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상(朴仁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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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62년(명종 17)~? = ?]. 조선 중기 선조~광해군 때 활동한 역관(譯官). 자는 경서(景瑞)이다. 본관은 음성(陰城)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중추부(中樞府)지사(知事)박신영(朴信英)이며, 어머니 태안 장씨(泰安張氏)는 장종손(張終孫)의 딸이다. 부인 강화 장씨((江華張氏)는 사역원(司譯院)부정(副正)장한(張翰)의 딸이다.

선조~광해군 시대 활동

1582년(선조 15) 식년시(式年試) 역과(譯科)에 장원(壯元) 급제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차비 역관(差備譯官)으로 우리나라와 명(明)나라, 명나라와 일본의 외교 담판에 많은 활약을 하였다. 1604년(선조 37) 요동(遼東)의 주민 손득춘(孫得春) 등이 의주(義州)의 난자도(蘭子島)·체자도(替子島)를 무단 경작하자 3차에 걸쳐 명나라를 내왕하면서 사건을 마무리를 지었다.

1609년(광해군 1) 도제조(都提調)이덕형(李德馨)에 의하여 사역원 담당 역관인 훈상(訓上)으로 임용되어 당상관(堂上官)이 되자, 사간원(司諫院)에서는 그가 교회(敎誨)를 거치지 않았다 하여 쟁론하였다. 이때 이덕형은 말하기를, 박인상의 재주는 화실(華實)하여 그 직책에 합당할 뿐만 아니라 만약 앞으로 그와 같은 인물이 있다면 이번 일을 예로 하여 역시 등용하여야 할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1617년(광해군 9) 4월 중추부 지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통문관지(通文館志)』
  • 『대동야승(大東野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역사연구실 편, 『조선시대 잡과합격자 총람(朝鮮時代雜科合格者總覽)』,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