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開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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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당(唐)나라 현종(玄宗) 대에 사용한 연호(713년~741년).

개설

중국 당나라의 제 6대 황제인 현종이 사용한 3개의 연호 가운데 2번째 연호이다(713년~741년).

개원(開元)을 연호로 사용하던 시기에 현종은 과감한 쇄신 정치를 실시하면서 당나라의 중흥을 이루었고, 그 결과 이 시기는 ‘개원의 치(治)’라고 불리며 중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다. 그리하여 중국의 예를 참고하여 국가 정책을 실시하던 조선(朝鮮)에서는 자주 개원 연간을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개원 연간과 그 다음 시기인 천보(天寶) 연간을 비교하는 기사를 자주 볼 수 있다.이 두 시기 모두 현종의 치세 기간인데, 통치의 결과는 매우 달랐다. 개원 연간이 당나라의 중흥을 이루었던 것과는 달리, 천보 연간은 당나라의 여러 문제가 표출된 시기였다. 게다가 천보14년인 755년에 <안사(安史)의 난(亂)>이 발생하면서 당나라는 급격하게 쇠퇴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에서는 개원 연간의 훌륭한 정치가 천보 연간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던 까닭 가운데 하나를 간신의 임용때문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양귀비(楊貴妃)와도 관련이 있었다. 개원 연간에는 요숭(姚崇)과 송경(宋璟)을 재상으로 임용하여 정치가 잘 이루어졌으나, 천보 연간에는 간신인 이임보(李林甫)와 양귀비의 친척인 양국충(楊國忠) 등을 임용하였던 까닭에 당나라에 반란이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 반란이 당나라 멸망의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고 보았다. 이러한 까닭에 조선에서는 임금의 정치와 신하의 임용 등에 관하여 논의할 때 개원 연간과 천보 연간의 비교를 통하여 이것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부각시켰다.

다음으로는 『개원례(開元禮)』와 관련하여 『조선왕조실록』에 개원 연호가 등장하는 경우이다. 『개원례』는 개원 연간에 제정된 예제(禮制)들을 기록한 총 1백 58권의 서적으로, 서견(徐堅)~이예(李銳)~소숭(蕭嵩) 등이 현종의 칙명(勅命)을 받아서 지은 것이다. 본래 이름은 『대당개원례(大唐開元禮)』이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주로 『개원례』라는 서명으로 등장한다. 『당개원례(唐開元禮)』 역시 같은 책으로, 길례(吉禮)~빈례(賓禮)~군례(軍禮)~가례(嘉禮)~흉례(凶禮) 등의 내용을 담으면서 중국의 오례(五禮) 제도가 완비되었다. 조선 또한 이것에 많은 영향으로 받았고, 그 결과 『개원례』를 참고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에서도 오례 등을 정비할 때, 『국조오례의』 뿐만 아니라, 『개원례』도 많이 참고하였는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이와 관련하여 개원 연호가 계속하여 등장한다.

한편 신라(新羅)에서는 성덕왕(聖德王)12년부터 효성왕(孝成王)5년까지 개원 연호를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인종실록(仁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구당서(舊唐書)』
  • 『신당서(新唐書)』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