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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6일 (수) 01:41 판

양주 회암사지
(楊州 檜巖寺址)
BHST Hoeamsaji.jpg
대표명칭 양주 회암사지
한자 楊州 檜巖寺址
주소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14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 128호
문화재 지정일 1964년 6월 10일
건립시기 1328년(충숙왕 15)
창건자 지공(指空)
경내문화재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 양주 회암사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 양주 회암사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 양주 회암사 지공선사부도비,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비, 양주 회암사지 부도탑, 양주 회암사지 맷돌, 양주 회암사 목조여래좌상 및 복장물



정의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천보산(天寶山)에 있는 절터.


내용

역사

1328년(충숙왕 15)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指空)이 인도의 아라난타사(阿羅難陀寺)를 본떠 창건한 266칸의 대규모 사찰이었다. 1376년(우왕 2) 나옹선사 혜근(惠勤)이 중건하고, 조선왕조에 들어와 세조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명으로 정현조(鄭顯祖)가 재중창하였는데, 명종보우(普雨)가 실각한 후 쇠퇴하기 시작하여 19세기 초에는 거의 폐허가 되었다.[1]

발굴

회암사지(檜巖寺址)에 대한 조사는 1997년의 시굴조사와 1998년 이후부터 매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현재 11차 발굴조사가 완료된 상태이다. 건물지를 비롯한 다양한 유구(遺構)들이 조사되었는데, 대부분은 회암사가 폐사되기 직전의 유구에 해당된다.[2]

가람배치

회암사지 가람[3]은 천보산 남쪽의 경사진 계곡부를 성토[4]하고 석축[5]을 쌓아 8개의 단지로 평지 조성하고 여기에 건물을 배치하였다. 8차까지 이루어진 발굴 조사 결과, 회암사지는 일반적인 사찰 건축과는 달리 궁궐 건축의 건물 구조나 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가람의 배치가 평지가 아닌 산간에 위치하면서도 8단의 단축을 이루면서 남쪽에 회랑(回廊)을 두고 있는 점은 고려 시대의 궁궐이나 가람 배치의 특징과 같다. 또한 남북의 축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면서 모두 64개소의 건물을 배치하여 종교적인 공간으로서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각 건물의 기능적인 용도에 따라서 건물의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고 있다. 이와 같은 회암사지 가람의 특징은, 남북의 축 선상에 건물을 배치하는 가람 배치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왕실 사찰로서의 성격에 부합되도록 건물을 배열하고 위계를 설정하면서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6]

출토유물

회암사지에서는 왕실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된 용무늬 기와, 봉황 무늬 기와, 청기와, 잡상 등의 기와류나 왕실 전용 자기를 생산하던 관요(官窯)의 도자류를 비롯하여 당시 왕실과 불교문화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핵심이 되는 귀중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7] 출토된 유물의 종류는 기와류, 도자기류, 금속류, 소조품류 등 다양하며, 기타 옥제품이 있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이들 유물들의 출토 상태가 회암사 폐사시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석제로 제작된 불상의 머리가 고의적으로 잘려져 담장지 밑에 버려진 채로 출토된다든지 여러 개체의 도자기들이 한 곳에서 깨어진 채로 출토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깨뜨려서 폐기한 것으로 회암사의 폐사 원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보여진다.[8]

현황

현재 발굴 조사를 통해서 얻어진 중요 문화재를 보존하고, 이를 연구·전시·교육하기 위한 회암사지 박물관이 개관하였다.[9] 절터는 남쪽 기슭 경사진 대지에 있으며, 거대한 당간지주(幢竿支柱)[10], 괘불대(掛佛臺)[11] , 부도(浮屠)들[12], 그리고 수십동에 달하는 건물 기단(基壇)[13]과 초석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14]

관련문화유산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양주 회암사지 A는 B에 있다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양주 회암사지 A는 B에 있다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 양주 회암사지 A는 B에 있다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혜근 A는 B를 위한 비이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64년 양주 회암사지가 사적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1996년 양주 회암사지에 대한 조사, 발굴을 시작했다

시각 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양주 회암사지", 『두산백과』online.
  2. 서지민, "양주 회암사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가람(伽藍) : 승려들이 사는 사찰 등의 건출물. "가람", 『두산백과』.online
  4. 성토(盛土): 흙을 쌓음
  5. 석축(石築): 돌로 쌓아 만든 벽의 일종
  6. 서지민, "양주 회암사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7. 서지민, "양주 회암사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8. "양주 회암사지", 경기도 발굴유적, 『경기도의 문화유산』online,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
  9. 서지민, "양주 회암사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0.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우는 기둥."당간지주",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11. 법당(法堂) 밖이나 야외에서 의식을 행할 때, 그곳에 불화(佛畵)를 걸어 두는 긴 막대기."괘불대",『시공 불교사전』online
  12.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墓塔)."부도",『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13. 집터를 잡고,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층 높게 쌓은 단."기단,『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14. "양주 회암사지", 옛절터 보기, 『옛 절터를 찾아서』online.

참고문헌

  • 박정해, 「회암사 입지의 풍수환경과 해석」, 『동북아문화연구』 제40집,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4, 143-158쪽.
  • 임연태, 「양주 회암사」, 『시와세계』 제26호, 2009, 163-172쪽.
  • 서지민, "양주 회암사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조유선,"양주 회암사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정수, "회암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회암사지박물관, 『회암사, 그 위용을 드러내다』, 회암사지박물관, 2012.
  • 회암사지박물관, 『회암사와 왕실문화』, 회암사지박물관 연구총서Ⅱ, 2015.
  • 회암사지박물관, 『회암사와 불교사』, 회암사지박물관 연구총서Ⅳ, 2016.
  • 국내관광진흥팀, "조선 불교의 흥망성쇠 현장으로- 양주 회암사지" 『대한민국 구석구석』online, 한국관광공사.
  • 국내관광진흥팀, "양주 회암사지" 『대한민국 구석구석』online, 한국관광공사.
  • "양주 회암사지", 『두산백과』online.
  • "양주 회암사지", 경기도 발굴유적, 『경기도의 문화유산』online,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
  • "양주 회암사지", 옛절터 보기, 『옛 절터를 찾아서』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