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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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품 이상 중국 관청에서 사용된 공문의 한 종류이며, 조선의 대중국 외교 관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외교문서.

개설

중국에서 2품 이상 관청에서 사용된 평행문으로 조·중 관계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실질적인 외교문서이다. 중국 국내문서가 조선의 대중국 관계 외교문서로 사용된 것으로 가장 분량이 많은 외교문서로 조·중간 외교 사건의 발생에서 해결까지 외교 흐름을 보여 주는 문서이다.

내용 및 특징

1. 자문의 종류와 형식

자문은 정2품 육부에서 정1품 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 종2품 승선포정사(承宣布政使司, 종2품)에서 정2품 육부에 보낸 ‘자정(咨呈)’과 정2품 육부, 정2품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와 같이 동급 관청 사이에 왕래한 ‘평자(平咨)’가 있었다. 조·중간 발생하는 외교 현안에 대한 처리는 대부분 자문을 통하여 전달되었다. 자문은 표·전문(表箋文) 등의 전달에 정문(呈文)의 일종으로 이용되었다.

명대 공문제도가 세밀하게 정착되면서 상급 관청 사이에 왕래한 문서로 조선 왕이 2품 이상 관청의 품계에 해당되기 때문에 사용되었다. 외교문서로서 자문은 기본적으로 조선 왕 명의로 발급되며, 중국의 예부·병부 등 육부와 오군도독부 등 군문에 전달되었다. 그러나 조공 체제에서 모든 의사 결정을 황제가 한다는 의미에서 조선에서 중국에 보내는 자문은 형식적으로 황제에게 아뢰어 주기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끝맺었다. 세부적인 사건을 내용으로 하는 경우에는 예부나 병부 등 해당 관청을 대상으로 일반적인 통보 사항이나 중국문서의 접수를 잘 하였다는 회신으로 사용되었다.

문서의 첫머리에 “조선국왕은 무슨 일을 위하여 ……합니다.”라는 문서명을 기재하고, 이후 상세한 내용을 적고, 마지막에 “이것을 위하여 마땅히 자문을 보내는 일을 행하니, 상세히 조험(照驗)하고 시행하기를 청합니다.”라는 말로 본문을 끝맺는다. 그 내용을 서술할 때는 대부분 ‘모관(某官)이 장계(狀啓)하기를, ……라고 하면서 자세히 계문(啓聞)하였으므로, 이것에 의거하여 조험합니다.’라는 관련 근거를 밝히거나, 회답하는 자문의 경우에는, ‘귀부(貴部)의 자문을 승준(承准)하니, 전의 일은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므로, 이에 상응하여 흠준(欽遵)하였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마땅히 자문을 보내고 복명(復命)하는 일을 행합니다.’라는 형식으로 적었다.

2. 자문의 전달 과정

조·중간에 외교 사건이 발생하면, 조선은 중국예부나 병부에 사건에 관한 문의 및 의견 개진을 위한 자문을 전달하였다. 조선에서 자문은 승문원에서 작성하였으며, 정기적인 사행이 있으면 사행을 통하여 전달하지만, 사행이 없으면 재자관을 파견하여 전달하였다. 명대는 요동도사에, 청대는 성경예부에 주로 전달되어 중국의 행정 체계에 따라 상급관청에 보고되는 절차를 거쳤지만, 사안이 중대하면 직접 북경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조선사행이 회동관에 도착한 다음 날 회동관의 제독(提督)에게 전달하면 제독이 수령하여 예부에 가서 바치는데, 당상관들이 같이 개탁(開坼)하여 열람한 다음에 예부 소속의 의제사(儀制司)에 돌려주어 제목(題目)을 작성하도록 하였다. 중국의 자문은 예부에서 수령하여 귀국하거나, 요동도사에서 수령하기도 하였다. 중국의 자문은 사행이 귀국 후 승정원을 통하여 왕에게 보고되고, 승문원으로 내려져 등록형식의 외교 문서집으로 보존되었다. 일부 의주부사(義州府使)와 봉황성주(鳳凰城主) 사이에 왕래하기도 하였다.

3. 자문의 내용과 사례

자문은 조·중간에 가장 많이 교환된 외교문서로 모든 외교문서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였다. 자문의 내용은 조·중간의 모든 외교 사건에 있어 사건의 발생원인, 전개 과정, 각 관청별 입장 등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조·중간 외교적 입장, 외교정책 기조, 세부적인 외교 사건에 대한 조사 및 요구 사항, 외교 사건에 대한 해결 방안 등 외교 관련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1393년(태조 2) 조선 국호의 선정에 대한 명의 의견을 제시, 1471년(성종 2) 야인정벌에 대한 외교활동, 1521년(중종 16) 공녀 문제의 해결,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중 대명 관계, 1647년(인조 25) 농기구의 무역을 청 호부에서 요구, 1686년(숙종 12) 국경을 함부로 넘어간 사람에 대한 조·청간 교섭 등 왕실 관련 사안에서 범월(犯越)에 이르기까지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의의

자문은 조·중간 가장 실질적인 외교문서로 발급 및 접수 주체는 조선 왕과 중국의 2품 관청이었다. 방대한 자문의 내용은 조·중 관계의 구체적인 내용과 정책 결정의 과정, 외교 목적의 형성 과정, 외교 활동의 전개 과정 등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조선시대 대중국 외교의 흐름을 잘 보여 주었다. 또한 자문의 발급 주체와 행이 체계를 통하여 조공 체제에서 조선의 외교 형식과 외교 절차를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 『동문휘고(同文彙考)』
  • 『대청회전(大淸會典)』
  • 김경록, 「조선후기 사대문서의 종류와 성격」, 『한국문화』 35, 2005.
  • 김경록, 「명대 공문제도와 행이체계」, 『명청사연구』 26, 2006.
  • 김경록, 「조선시대 대중국 외교문서의 접수·보존체계」, 『한국사연구』 13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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