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항(權大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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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10년(광해군2)∼1666년(현종7) = 57세]. 조선 중기 인조~효종 때 의 무신이며, 척신(戚臣). 자는 응정(應貞)이다. 도승지권희(權憘)의 손자이고 선조와 온빈한씨(溫嬪韓氏) 딸인 정화옹주(貞和翁主)의 남편이다. 어머니는 조단(趙端)의 딸이다.

인조 시대 활동

21세이던 1630년(인조8) 선조의 딸 정화옹주와 결혼하고, 이듬해 동창위(東昌尉)에 봉해졌다. 1636년(인조14)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피난 가는 어가(御駕)를 수행한 공로로 자의대부(資議大夫)로 승진하고, 곧 금군청(禁軍廳)의 부총관(副摠管)이 되었다.

1631년(인조9) 임금이 태복시(太僕寺)의 말을 하사하였는데, 그는 하사한 말이 좋지 않다고 하여 담당 관리를 매질하였다가 간관(諫官)의 탄핵을 받았다. 1666년(현종7) 정월 세상을 떠나니, 향년 57세였다.

무덤과 성품

묘소는 경기도 양주(楊州) 어등(於登) 관곡(寬谷)에 있는데, 외가 한양조씨(漢陽趙氏)의 선영이다. 허목(許穆)이 지은 비명(碑銘)이 있다.(『미수기언(眉叟記言)』 별집 권25) 외가의 제사를 받들다가 외가의 선산(先山)에 묻혔는데, 그도 후손이 없어 형 권대유(權大有)의 아들 권덕휘(權德徽)를 양자로 삼았다.

성품이 충실하고 몸을 조심하였으며 검소한 생활을 좋아하였다. 남과 사귈 때에는 겸손하게 대했고, 자기가 존귀(尊貴)하다고 자처(自處)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력, 행적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미수기언(眉叟記言)』
  • 『응천일록(凝川日錄)』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 『문곡집(文谷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