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혈(裁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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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관을 하기 위해 생기(生氣)가 흐르는 지맥을 정확하게 정하는 행위.

개설

입지를 고를 때는 대개 생기가 흐르는 용(龍)을 찾아[尋龍], 그 용이 물과 만나 지기가 멈추는 혈을 찾는[尋穴] 과정을 거친다. 재혈은 심혈 과정을 통해 정확한 혈 자리를 정하고[定穴], 정해진 혈 자리에서도 생기가 흐르는 정확한 지맥 위에 관의 중심이 올 수 있도록 그 위치를 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내용 및 특징

조선전기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되는 재혈은 16세기 중엽에 출간된 『인자수지(人子須知)』의 정혈(定穴)과 같은 내용이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에서 재혈을 언급하면서 그 출전을 『동림조담(洞林照膽)』으로 밝혔다. 1445년(세종 27) 김종서 등이 수릉(壽陵)을 살펴보고 올린 상서문에서 『동림조담(洞林照膽)』의 「재혈편」에 나오는 ‘무릇 산머리에서 두 갈래로 내려온 것은 두 머리가 혈이 된다.’라는 말을 들어 혈을 설명하였다(『세종실록』 27년 4월 4일).

『동림조담』의 재혈론은 16세기 중엽에 명나라에서 출간된 『인자수지(人子須知)』의 정혈론(定穴論)에 그대로 수용되어 있다. 조선전기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재혈과 정혈을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논의되는 재혈은 또 다른 변화를 보인다. 정조는 부왕 사도세자(思悼世子)를 현재의 융릉(隆陵)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두(乳頭) 아래 평탄한 곳에 재혈하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하기도 했다. 또 재혈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자세한 설명도 하였다(『정조실록』 13년 7월 11일).

이와 같은 재혈 개념은 『동림조담』의 재혈 개념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정조는 재혈의 핵심 목적을 생기가 흐르는 지맥의 가느다란 선(線) 하나를 찾아 정하는 행위로 보았다. 이때 정혈보다는 분금(分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식 차이에는 임진왜란 직후에 중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나침반인 나경(羅經)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나경은 진북(眞北)과 자북(磁北)의 현상을 발견하고 난 뒤 이를 교정하기 위해 삼침설(三針說)을 전제한다. 따라서 정확한 방위 측정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생겨난 이론이 분금이며 재혈 또한 이러한 분금설과 관련을 맺으면서 생기가 하나의 선으로 흐르는 지맥을 찾는다는 관념으로 바뀐 것이 정조 당시의 재혈론이었다.

변천

조선왕조는 『동림조담』의 재혈론을 그대로 수용하는데, 이 재혈론은 『인자수지』에서 정혈이라고 이름만 바꿔 그대로 수용된다. 조선후기부터 민간에서 『인자수지』가 많이 읽히고 활용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조선초기 재혈 개념은 정혈이란 용어로 전해진다. 기본 정혈 방법은 『동림조담』에서 소개한 큰 원칙들을 좀 더 구체화하고 새로이 이름 지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한편 1600년(선조 33) 중국으로부터 나경의 유입과 함께 분금론이 수용되면서 재혈이 방위론과 관련을 맺어 분금재혈이란 항목으로 분화·발전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 『동림조담(洞林照膽)』
  • 『탁옥부(琢玉賦)』
  • 『홍재전서(弘齋全書)』
  • 김두규, 『조선 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궁리출판사, 2000.
  • 서선계·서선술 저, 김동규 역, 『인자수지』, 불교출판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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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성우 저·김두규 역해, 『명산론』, 비봉출판사, 2002.
  • 村山智順 저·최길성 역, 『조선의 풍수』, 민음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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