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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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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정조21)에  [[이병모|이병모(李秉模, 1742~1806)]] 등이 왕명에 의하여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수정·편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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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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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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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서문에서 “앞서 간행된 삼강(三綱)·이륜(二倫)이라는 책이 선후로 발간되어 학관(學官)에 반포되어 있어 백성을 감화시키고 풍속을 좋게 이룩하는 근본이 되었으므로, 두 책을 표준으로 삼아 [[향음례|향음례(鄕飮禮)]]를 강조하고 행하게 하고자”라는 이 책의 간행 이유를 밝히고 있다. 내용과 기법에 있어서 인물·풍속·산수·건물 등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고, 당시 유행한 화풍이 반영되어 있다. 인물의 표현, 수지법(樹枝法), 준법(皴法) 등에서 당시 [[도화서|도화서(圖畵署)]]를 중심으로 유행한 [[김홍도|김홍도(金弘道)]]의 화풍이 역력하다. [[김홍도]]나 당시 그의 화풍을 보인 화원[[김득신|김득신(金得臣)]]·[[이인문|이인문(李寅文)]]·[[장한종|장한종(張漢宗)]] 등이 그렸을 개연성이 높다. 조선 말기에는 판화를 소재로 하여 민화로 다수 그려졌고, 이 책은 글과 삽화를 필사한 것이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52-53쪽.</REF>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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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행실도』간행의 시대적 배경===
1797(정조21년)에 [[이병모(李秉模, 1742~1806)|이병모]] 등이 왕명에 의하여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수정, 편찬한 책이다.<REF>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8213 오륜행실도],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3월 28일 확인.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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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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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행실도』가 간행된 시기는 경제,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이를 담아낼 수 있는 사상의 혁신도 함께 요구되던 때였다. 조선 후기는 관개시설이 확층되고 농기구 개량과 같은 농업 기술의 발달로 인해 농업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잉여 생산물로 인해 농산물 거래가 활성화되었고 이에 수공업, 축산물 등의 품목을 포함하는 시장 경제 자체의 규모가 확대되었다. 생산자인 농민이 아닌 상인과 지주들이 부를 축적함에 따라 농민층과 상인, 지주계층 사이에서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향촌 사회의 불안정을 초래했으며 마침내 농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이 약화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ref>유소희, 『「五倫行實圖」硏究』, 동국대학교, 199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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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행실도』 간행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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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행실도』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타파하고 유교적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편찬되었다. 그러나 [[정조]]가 『오륜행실도』를 간행한 목적은 비단 유교적 질서를 확립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왕권을 강화하려는 것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륜(五倫)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뤄졌던 효()는 유교적 관점에서 살펴봤을 때 아버지-자녀의 관계를 임금-백성의 관계로 확대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똑같이 섬긴다)’라는 단어만 봐도 명백히 드러난다. [[정조]]는 교화서의 편찬과 더불어 [[융건릉]](사도세자의 묘)이 있는 곳인 화성으로 여러 차례 성묘를 다녀오는 등 왕 자신이 효(孝)를 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써 향촌 사회에 효(孝)의 모범을 세움과 동시에 보수파 세력들이 왕권 강화에 반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명분을 만들 수 있었다.<ref>유소희, 『「五倫行實圖」硏究』, 동국대학교, 1995.</ref>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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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행실도』의 특징===
1797년정조21에 [[이병모]]李秉模, 1742~1806 등이 왕명에 의하여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수정,편찬한 책이다. 정조는 서문에서 “앞서 간행된 삼
+
이전에 간행되었던 [[행실도]]류가 대부분 『[[삼강행실도]]』의 편찬 체계를 답습했던 것에 비해 『오륜행실도』는 비교적 큰 변화 양상을 보인다.  
강三綱·이륜二倫이라는 책이 선후로 발간되어 학관學官에 반포되어 있어 백성을 감화시키고 풍속을 좋게 이룩하는 근본이 되었으므로, 두 책을 표준으로 삼아 [[향음례鄕飮禮|향음례]]를 강조하고 행하게 하고자”라는 책의 간행 이유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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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문 혹은 언해의 위치
내용과 기법에 있어서 인물·풍속·산수·건물 등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고, 당시 유행한 화풍이 반영되어 있다. 인물의 표현, 수지법樹枝法, 준법皴法 등에서
+
기존의 행실도는 판화-한문을 순서대로 배치하고 남는 여백에 언해를 붙여 이해를 돕고자 했었던 반면 『오륜행실도』는 언해를 본문 위 여백이 아니라 원문의 바로 뒤에 첨부하였다. 조선 후기는 언문으로 된 소설이나 저서 등이 보편화되었고 그만큼 언문을 문학으로 소비하는 독자층도 넓어졌다. 행실도의 언해는 더 이상 부차적인 설명이 아니라 일종의 문학으로 받아들졌다. 때문에 독자의 편의를 위해 언문의 크기와 비중을 늘린 것이었다.<ref>유소희, 『「五倫行實圖」硏究』, 동국대학교, 1995.</ref>
당시 도화서圖畵署를 중심으로 유행한 [[김홍도金弘道|김홍도]]의 화풍이 역력하다. 김홍도나 당시 그의 화풍을 보인 [[김득신金得臣|김득신]]·[[이인문李寅文|이인문]]·[[장한종張漢宗|장한종]] 등의 화원이 그렸을 개연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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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의 양식
조선 말기에는 판화를 소재로 하여 민화로 다수 그려졌고, 이 책은 글과 삽화를 필사한 것이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52-53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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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삼강행실도]]』, 『[[이륜행실도]]』와 같은 행실도류의 판화들은 ‘[[이시동도법]]’ 혹은 ‘다원적 구성방식’을 사용하여 그림에 칸을 나눠 서사를 부여하였다. 그러나 『오륜행실도』는 이러한 구조에서 탈피하여 중요한 장면 한둘을 가려 미려한 그림체로 나타내는 ‘일원적 구성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언문 문학의 보편화와도 관련이 있는데 언문 독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더 이상 이전처럼 그림으로 서사를 전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구성방식은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장면을 취사선택해 보여줌으로써 글의 의도를 잘 드러내 준다는 장점이 있다. <REF>권정은, 「〈오륜행실도〉로 본 문학과 그림의 교육적 실천」, 『고전문학과 교육』 제 24집, 한국고전고문학학회, 2012.</REF>
  
==시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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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행실도』의 간행 및 판본===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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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행실도』는 1797년(정조 21) [[정리자]]로 간행된 책 이외에도 지방으로 다량 보급하기 위해 같은 해에 새겨진 목판본이 존재했는데 [[주지소]]에 보관되어 전해지다 185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또한 이 정리자본을 지방에 보내어 번각하게 하였는데 이에 대한 기록은 상세하지 않다. 이후 1859년(철종 10) [[교서관]]에서 중간하였다. 5권 4책이었던 것이 5권 5책으로 바뀐 것 외에 초간본과 중간본의 큰 차이는 없다..<ref>이영희, 『행실도류 언해의 분석적 연구』,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1.</ref>
파일:오륜행실도_누백포효.jpg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시 [http://jsg.aks.ac.kr/home/exhibit/special.do] 한글전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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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륜행실도_석진단지.jpg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시 [http://jsg.aks.ac.kr/home/exhibit/special.do] 한글전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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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dh.aks.ac.kr/Encyves/Graph/A021/A021.htm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언해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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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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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references/>
 
<references/>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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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을 거리===
 +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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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오륜행실도』, 동서문화사, 2015.
 +
**이민수,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해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을유문화사, 1972.
 +
*웹자원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8213 오륜행실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분류:한글고문헌]]
+
[[분류:한글고문서]]
[[분류: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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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전시자료]] [[분류:문헌]]
[[분류:인문정보편찬연구]]
 
[[분류:스토리텔링]]
 

2017년 12월 5일 (화) 17:30 기준 최신판

오륜행실도
한글팀 오륜행실도 누백포효.jpg
한자명칭 五倫行實圖
영문명칭 Painting album of the illustrated stories exemplifying the five Confucian virtues
작자 이병모 등
간행시기 1797년
소장처 삼성미술관 leeum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21.7×14.7㎝
판본 필사본(종이에 채색)
수량 1冊
표기문자 한글, 한자


정의

1797년(정조21)에 이병모(李秉模, 1742~1806) 등이 왕명에 의하여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수정·편찬한 책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정조는 서문에서 “앞서 간행된 삼강(三綱)·이륜(二倫)이라는 책이 선후로 발간되어 학관(學官)에 반포되어 있어 백성을 감화시키고 풍속을 좋게 이룩하는 근본이 되었으므로, 두 책을 표준으로 삼아 향음례(鄕飮禮)를 강조하고 행하게 하고자”라는 이 책의 간행 이유를 밝히고 있다. 내용과 기법에 있어서 인물·풍속·산수·건물 등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고, 당시 유행한 화풍이 반영되어 있다. 인물의 표현, 수지법(樹枝法), 준법(皴法) 등에서 당시 도화서(圖畵署)를 중심으로 유행한 김홍도(金弘道)의 화풍이 역력하다. 김홍도나 당시 그의 화풍을 보인 화원김득신(金得臣)·이인문(李寅文)·장한종(張漢宗) 등이 그렸을 개연성이 높다. 조선 말기에는 판화를 소재로 하여 민화로 다수 그려졌고, 이 책은 글과 삽화를 필사한 것이다.[1]

『오륜행실도』간행의 시대적 배경

  • 시대상황

『오륜행실도』가 간행된 시기는 경제,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이를 담아낼 수 있는 사상의 혁신도 함께 요구되던 때였다. 조선 후기는 관개시설이 확층되고 농기구 개량과 같은 농업 기술의 발달로 인해 농업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잉여 생산물로 인해 농산물 거래가 활성화되었고 이에 수공업, 축산물 등의 품목을 포함하는 시장 경제 자체의 규모가 확대되었다. 생산자인 농민이 아닌 상인과 지주들이 부를 축적함에 따라 농민층과 상인, 지주계층 사이에서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향촌 사회의 불안정을 초래했으며 마침내 농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이 약화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2]

  • 『오륜행실도』 간행의 목적

『오륜행실도』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타파하고 유교적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편찬되었다. 그러나 정조가 『오륜행실도』를 간행한 목적은 비단 유교적 질서를 확립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왕권을 강화하려는 것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륜(五倫)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뤄졌던 효(孝)는 유교적 관점에서 살펴봤을 때 아버지-자녀의 관계를 임금-백성의 관계로 확대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똑같이 섬긴다)’라는 단어만 봐도 명백히 드러난다. 정조는 교화서의 편찬과 더불어 융건릉(사도세자의 묘)이 있는 곳인 화성으로 여러 차례 성묘를 다녀오는 등 왕 자신이 효(孝)를 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써 향촌 사회에 효(孝)의 모범을 세움과 동시에 보수파 세력들이 왕권 강화에 반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명분을 만들 수 있었다.[3]

『오륜행실도』의 특징

이전에 간행되었던 행실도류가 대부분 『삼강행실도』의 편찬 체계를 답습했던 것에 비해 『오륜행실도』는 비교적 큰 변화 양상을 보인다.

  • 언문 혹은 언해의 위치

기존의 행실도는 판화-한문을 순서대로 배치하고 남는 여백에 언해를 붙여 이해를 돕고자 했었던 반면 『오륜행실도』는 언해를 본문 위 여백이 아니라 원문의 바로 뒤에 첨부하였다. 조선 후기는 언문으로 된 소설이나 저서 등이 보편화되었고 그만큼 언문을 문학으로 소비하는 독자층도 넓어졌다. 행실도의 언해는 더 이상 부차적인 설명이 아니라 일종의 문학으로 받아들졌다. 이 때문에 독자의 편의를 위해 언문의 크기와 비중을 늘린 것이었다.[4]

  • 판화의 양식

이전까지 『삼강행실도』, 『이륜행실도』와 같은 행실도류의 판화들은 ‘이시동도법’ 혹은 ‘다원적 구성방식’을 사용하여 그림에 칸을 나눠 서사를 부여하였다. 그러나 『오륜행실도』는 이러한 구조에서 탈피하여 중요한 장면 한둘을 가려 미려한 그림체로 나타내는 ‘일원적 구성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언문 문학의 보편화와도 관련이 있는데 언문 독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더 이상 이전처럼 그림으로 서사를 전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구성방식은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장면을 취사선택해 보여줌으로써 글의 의도를 잘 드러내 준다는 장점이 있다. [5]

『오륜행실도』의 간행 및 판본

『오륜행실도』는 1797년(정조 21) 정리자로 간행된 책 이외에도 지방으로 다량 보급하기 위해 같은 해에 새겨진 목판본이 존재했는데 주지소에 보관되어 전해지다 185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또한 이 정리자본을 지방에 보내어 번각하게 하였는데 이에 대한 기록은 상세하지 않다. 이후 1859년(철종 10) 교서관에서 중간하였다. 5권 4책이었던 것이 5권 5책으로 바뀐 것 외에 초간본과 중간본의 큰 차이는 없다..[6]


연계 자원 보러 가기
누백포호
석진단지
행실도십곡병풍


지식 관계망

  • 오륜행실도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정조 오륜행실도 편찬 A는 B를 명령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이병모 오륜행실도 편찬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오륜행실도 편찬 화성행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사도세자 오륜행실도 편찬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융건릉 사도세자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사도세자 정조 A는 아들 B를 두었다 A ekc:hasSon B
이병모 오륜행실도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오륜행실도 삼강행실도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이륜행실도 오륜행실도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오륜행실도 삼성미술관 leeum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화성행궁 융건릉 A는 B가 있는 곳이다 A dcterms:hasPart B
오륜행실도 교서관 A는 B에 의해 중간되었다 A dcterms:publisher B
오륜행실도 오륜행실도 편찬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정조 화성행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간정보

시간 내용
1797년 오륜행실도정조의 명으로 간행되었다.
1797년 오륜행실도의 목판본이 간행되었다.
1859년 철종의 명으로 오륜행실도교서관에서 중간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38369 126.998558 삼성미술관 leeum오륜행실도가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52-53쪽.
  2. 유소희, 『「五倫行實圖」硏究』, 동국대학교, 1995.
  3. 유소희, 『「五倫行實圖」硏究』, 동국대학교, 1995.
  4. 유소희, 『「五倫行實圖」硏究』, 동국대학교, 1995.
  5. 권정은, 「〈오륜행실도〉로 본 문학과 그림의 교육적 실천」, 『고전문학과 교육』 제 24집, 한국고전고문학학회, 2012.
  6. 이영희, 『행실도류 언해의 분석적 연구』,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1.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김홍도, 『오륜행실도』, 동서문화사, 2015.
    • 이민수,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해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을유문화사, 1972.
  • 웹자원
    • "오륜행실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