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講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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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과거에서 경서를 외웠는지 시험하는 것, 또는 경연 등에서 경서를 강의하게 하는 것.

개설

강경은 조선시대 과거의 문과(文科)초시(初試)의 초장(初場)·중장(中場)·종장(終場)에서 초장에 시험 보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강경은 일종의 구술시험으로, 책을 보지 않는 배강(背講)과 책을 보고 뜻을 말하는 임문고강(臨文考講)이 있었다. 이 밖에도 일반적으로 경전을 강의하게 하는 의미로도 쓰여 경연 등에서 경서의 뜻을 말하게 할 때도 강경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내용 및 특징

강경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문과 초시의 초장이나 무과에서 시험 보는 방법 중 하나이다. 초장에는 강경과 제술(製述)의 두 가지 시험 방법이 있었다. 이 가운데 강경은 구술시험으로, 책을 보지 않고 물음에 답하는 배강과 책을 보고 뜻을 말하는 고강이 있었다. 이에 대한 채점은 대통(大通)·통(通)·약(略)·조(粗)·불(不)로 평가하여 점수를 주었다.

강경은 문과 시험에만 있었고, 생원·진사를 뽑는 소과(小科)에는 없었다. 관시(館試)·향시(鄕試)에서는 오경(五經)·사서(四書) 가운데 매 1책마다 각각 3장(章)을 강문(講問)하고, 회시(會試)에서는 오경 중 1장, 사서 중 1장을 강(講)하게 하여, 그 뜻에 통한 사람을 뽑았다(『태종실록』 1년 윤3월 21일). 과거시험에서 강경으로 시험하는 방법은 여러 번 바뀌었다. 무과에서 강경은 종장에서 무경(武經)을 시험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12년 6월 1일).

과거에서 시험하는 방법으로의 강경 이외에도 일반적으로 경전을 공부하고 설명하는 의미로서의 강경도 있었다. 특히 경연(經筵)이나 서연(書筵)에서 경전을 공부하는 뜻으로 쓰였다(『영조실록』 29년 6월 18일).

변천

조선 초에는 식년문과(式年文科) 초시나 이에 준하는 증광시(增廣試)의 초시에서 강경과 제술 가운데 어느 쪽에 중점을 두는가의 문제를 놓고 의견이 대립되었다. 세종 때에는 초시와 복시의 초장에서 사서삼경을 배강하기도 하였고, 세조 때에는 복시 초장에서만 사서삼경을 배강하도록 하였다. 성종 때에는 사림들의 주장으로 강경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강경만으로 인재를 뽑기도 하였다(『성종실록』 10년 11월 12일).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이성무, 『한국 과거제도사』, 민음사, 1997.
  • 박천규, 「문과 초장 강경시비고」, 『동양학』6,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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