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인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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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창덕궁에 있는 외전(外殿)의 중심이 되는 정전으로 신하인 백관들에게 하례를 받거나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공간이다. 국보 제225호로 지정되었다.[1]

내용

역사

1405년(태종 5) 창덕궁 창건 때 건립된 것을 1418년(태종 18)에 고처 짓게 해 같은 해인 세종 즉위년 9월에 준공된다. 그 후 단종 때에 해체 보수공사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광해군 때에 중건된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창덕궁 인정전은 화재를 당하지 않았고, 1782년(정조 6) 9월 품계석을 앞뜰에 설치하면서 다른 궁도 설치하게 되었다. 1803년(순조 3)에 다시 소실되었다가 다음해 중건된다. 1856년(철종 7)에 건물이 퇴락하였다는 이유로 완전히 해체하여 보수 공사를 시행했는데 현재 건물을 골격이 이때 완성된 것이다.[2] 창덕궁 인정전 안에는 정면에 왕의 용상이 있고 그 뒤에는 나무로 만든 곡병과 곡병 뒤에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라는 병풍이 있다. 병풍에는 음양을 뜻하는 해와 달이 있으며 이는 다시 왕비를 상징한다. 그 아래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우리나라의 동, 서, 남, 북, 중앙의 다섯 산을 가리키며 이는 국토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3]

현재

창덕궁 인정전의 주변에는 유리창을 비롯하여 전구나 커튼 등 서양 장신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외국과의 수교 후 다양한 외래 문물이 들어 온 것이며, 1907년 순종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겨 거주[移御]한 후에 창덕궁 인정전의 실내바닥이 전돌에서 마루로 바뀌고, 전구가 설치되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일어난 채 유지되고 있다. [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책례 창덕궁 인정전 A는 B에서 거행하였다
연향례 창덕궁 인정전 A는 B에서 책례를 거행하였다

시간정보

시간 내용
1405년 5월 4일 창덕궁 인정전이 건립되었다
1609년 5월 3일 선조의 사제가 창덕궁 인정전에서 거행되었다
1784년 8월 2일 문효세자창덕궁 인정전에서 책봉례를 거행하였다
1725년 2월 28일 효종창덕궁 인정전에서 책봉례를 거행하였다
1848년 순원왕후를 위한 연향례창덕궁 인정전에서 거행되었다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문화재청 창덕궁 인정전
  2.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42~50쪽.
  3. 문화재청 창덕궁 인정전
  4. 문화재청 창덕궁 인정전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공준원, 『오궁과 도성』, 세계문예, 2009.
  • 이강근, 『한국의 궁궐』, 대원사, 1991.
  • 이태호, 『그림으로 본 옛 서울』, 서울학연구소, 1995.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더 읽을거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