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례도감(襄禮都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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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思悼世子)의 빈(嬪)이자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의 예장(禮葬)에 관한 일을 맡아보도록 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관청.

개설

양례도감은 예장을 치르기 위해 설치한 임시 관청이다. 왕과 왕비, 상왕(上王)과 대비(大妃) 등의 장례는 국장(國葬)이라 하고, 왕비의 부모를 비롯해 빈·귀인(貴人)·대군·왕자군 및 그 부인·공주·의빈(儀賓) 등과 종2품 이상의 종친, 종1품 이상의 문무관, 공신의 장례는 예장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예장을 치르기 위해 임시로 예장도감(禮葬都監)을 설치하였는데, 혜경궁 홍씨의 경우 그 독특한 위상 때문에 순조의 명으로 양례도감이라 칭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815년(순조 15) 12월 15일에 혜경궁 홍씨가 창경궁 경춘전(景春殿)에서 세상을 떠나자, 순조는 예장도감을 양례도감이라 부르고 장례에 관한 모든 의식을 총괄적으로 맡아볼 총호사(摠護使)를 차출하라고 지시하였다(『순조실록』 15년 12월 15일). 이에 김재찬(金載瓚)을 총호사로 삼고, 제조(提調)·도청(都廳)·낭청(郎廳)·감조관(監造官) 등을 임명하였다. 또 별공작(別工作)·조주소(造主所)·표석소(表石所)·지석소(誌石所)·분전설사(分典設司)·분장흥고(分長興庫) 등을 부설하여, 장례에 관한 일을 분담하도록 하였다.

원래 혜경궁 홍씨의 장례는 예장의 격식에 맞춰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이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기재된 소내상(小內喪)의 규정에 따라 거행해야 했다. 그러나 나라에 처음 있는 변례(變禮)라 하여 여러 대신들의 논의를 거쳐 진행하도록 결정하고, 양례도감으로 하여금 이를 관장하도록 하였다(『순조실록』 15년 12월 15일).

조직 및 역할

양례도감은 시신을 매장하고 우주(虞主)혼전(魂殿)에 모실 때까지 약 3개월 동안 운영하는 임시 기구였다. 도청(都廳)과 일방(一房)·이방(二房)·삼방(三房)으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 별공작·지석소·분전설사·분장흥고 등이 부설되어 장례 업무를 분담하였다.

도청은 양례도감의 일을 총괄하는 핵심적인 부서로, ‘도감응행사목(都監應行事目)’을 제정하여 일의 큰 원칙을 정하였다. 일방은 예장에 사용되는 각종 수레와 가마, 영좌(靈座) 등의 물품 제작을 담당하였다. 이방은 길의장(吉儀仗)흉의장(凶儀仗)복완(服玩), 명기(明器) 등을 제작하고, 부설 기구 중 분장흥고를 관장하였다. 삼방은 시책(諡冊)·시인(諡印)·애책(哀冊)·삽선(翣扇)·만장(輓章)·제기(祭器) 등의 제작을 담당하였으며, 조주소·표석소·지석소·분전설사 등을 관장하였다.

참고문헌

  • 『혜빈양례도감의궤(惠嬪襄禮都監儀軌)』
  • 김세은, 「순조 15년(1815) 혜경궁 홍씨의 훙서(薨逝)와 현륭원 합부(合祔)」, 『규장각』2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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