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군(監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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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야간에 도성의 내외를 순찰하는 감독관의 직책.

개설

조선시대 도성 안팎의 순찰을 감독하는 최고 책임자인 순장(巡將)을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병권(兵權) 분장 차원에서 서로 견제하는 기능도 했다. 선전관(宣傳官), 병조(兵曹)·도총부의 당하관 가운데 추천하여 임금의 낙점으로 임명하였다. 이들은 순찰 군사의 출석이나 무기·장비의 소지 여부, 근무 태도 등도 점검했다.

담당 직무

왕조 개창 직후에는 정치적 소요의 발생을 우려해서 도성 안팎의 야간 순찰을 강화하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중앙 군제의 개편을 통해 조성된 정예 병력을 투입하는 한편, 이들을 책임지고 감독하는 직위에 왕자나 종친·공신 등을 임명하였다. 이들을 감순절제사(監巡節制使)로 불렸는데, 태종도 즉위하기 전인 정안군(靖安君) 시절에 이를 맡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점차 왕조의 체제가 안정되면서 국왕과 특수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은 제외되었으며 일반 관료들이 이를 대신하였다. 감독관직의 명칭도 바뀌었다.

야간 순찰의 감독을 맡았던 감군(監軍)에 대한 기록은 1465년(세조 11)에 처음으로 나온다. 순찰군의 관아였던 순청(巡廳)을 2개소로 나누어 매 소마다 순장 1명과 감군 1명이 함께 앉아 점검하도록 하되, 선전관, 병조·진무소(鎭撫所)의 낭청(郎廳) 중에서 임금의 낙점을 받아 감군에 임명하도록 했다(『세조실록』 11년 12월 2일). 이때 비로소 책임자인 순장을 보좌하는 부책임자로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예종 즉위 초에 태종의 외손으로 역모죄로 몰려 죽음을 당한 남이(南怡)의 옥사(獄事) 등으로 정국이 어수선하자 순청을 3개소로 늘렸으며, 그에 따라 감군도 3명으로 늘렸다. 그리고 당직을 빠지고 서지 않는 자가 있다는 이유로 선전관을 보내 순청을 감찰하였는데, 군사 중에 대신하는 자, 말이나 병기가 없는 자, 표신(標信)을 살피지 않고 순소(巡所)를 떠난 자 등을 적발하고서 순장과 감군을 모두 국문하여 책임을 묻도록 했다(『예종실록』 1년 9월 24일). 더불어 병조·도총부에게 감군하는 자로 하여금 패(牌)를 받게 하라고 지시했다(『예종실록』 1년 9월 24일). 이로써 감군은 순장을 도와서 순찰하는 일을 감독하되, 담당 군사들의 출석이나 무기·장비의 소지 여부, 근무 태도 등을 점검하는 역할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경국대전』에 이르러 출직 군사를 2개소로 나누어 순찰하도록 함에 따라 감군도 다시 2명이 되었다. 선전관, 병조·도총부의 당하관 중에서 임금에게 추천하여 임명하였다. 출·입번 모두 대궐에 들어가 숙배하고 그 안에서 패를 거두고 받았다. 임금이 나들이 가고 없을 때에는 승정원에서 받도록 했다.

변천

순찰군을 감독하려고 순장과 감군을 두었던 것은 병권을 분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때때로 도총부의 당상관을 순장, 낭청을 감군으로 임명하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된다며 『경국대전』에 의거하여 처리하도록 했다(『성종실록』 20년 5월 23일). 이는 곧 도총부 관원의 병권 장악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1504년(연산군 10)에 갑자사화가 일어나 정계의 긴장도가 높아지자 순장과 감군의 임명 방식을 3인의 후보자를 추천하여 왕이 낙점하던 방식에서 날마다 서계(書啓)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이는 단망(單望)으로 1명만 추천해서 임명하는 것이었다(『연산군일기』 10년 4월 13일). 그리고 기밀을 엄수하기 위해 감군의 망단자(望單子), 즉 추천 내용을 적은 단자와 군호(軍號)는 모두 봉함해서 바치도록 했다(『연산군일기』 10년 10월 1일). 하지만 1506년에 중종반정이 일어난 뒤에 연산군 때의 조처들은 원상 복귀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감군의 업무 부담이 결코 적지 않았는데, 순찰군을 나누는 분군 때 순장이 감군을 기다리지 않고 제멋대로 실시하면 추궁을 당하기도 했다(『선조실록』 11년 6월 26일). 이로 인해 한 사람이 장기간에 걸쳐 맡는 것을 금지하였다(『인조실록』 10년 7월 4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박홍갑, 「조선초기 금군과 숙위체제」, 『조선시대의 과거와 벼슬』, 집문당,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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