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혈사수(龍穴砂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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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에서 간산(看山) 때에 살피는 가장 기본적인 네 가지 주제.

개설

간산 시 무엇을 어떻게 보고, 또 자신이 보았던 것을 어떤 순서로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일정한 원칙이나 기준은 없다. 풍수 서적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중국의 새로운 풍수 서적과 이론이 유입되면서 간산 결과를 설명할 때 대체로 용(龍), 혈(穴), 사(砂), 수(水)의 순서로 따진다. 따라서 용혈사수를 살핀다고 함은 간산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며 용혈사수가 아름답다는 뜻은 그 땅이 길지라는 의미이다.

내용 및 특징

용혈사수란 상지관이 땅을 볼 때 살펴야 할 내용이자 순서이다. 즉 상지관이 간산을 할 때 살펴야 할 것은 용, 혈, 사, 수이다. 동시에 그 살피는 순서는 용→혈→사→수 순서이다.

풍수 용어인 내룡(來龍)을 살피는 것으로는 간룡(看龍) 혹은 멱룡(覓龍), 심룡(尋龍) 등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문자 그대로 용을 살피는 방법이다. 내룡 속에 흐르는 지기(地氣)가 어떠한가를 살피려는 것이다. 용은 태조산(太祖山)이라 불리는 큰 산으로부터 시작된 그 산의 본줄기와 곁가지가 연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인데, 풍수에서 말하는 조산은 모두 중국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크게 셋으로 나뉘어, 남룡(南龍)은 민산(岷山)으로부터 일어난 장강(長江)과 남해 사이에 끼인 것이고, 중간(中幹)은 서령(西嶺)에서 일어난 황하와 장강 사이에 끼인 것이며, 북룡(北龍)은 곤륜(崑崙)으로부터 출발하여 압록과 황하 사이에 끼여 이어져 백두산(白頭山)에서 종(宗)을 일으킨 한국 풍수의 조종(祖宗)이 되는 용맥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용을 살필 때 곤륜산, 백두산으로부터의 산맥세(山脈勢)를 순차적으로 모두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상징적으로 대룡(大龍)임을 거기에 비견시킬 뿐, 지사(地師)가 용을 볼 때[看龍]는 주산(主山) 뒤에 연결된 내룡의 적당한 범위 내에서만 용의 길흉을 판단하게 된다.

혈법이란 구체적으로 무덤 자리, 집 자리, 혹은 도읍지의 경우 핵심 중앙관청이 들어설 자리를 정하는 과정과 방법을 말한다. 비슷한 용어로서 도장법(倒杖法), 기혈론(基穴論), 점혈법(占穴法), 점혈법(點穴法), 소점법(所占法), 택혈법(擇穴法), 하혈(下穴), 입혈(入穴), 입혈(立穴) 등이 있다. 이는 뜻은 같으나 풍수 서적마다 표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혈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자(朱子)는 정혈법이란 침구(針灸)에 비유할 수 있는 것으로 스스로 일정한 혈의 위치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터럭 끝만큼의 차이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할 정도였다. 혈법은 대개 혈을 찾고, 혈자리를 정하고, 그 정해진 혈자리의 좌향을 정하는 즉 심혈(尋穴)→정혈(定穴)→재혈(裁穴)의 세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사법에서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주변 사(砂)를 중점적으로 살피는 방법이다. 사법(砂法), 장풍법 이외에도 소사(消沙)라는 용어도 같은 뜻이다. 사법에서 다루는 내용은 혈(穴)과 명당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산을 살피는 것이다. 사신사(四神砂)인 청룡, 백호, 주작, 현무뿐만 아니라, 조산(朝山), 주산(主山), 나성(羅星), 수구사(水口砂) 등을 모두 아우른다.

사법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 하나는 형상적 관찰법이며, 다른 하나는 방위을 가지고 길흉을 따지는 방법이다. 형상적 관찰법은 산의 아름답고 추함[美醜] 여부,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遠近高低]의 정도, 유정무정의 여부 등을 육안으로 살펴 그 길흉화복을 논하는 것이다. 방위에 의한 법칙론은 사격방위론(砂格方位論)이라고도 하는데, 특정한 혈에서는 특정한 모양의 산이 특정한 방위에 있으면 길하고, 그렇지 않으면 흉하다는 이론 체계이다.

물[水]을 살피는 방법은 득수법(得水法), 관수법(觀水法), 수법(水法) 등으로 불린다. 지기가 흘러가다가 물을 만나면 멈추어 혈을 맺는다. 따라서 물을 풍수에서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까닭에 조선조 지리학 고시과목인 『청오경(靑烏經)』에서는 산이 다가들고 물이 돌아들면 곧 귀하게 되고 재물도 풍족해질 것이오, 산은 갇히고 물은 빠져 나간다면 왕은 붙잡히고 제후는 망할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조선왕조에서 물이 특히 강조되었던 풍수서는 『지리신법(地理新法)』이다. 태조이성계가 도읍지를 계룡산으로 옮기려 할 즈음 하윤(河崙)이 물의 흐름상 계룡산은 도읍지로 불가능하다는 상소를 올려 도읍지 철회를 이끌어낸다(『태조실록』 2년 12월 11일). 조선조 지관 선발 과목인 『감룡경(撼龍經)』도 물을 중시하여 땅보다 한 마디만 낮아도 물로 볼 정도로 물 한 방울까지도 허투루 보지 않았다. 따라서 수법에서는 물의 흐름을 보고 그 땅의 길흉화복을 논하였다. 『장서(葬書)』의 주에서도 역시 땅보다 한 마디만 낮아도 물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물이 풍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큼에도 불구하고 용, 혈, 사 다음으로 물이 언급되는 것은 결국 물이란 것은 산세를 바탕으로 용이나 혈의 형상과 위치 및 토질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원래 지리를 볼 때, 물의 흐름보다는 산이 먼저 눈에 띄기 때문에 산법이 먼저 생기게 마련이고, 좌향과 관련된 수법의 완성은 가장 늦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

용혈사수가 따로따로 언급되지 않고 하나의 용어로 인용된 것은 현종 시기이다. 당시 현종은 능지 조성을 위해 장단(長湍), 교하(交河), 광주(廣州), 남양(南陽) 등지를 비롯하여 한강 북쪽이나 왕십리 등을 살핀 후, 그림으로 그려 그 형세를 자세히 아뢰라고 하였다. 이에 예조 판서윤강(尹絳)은 수원의 호장(戶長) 집 뒷산의 용혈사수가 참으로 좋고 아름다우니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장소라고 고하였다[『현종실록』 즉위 6월 15일 3번째기사]. 어떤 장소의 형국을 풍수지리 산도(山圖)로 그릴 때 일반적으로 용, 혈, 사, 수의 형세를 모두 포함시킨다. 그러므로 위 기록에서 산도를 놓고 용혈사수가 전미(全美)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아, 형세의 판별에서 네 가지 핵심을 모두 고려하였음이 나타난다.

변천

용혈사수론은 조선후기에 처음으로 간산의 방법과 순서로써 등장한다. 이것은 임진왜란 전후로 중국에서 유입된 풍수 서적, 특히 『인자수지(人子須知)』의 영향이다. 『인자수지』에서 용혈사수 순으로 풍수 이론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조선후기에 들어와 『지리오결(地理五訣)』이란 풍수서가 청나라에서 유입되는데, 이 책의 핵심 내용은 기존의 풍수가 용혈사수 이 네 가지만을 가지고 이야기되었으나, 정확한 길흉화복 판단에는 이것만 가지고는 불충분하다고 보아 향법을 추가한 것이다.

참고문헌

  • 『감룡경(撼龍經)』
  • 『산릉의장(山陵議狀)』
  • 『지리오결(地理五訣)』
  • 『탁옥부(琢玉賦)』
  • 『홍재전서(弘齋全書)』
  • 김두규, 『조선 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궁리출판사, 2000.
  • 양균송 저·김두규 교감역주, 『감룡경·의룡경』, 비봉출판사, 2009.
  • 장성규·김혜정, 『완역풍수경전』, 문예원, 2010.
  • 채성우 저·김두규 역해, 『명산론』, 비봉출판사, 2002.
  • 村山智順 저·최길성 역, 『조선의 풍수』, 민음사, 1990.
  • 최창조 역주, 『청오경·금낭경』, 민음사, 1993.
  • 호순신 저·김두규 역해, 『지리신법』, 비봉출판사, 2004.
  • 徐善繼·徐善述, 『地理人子須知』, 臺灣, 竹林書局, 2007.
  • 梁湘潤(編集), 『堪輿辭典』, 台北, 民國 85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