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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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왕(毗有王)

여비(餘毗)

삼국시대 백제의 제20대(재위:427∼454) 왕.


재위 427∼455. 제19대 구이신왕의 맏아들이다(일설에는 제18대 전지왕의 서자라 한다.). 제21대 개로왕은 그의 맏아들이다. 풍채가 수려하고 말을 잘하여 사람들의 높임을 받았다.

429년에 중국 남조(南朝)의 송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였고, 다음해에는 송나라으로부터 선왕(先王)이 받았던 사지절 도독 백제제군사 진동장군 백제왕(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鎭東將軍百濟王)이라는 작호(爵號)를 다시 받았다.

이는 송과의 동맹정책이 비유왕대에도 계속되었음을 뜻한다. 또한, 왜와의 동맹관계도 그대로 유지되어 사신이 오가고 있었다.

한편 새로운 변화도 있었는데, 433년에 이르러 종전에는 고구려의 보호국 상태에 놓여 있어 백제와 적대하게 되던 신라에 화친의 사절을 파견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당시 고구려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있었던 신라의 호응을 얻어 고구려에 대항하는 나제동맹이 형성되었다.

    비유왕(20대)은 백제 부여씨왕조를 개창한 군주이다. 백제는 비유왕을 시작으로 450여 년간의 온조-비류계(고이계 포함)의 해씨왕조를 마감하고 구태계의 부여씨왕조가 들어선다. 또한 백제는 부여씨왕조의 등장과 함께 한반도 경기지역의 소국에서 벗어나 한반도 서쪽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대국으로 성장한다. 앞으로 6회에 걸쳐 비유왕에 대해 상세히 알아본다.

비유왕의 이름은 여비(餘毗)이다. 대륙사서 [송서]에 나오는 공식이름이다. 비유왕은 한성백제 온조왕계열의 해씨가 아닌 부여백제(한반도 부여기마족) 구태계열의 부여씨이다. [삼국사기]는 비유왕이 ‘용모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며 사람들이 따르고 존중하였다.(美姿貌有口辯人所推重)’고 평한다. 아마도 비유왕이 오늘날에 태어났다면 100% 대통령감이다. 잘생긴 외모에 언변도 뛰어나니 이미지 정치의 최적이다.

[삼국사기]는 비유왕구이신왕(19대)의 장자(長子)로 설정한다. 또한 전지왕(18대)의 서자(庶子)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비유왕구이신왕의 혈통과 무관하다. 통상적으로 [삼국사기]는 왕통계보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무조건 단일계보로 설정한다. 그리고 혹여 다른 기록이 있으면 ‘어느 것이 옳은지 잘 모르겠다.[未知孰是]’라고 푸념을 놓는다. 특히 [삼국사기]가 서자로 기록한 경우에는 생물학적 연관성은 떨어진다.

구이신왕은 야마토(왜국)에 볼모로 가 있었던 전지왕이 귀국할 때 야마토왕실 출신 팔수부인(인덕왕 딸)을 통해 낳은 아들이다(405년). 구이신왕은 420년(16세)~427년(23세)까지 8년간을 재위한다. 이를 근거로 비유왕구이신왕의 아들이라는 전제하에 비유왕의 즉위시(427년) 나이를 추정하면 최대 8세이다. 너무 어리다. 구이신왕비유왕에게 보위를 물려줄 명분이 절대 부족하다. 비유왕이 구이신왕의 혈통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비유왕은 한반도 잔류집단 여신(餘信)계열

비유왕을 옹립한 사람은 [삼국사기]가 기록한 백제 최초의 부여씨여신(餘信)이다. 여신은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깨져 일본열도로 망명하여 야마토(大倭)를 건국한 한반도 부여백제의 왕족출신이다. 전지왕 재위초기인 407년 한성백제에 합류하여 상좌평에 보임되며 왕에 버금가는 권력자가 된다.  

전지왕 사후 팔수부인은 목만치를 정부(情夫)로 삼고 아들 구이신왕을 대신하여 섭정하며 국정을 농단한다. 이에 야마토 인덕왕은 목만치를 강제로 소환한다. 이로 인해 팔수부인은 섭정권력의 치명상을 입으며 결국에는 아들 구이신왕마저 여신에 의해 퇴출(폐위)당한다.

구이신왕의 실제 후손이 일본 고대 족보인 [신찬성씨록]<미정잡성>편에 나온다. 선자수(船子首)씨 조상은 ‘백제 구이군(九爾君)’이다. 일반적으로 [신찬성씨록]의 백제왕족출신 성씨들은 자신의 선조를 ‘백제 ○○왕’ 또는 ‘백제왕 ○○’로 표기한다. 그러나 구이신왕의 경우는 ‘王’이 아닌 ‘君’이다. 이는 구이신왕이 반강제적으로 보위에서 쫓겨나 일본열도로 망명한 사실을 부연한다.

비유왕의 출신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산라사초]에 나온다. 여동생 소시매(蘇時昧)와 의형제인 호가부(好嘉夫)와 공가부(孔嘉夫)이다. 소시매는 어머니가 소(蘇)씨임을 나타낸다. 당시에는 외가쪽 성씨를 따서 이름을 짓는 습속이 있다. 참고로 진주소씨가 있다. 시조는 박혁거세의 신라건국을 도운 6촌장 중의 하나인 소벌(蘇伐)이다. 비유왕의 모계는 신라 6촌의 소벌집단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또한 의형제인 호가부와 공가부 역시 신라출신으로 추정된다. 신라에는 ‘~부(夫)’자로 끝나는 이름이 종종 발견된다. 이사부, 거칠부, 노리부 등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비유왕은 직간접적으로 신라와 연관을 맺는다.

이는 비유왕이 신라 땅에서 출생하여 줄곧 성장한 사실을 부연한다. 만약 비유왕을 옹립한 여신비유왕의 실제 생부라면 여신은 삼한백성의 일본열도 엑소더스(Exodus)를 단행한 궁월군(여찬)을 따라가지 않고 한반도에 잔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신라출신 소씨가문 여성과 혼인하여 비유왕을 낳고 또한 신라에서 생활하다가 이후 한성백제에 합류하며 상좌평에 보임된다. 비유왕 역시 아버지 여신을 따라 자연스레 한성백제에 합류한다. 비유왕은 백제 최초의 부여씨여신의 직계후손이다.   



백제왕 계보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에서 거행된다.


이천서씨서신일(徐神逸)(아간대부 정2품)- 서필(徐弼)(내의령 종1품) 서봉(徐逢)(광평시랑평장사 정2품) - 서희(徐熙)(내사령 종1품) - 서눌(徐訥)(문하시중 종1품) 서유걸(徐維傑)(좌복야 정2품) 서유위(徐維偉)(장야서령 정3품) 서주행(徐周行)(달성군) - 서정(徐靖)(판삼사사 종1품) 서존(徐存)(병부상서 정3품)-서균(徐鈞)(우복야 정2품) 서린(徐嶙)(판대부사 정2품) 서석(徐碩)(시랑평장사 정2품)-서원(徐元)(평장사 정2품) 서공(徐恭)(판삼사사 종1품) 서순(徐淳(徐諄)(동지추밀원사 종2품) 서성(徐成)(평장사 정2품) 서염(徐廉)(사복부령 종2품)에 걸쳐 칠대(7 대) 동안 연속 재상직에 임명된 고려 최고 문벌 귀족 가문이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대구달성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徐寶 연성군(連城君)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중화 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원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하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서씨일가연합회 [[1]]

한성백제문화제(漢城百濟文化祭)

서울특별시 송파구에서 한성백제 문화를 주제로 매년 9월~10월 초에 개최하는 축제

매년 9월 말~10월 초 한성백제 시대의 도읍지였던 서울 송파구에서 개최되는 문화 축제로 1994년 제1회가 열렸다. 현재 송파구 지역은 기원전 18년부터 475년까지 약 500년간 한성백제 수도의 역할을 해 왔다. 때문에 송파에서는 백제의 다양한 유물과 유적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풍납토성(사적 제11호), 몽촌토성(사적 제297호), 석촌동 고분군(사적 제243호) 등이 있다.

한성백제문화제에서는 백제의 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대표적으로 한성백제혼불 채화식, 전통놀이 및 문화체험, 도전! 한성백제박사, 한성백제 어울마당, 한성백제 성곽돌기, 역사문화거리행렬 등이 진행된다.

백제고분제(동명제)(百濟古墳齊)

백제고분제는 백제초기 건국 온조왕부터 개로왕까지 493년에 이르는 고도 위례성의 찬란한 문화와 예술을 꽃피운 백제전기왕들의 신령께 제를 드리는 행사로 석촌동 백제초기 적석총(사적 제243호)에서 개최한다.

숭렬전(崇烈殿)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온조왕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 1972년 5월 4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온조왕묘(溫祚王廟)

경기도 광주시와 충청남도 직산군에 있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

백제를 세워 국민을 계몽하고 교화한 온조왕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현재 두 곳에 있다. 한 곳은 충청남도 직산에 중건된 것이고, 한 곳은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 안에 있는 것으로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고려 때 세운 것으로 전한다

백제문화제(百濟文化祭)

백제의 왕도(王都),충청남도 공주시와 부여군에서 개최되는 역사문화축제> 68년을 이어온 백제문화제는 고대 동아시아의 문화강국이었던 백제의 전통성에 근거하여 백제의 수도였던 충청남도 공주시와 부여군에서 1955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역사재현형 축제이다. 또한 2015년7월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백제의 후예들과 관광객들이 만들어가는 세계적인 역사문화축제로 나아가고 있다.

삼충제(三忠祭)

매년 10월에 열리는 백제문화제 때 이곳에서 삼충제(三忠祭)

백제 말의 세 충신인 성충(成忠), 흥수(興首), 계백(階伯)에게 올리는 제사. 매년 충남 부여와 공주에서 개최되는 백제 문화제 중의 하나이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5호. 소재지 : 충남(忠南) 부여군(扶餘郡) 부여읍(扶餘邑) 쌍북리(雙北里) 40-1번지. 백제(百濟)의 충신이었던 성충(成忠)ㆍ흥수(興首)ㆍ계백(階伯)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서씨 시조 서신일 추향대제(徐氏 始祖 徐神逸 秋享大祭)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 166-1에서 거행된다.

장위공 서희문화제(徐熙文化祭)

이천시는 외교 협상가로서 장위공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서희(徐熙)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알리고자 서희 선생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역사 문화 축제를 연다.

글로벌 축제를 지향하며, 우리나라 주변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 상황에 주목해 평화적 소통과 교류에 대한 방법을 찾아보고, ‘외교, 평화, 역사’를 테마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관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서희(徐熙) 선생의 일대기와 외교적 리더십에 관한 역할극, 토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꿈을 키우며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 미래 사회를 이끄는 리더로서의 성장하도록 한다.

9월에 개최되는 ‘장위공 서희(徐熙) 문화제’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안전하게 즐길 만한 지속 가능한 모델을 제시하며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사전 예약제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한다.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을 대상으로 장위공 서희 선생의 얼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전국미술대회’, 그리고 10월에는 서희(徐熙) 선생 서거 주기 추모제를 개최한다.

대전 효문화 뿌리축제(大田 孝文化 祝祭)

대전효문화뿌리축제는 천혜 자연환경 속에 위치한 뿌리공원, 한국족보박물관, 효문화마을, 효문화진흥원을 아우르는 효문화 인프라를 기반으로 효의 가치와 의미를 경험하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보고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축제이다. 전국에 어르신과 청소년, 그리고 3대가 모두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어 전국에 효 실천 문화 확산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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