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天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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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당(唐)나라 현종(玄宗) 대에 사용한 연호(742년~756년).

개설

중국 당나라의 제 6대 황제인 현종이 사용하던 3개의 연호 가운데 마지막 연호이다(742년~756년).

현종은 집권 초기에는 ‘개원(開元)의 치(治)’라 불리는 당나라의 전성기를 이룬 인물인지만, 천보(天寶) 연호를 사용하던 집권 후기에는 당나라의 쇠퇴를 가져온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쇠퇴의 중심에는 양귀비(楊貴妃)가 있었다. 양귀비를 총애하였던 현종은 양귀비의 일족(一族)인 양국충(楊國忠)을 재상(宰相)으로 임명하는 것을 비롯하여 점차 선정(善政)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빌미로 평로(平盧) · 범양(范陽) · 하동(河東) 세 곳의 절도사(節度使)로 있던 안록산(安祿山)은 천보14년(755년)에 반란을 일으켜 낙양(洛陽)을 함락시키고 장안(長安)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촉(蜀)으로 대피하였고, 이 과정에서 양귀비는 현종의 명령을 받고 자살하였다. 그리고 현종은 신하들의 주청을 받아들여 황제의 지위를 아들 숙종(肅宗)에게 양위(讓位)하며 태상황으로 물러나면서 천보 연간은 막을 내린다. 얼마 후 안록산은 자신의 아들에게 살해되고, 숙종과 그의 아들 대종(代宗)은 곽자의(郭子儀) · 이광필(李光弼) 등과 회흘(回紇) · 대식(大食) 및 여러 나라의 원병을 얻어 숙종 보응(寶應)2년(763년)에 남은 세력을 토벌하며 이 반란을 평정하였다. 이 난을 가리켜 <안록산의 난> 또는 <안사(安史)의 난(亂)>이라 하며, 난이 발생하였던 천보 연호를 본 따 <천보의 난>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현종이 양귀비를 총애하며 양국충을 임용하면서 <안록산의 난>이 발생하였으며, 이것이 당나라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의 중요성 및 신하의 임용 등에 대하여 언급하는 『조선왕조실록』 기사 등에서 천보 연호를 종종 찾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동일한 황제가 정치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개원 연간과 천보 연간의 상황이 매우 상반되었기 때문에, 두 시기를 비교하는 내용도 자주 등장한다.

한편 신라(新羅)에서는 경덕왕(景德王)1년부터 경덕왕15년까지 이 연호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인종실록(仁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구당서(舊唐書)』
  • 『신당서(新唐書)』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