리(吾都里)를 구원하는 문제(『세종실록』 22년 7월 21일), 건주삼위(建州三衛) 여진인의 내조 문제(『세조실록』 4년 4월 13일) 등 조선과 여진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특수한 사례에서 보이고 있다.

조선에서는 대마도 왜인 및 여진 세력과의 여러 현안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의 요구를 적절히 수용하는 방편으로 ‘자소’, 즉 ‘작은 것을 사랑한다.’는 것에서 문제 해결의 대의명분과 당위성을 찾았다.

한편 대마도 왜인 및 여진 세력에 대하여 사대와 자소가 함께 서로 짝을 이루며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대마도 왜인 및 여진인이 소국(또는 작은 세력)으로써 대국인 조선에 사대하고 있고, 조선은 대국으로써 이들을 자소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데에서 나타났다. 이것은 『춘추좌씨전』에 나타난 사대와 자소의 개념과 같았다. 따라서 조선에서 인식한 대마도 왜인 및 여진과의 관계는 사대 자소 관계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 『맹자(孟子)』
  • 『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
  • 권선홍, 『전통시대 동아시아 국제관계』, 부산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4.
  • 민덕기,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의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2007.
  • 권선홍, 「조선시대 사대관계와 책봉체제」, 『왜구·위사문제와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2005.
  • 한성주, 「조선 전기 ‘자소’에 대한 고찰: 대마도 왜인 및 여진 세력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연구』 33, 2009.
  • 河內良弘, 「朝鮮世祖の字小主義とその挫折」, 『明代女眞史の硏究』, 同朋舍,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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