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이본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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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지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1월 25일 (월) 20: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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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이본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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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春香傳 異本考(一)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11 발행기관 진단학회
저자 조윤제 역자 @ 집필일자 @ 게재연월 1939년 12월
시작쪽 94쪽 종료쪽 134쪽 전체쪽 41쪽 연재여부 연재 범주 논문 분야 문학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내용을 입력합니다.@




목차







본문


본문1: 序言


춘향전의 원작자와 그 원본은 지금에 와서 막막하여 상고할 길을 잊었다. 그러나 춘향전은 조선 고대 소설에 있어 확실히 한 이채라 볼 수 있으니, 그 내용이 제반 고대 소설의 전형을 타파하고 인간 생활의 순정을 실사하였다는 것뿐 아니라, 그 형식에 있어서도 그 찬란한 문채에는 도저히 다른 소설의 추급을 허하지 않았다. 그래서 춘향전은 과거에 있어 실로 압도적 노력을 가지고 모든 소설에 군림하여 종종의 이본을 낳았던 것이나, 시대는 바뀌어 현대가 된다 할지라도 종래 소설을 탐독하던 일반 농민 계급에는 별로 그 생활에 급한 변화가 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도리어 바꿔 들어온 현대 자유주의는 춘향전에 다시 현대적 의의를 가지고 와서 독자 대중이 환호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춘향전의 숙(熟)은 재연하게 되었다. 여기에 눈이 밝은 경성 각 출판서 이(肄)는 또 각기 기교를 자랑하여 그 중간 내지는 번안물을 경쟁적으로 출판하니, 이본은 용수처럼 쏟아져 나와 십수 년 사이에 무려 십수 종류를 헤아리게 되었으나, 그래도 아직 열은 식지 않아 이것이 바로 2, 3년 전까지도 계속되어 온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조선 문학이 다시 고전 문학의 재음미로 동향을 보이게 됨에 따라 춘향전은 또 새로운 의미에 있어 일반 문학자의 주의를 끌게 되고, 일방에 있어서는 이것이 곧 문학 연구의 대상이 되어 이미 수 종의 기술과 연구물이 발표된 것은 우리의 깊이 동경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여기서는 그 이본에 대하여 연구하여 보려 하거니와, 전래의 사본은 이미 많이 산일이 되어 얻어보기 어렵게 되었고, 근래의 활자본에도 벌써 절판되어 손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 있다. 또 원작자가 미상하기 때문에 원본을 상고하기에 극히 곤란을 느끼게 되어, 이 이본 연구에 그 근본적 토대를 퍽 박약하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 나로서는 이 이상 더 어떻게도 할 수 없으므로, 우선 내 손으로 모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 이본을 수집하여 대강 출판 연대순으로 나열하여 두고, 그 상호의 관계 내지는 그 자체의 소설적 가치를 연구하여 보려 한다.
쪽수▶P94春香傳의 原作者와 그 原本은 지금에 와서 漠々하여 相考할 길을 잊었다. 그러나 春香傳은 朝鮮 古代小說에 있어 確實히 한 異彩라 볼 수 있으니 그 內容이 諸般 古代小說의 典型을 打破하고 人間 生活의 純情을 實寫하였다는 것뿐 아니라 그 形式에 있어서도 그 燦爛한 文彩에는 到底히 다른 小說의 追及을 許하지 않았다. 그래서 春香傳은 過去에 있어 實로 壓倒的 努力을 가지고 모든 小說에 君臨하여 種々의 異本을 낳았던 것이나, 時代는 바뀌어 現代가 된다 할지라도 從來 小說을 耽讀하던 一般 農民階級에는 別로히 그 生活에 急한 變化가 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도리어 바꿔 들어온 現代 自由主義는 春香傳에 다시 現代的 意義를 가지고 와서 讀者 大衆에 喚呼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春香傳의 熟은 再燃하게 되었다. 여기에 눈이 밝은 京城 各 出版書肄는 또 各其 技巧를 자랑하여 그 重刊 乃至는 飜案物을 競爭的으로 出版하니 異本은 湧水처럼 쏟아져나와 十數年 사이에 無慮 十數種類를 헤아리게 되었으나 그래도 아직 熱은 식 ▶P95-1지 않아 이것이 바로 2, 3年前까지도 繼續이 되어온다. 뿐만 아니라 最近의 朝鮮文學이 다시 古典文學의 再吟味에로 動向을 보이게 됨에 따라 春香傳은 또 새로운 意味에 있어 一般 文學者의 注意를 끌게 되고,一方에 있어서는 이것이 곧 文學 硏究의 對象이 되어 이미 數種의 記述과 研究物이 發表된 것은 우리의 깊이 同慶하여 마지 않는 바이다. 여기서는 그 異本에 對하여 硏究하여 보려하거니와 傳來의 寫本은 이미 많이 散逸이 되어 얻어보기 어렵게 되었고 近來의 活字本에도 벌써 絶版되어 손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 있다. 또 原作者가 未詳하기 때문에 原本을 相考하기에 極히 困難을 느끼게 되어 이 異本 硏究에 그 根本的 土臺를 퍽 薄弱하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 나로서는 이 以上 더 어떻게도 할 수 없으므로 于先 내 손으로 모을 수 있는 範圍 內에서 그 異本을 蒐集하여 大綱 出版 年代順으로 羅列하여 두고 그 相互의 關係 乃至는 그 自體의 小說的 價値를 硏究하여 보려 한다.





































본문2: 一. 春香傳(京版本)


본서는 경성에서 간행된 목판본인데, 간기나 기타 참고 자료가 없어 간행 연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그 판은 아직도 한유서림에 보관되어 있어 비교적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책이다. 판형은 가로 15.5cm에서 16cm, 세로 18cm에서 20cm이며, 한 면에 15행에서 16행, 한 행에 24자에서 35자까지 불규칙하게 배열된 판이다. 총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씨체는 인쇄식 해자가 아니라, 보통 수사식의 행서체를 사용하여 읽기에 다소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가진 춘향전 판본 중에서는 둘 중 하나로, 매우 주의를 기울일 만한 중요한 자료임은 물론이거니와, 나는 이것이 춘향전의 가장 오래된 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간기의 부재로 간행 연대는 비록 명확하지 않으나, 뒤에서 말할 바와 같이 춘향전의 대부분 이본은 근래의 개산본이고, 오래되었다고 할 만한 것으로는 보성전문학교 도서관 장본, 이명선 씨 장본인 고사본 춘향전, 그리고 완판본 춘향전 등이 있다. 이들은 후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본들이나, 본서와 비교·검토했을 때 여러 가지 후천적 색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쪽수▶P95-2本書는 京城刊行의 木版本인데 刊記 其他 參考資料가 없어서 刊行 年代를 確實히 알 수 없으나 그 版은 아직도 翰有書林에 保藏되어 있어 比較的 容易히 손에 넣을 수 있는 책이다. 版貌는 橫이 15.5糎 乃至 16糎고 縱은 18糎 乃至 20糎며, 一頁 15行 乃至 16行, 1行 24字 乃至 35字의 不規則한 版인데 全部 16張으로 完了되어 있다. 字體는 印刷式의 楷字가 아니고 普通 手寫式의 行書體를 써서 보기에 若干의 困難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現在 우리가 가지는 春香傳版本으로는 둘中의 하나로서 자못 注意를 要할만한 것은 勿論이거니와 나는 어느 程度까▶P96-1지 이것을 春香傳의 가장 오랜 本이 아닌가 하는 疑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그 刊記의 不備로 刊行 年代는 비록 分明하지 못하지마는 뒤에서도 말할 바와 같이 春香傳 異本의 大部分은 近來의 改刪本이고, 조금 오래다 할 만한 것은 普成專門學校 圖書館 藏本과 李明善氏 藏本인 古寫本春香傳과 完版本春香傳인데 이들은 後世에 가장 많이 그 影響을 끼치고 있는 本이나, 本書와 比較 檢討하여 볼 때 幾多의 後來的 色彩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이명선 씨 본과 완판본이 창곡을 위주로 한 희곡적 소설임에 반하여, 본서는 스토리를 위주로 한 스토리적 소설이고, 둘째로는 완판본에서는 여주인공 춘향이가 전 남원부사 성참판과 월매라는 기생 사이에서 나서, 지금은 다만 퇴기의 딸로서 여염 생활을 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으나, 본서에서는 춘향은 다만 기생의 소출일 뿐 아니라 현재 기생으로 있는 인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본서가 반드시 양본보다 오래되었다는 논거가 되지 않을지 모르나, 나는 생각하건대 춘향전은 본래 극히 간단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점차 소설로 구상이 되고, 다시 희곡으로 발전했으리라 본다. 만약 그렇다면, 양본은 훨씬 후세의 본이 아닐 수 없을 뿐 아니라, 여주인공 춘향이 처음부터 기생이 아니고 한 퇴기의 딸로서 여각살이를 하던 여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많은 의심을 갖게 된다. 왜 그러냐 하면, 후일 춘향이 신관사도에게 초래를 당해 무한한 수난을 겪게 되나, 아무리 폭악한 관장일지라도, 비록 천민이라 하더라도 수절한다는 여자를 관정에 초래하여 폭행한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며, 또 종래 이본의 경향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춘향의 절개에 대한 동정이 열녀 춘향을 단순한 천기 소생의 부지기성의 창녀로 두지 않고, 비록 그 아버지를 양반으로 설정하여 다시 조신하는 여자로 만들었다는 것이 도리어 후대의 윤색이 아닐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본서를 감히 춘향전의 원본이라고까지는 주장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현재 남아 있는 춘향전 중에서는 원본에 가까운 정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 이것이 이하의 이본 연구에서 하나의 기준이 될지도 모르니, 다음에 간단히 그 경개를 써두고 연구하려 한다.
쪽수▶P96-2첫째로는 李明善氏本과 完版本은 唱曲을 爲主로 한 戱曲的 小說임에 反하여 本書는 스토리를 爲主로 한 스토리的 小說이고, 또 둘째는 完版本에는 女主人公 春香이가 前 南原府使 成參判과 月梅라는 妓生의 사이에서 나서 지금은 다만 退妓의 딸로서 閭閻 生活을 하는 人物이나 本書에서는 春香은 다만 妓生의 所出일 뿐 아니라 現在 妓生으로 있는 人物로 되어 있다. 이런 것들은 別로히 本書가 반드시 兩本보다 오래다는 論據로 되지않을지 모르나 나는 생각컨댄 春香傳은 本是 極히 簡單한 스토리에서 出發하여 그것이 漸漸 小說로 構想이 되고 다시 戱曲으로 發展하였으리라 하는데 萬若 그렇다면 兩本은 훨씬 後世의 本이라 아니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 女主人公 春香은 처음에 果然 妓生이 아니고 한 退妓의 딸로서 閭閣살이를 하던 계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데는 많은 疑心을 갖게 하는 듯하다. 왜 그러냐 하면 後日 春香은 新官使道에게 招來를 當하여 無限한 受難을 겪게 되나, 암만 暴惡한 官長일지라도, 비록 賤身이지마는, 守節한다 하는 女子를 官廷에 招來하여 暴行한다 하는 것은 不自然한 일이 아닐가 하며, 또 從來 異本의 傾向이 보여주는 바와도 같이 春香의 節介에 對한 同情이 烈女春香을 單純한 賤妓所生의 不知其姓의 娼女로 버려두지 아니하고 비록 그 父이나마 兩班에 빌어와서 다시 操身하는 女子로 하였다는 것이 도리어 後來의 潤色이 아닐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本書를 敢히 春香傳의 原本이라고까지는 안 하겠지마는 적어도 現在 남은 春香傳 中에서는 그▶P97-1原本에 가까운 程度에 있는 것이 아닐가 생각한다. 그러면 이것이 以下 異本 硏究의 한 基準이 될까도 싶으니 다음에 簡單히 그 梗概를 써두고 硏究하려 한다.

경개, 화설. 인조 때에 남원 부사 이등(필자 차음)의 아들 이도령(필자 차음)이 있었다. 봄의 화창한 절기에 춘흥을 이기지 못하고 방자를 불러 남원 경개에 광한루가 좋다는 말을 듣고 포진시켜 방자를 데리고 천천히 걸어서 광한루에 올라 한참 경치를 감상하고 있노라니, 이때 춘향이가 의복을 곱게 단장하고 건너편에서 추천을 하고 있었다. 호탕한 이도령은 곧 그녀가 누구인지 방자에게 물었으나, 방자는 처음에는 이리저리 피하며 쉽게 알려주지 않더니, 나중에는 그녀가 본읍 기생 월매의 딸 춘향이라고 아뢴다. 이도령은 그녀가 기생인 줄 알고, 곧 방자를 시켜 광한루로 불러보게 하였다. 그 미모에 혹한 이도령은 백년가약을 청하였으나, 처음에는 춘향이가 비록 창기의 몸이나 남의 별실이 되지 않겠다는 것과, 또 일부종사하겠다는 뜻으로 거절한다. 그러나 이도령이 절대로 변하지 않겠다는 성의를 보이게 될 때, 춘향은 그 증거로 불망기를 써달라 하고 허락한다. 이로써 약혼이 성립되어, 광한루에서 잠시 작별하고 그날 밤에 이도령이 다시 춘향 집을 찾게 된다. 도령은 광한루에서 연려히 춘향을 집으로 보내고 책방으로 돌아와서 춘향을 보고 싶은 마음에 "보고지고"라고 외치다 사도께 꾸중을 듣는다. 이 책 저 책 되는 대로 읽다가 겨우 저녁 후에 사도의 퇴등을 기다려 몰래 빠져나와 춘향 집으로 향한다. 이때 춘향은 거문고를 타고 있는데, 방자가 먼저 들어가 춘향의 어머니를 부르니 춘향의 어머니가 나와 도령을 맞아 춘향의 방으로 안내한다. 춘향 또한 반겨 도령을 맞아들이고 담배와 술로 대접하며, 다시 권주가를 불러 즐기다가 그 밤을 둘이 같이 보냈다.
그다음은 곧 이별이었다. 도령의 부친이 사도에서 호조판서로 승진하여, 도령에게 내행을 모시고 먼저 상경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도령은 그 말을 듣고 춘향과 이별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터지는 듯하여 춘향의 집으로 찾아갔다. 춘향 또한 이별을 서러워하며 울었다. 두 사람은 서로 명경과 옥지환을 신물로 교환하고, 춘향은 도령에게 속히 입신양명한 후 다시 자신을 찾아달라고 애원하였다. 도령은 춘향에게 자신의 귀환을 기다리며 신의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뒤 이별하였다.
그 뒤 신관이 임명되었다. 신관은 본래 호색지인이라, 이미 신연하인이 현신했을 때 춘향에 대해 묻더니, 부임하자마자 곧 기생 점고를 하고 춘향의 이름이 그중에 없음을 노하여 사령을 시켜 춘향을 잡아오게 한다. 춘향은 처음에는 나오는 사령에게 술도 먹이고 돈도 주어 무사히 돌려보냈으나, 사령이 거푸 다시 나왔을 때는 부득이하여 관정에 나간다. 사도는 춘향에게 수청을 거행하라 명하지만, 춘향은 이를 굳이 거절하였다. 이에 사도는 드디어 태형을 집행하고, 춘향이 명령을 거행하지 않는다 하여 하옥한다. 이때 한량들이 와서 춘향을 옥으로 메어 나가고, 춘향의 어머니는 도리어 자기 딸이 이도령을 위해 수절하는 것을 설워한다. 이로부터 춘향은 옥중에서 몇 달을 보냈다. 하루는 꿈을 꾸는데, 방문 위에는 허수아비가 달리고 뜰에는 앵도꽃이 떨어지며, 모든 증경이 한복판이 깨어지는 꿈이었다. 마침 지나가던 허봉사를 불러 그 뜻을 묻자, 허봉사가 풀이하기를 "능성실이요, 경파하니 기무성가, 문상에 현재리 하니 만인이 개앙시라"고 해몽하며, 이는 이도령이 곧 급제하여 상봉할 조짐이라 장담하고 떠난다.
이도령은 상경 후 학업을 닦아 태평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자원 삼도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향발한다. 도중 농부와 주막 노인에게 춘향이 신관에 수청 들어 민폐 많다더니 참말이냐 묻다가, 도리어 절개를 지킨 춘향을 욕한다 하여 농부에게 욕을 당하고 남원에 도착하여 춘향 집을 찾으니, 춘향모는 도령인 줄 알아보지 못하고 걸인인가 김권농인가 의심하다가 나중에야 도령인 줄 알고 그 형색에 놀란다. 어사는 다시 물을 것도 없이 춘향모를 데리고 옥으로 춘향을 찾으니, 춘향이 날로 사모하던 도령을 만나 반기며 내일은 본관 생일이라 잔치 끝에 필경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니 내일 와서 칼머리나 들어달라 청한다. 어사는 걱정 말라 하고 물러나와 춘향 집에서 자고, 익일 관문 밖에 가서 탐문하니 과연 본관의 생일이었다. 어사는 기웃기웃하다가 틈을 타서 연석에 들어가 걸객으로서 술을 청하니, 본관은 싫어하였으나 운봉이 홀로 호의를 가지고 통인을 시켜 술도 갖다 주고 또 어사가 기생을 청하니 기생도 불러 권주가도 시켜준다. 그러자 큰 상이 들어오는데 바라보니 어사 앞에 놓인 상은 보잘것없으므로 들어엎어 버리고 어사 차운을 청해 "김준미주천인혈, 옥반가효만성배, 촉루락시민루락, 가성고처원성고"라는 시를 지어두고 나와 삼문에 암행어사 출도를 한다. 이에 연석은 급작히 수라장으로 변하였으나 어사는 곧 좌정하여 본관은 우선 봉고파출을 하고 옥중의 춘향을 잡아올려 속여 수청 들라 명하니, 춘향이 또 이에 거절한다. 그제야 어사는 칭찬하고 다른 기생으로 하여금 이로 그 칼을 뜯어 벗긴 후 춘향에게 낯을 들어 대상을 보라 명령한다. 춘향이 쳐다보니 그리고 그리던 낭군이라 좋아서 뛰어 올라가 붙잡고 우니, 어사가 이를 위로한다. 이때 그런 줄도 모르고 딸 주려 미음을 들고 오던 춘향모는 그제야 이 희소식을 듣고 무한히 반기며 어사는 대연을 열어 춘향과 즐긴 후 공사를 마치고 춘향 모녀를 데리고 상경하여 상께 그 연유를 주달하니, 상이 칭찬하여 춘향을 정렬부인으로 봉하셨다.

쪽수▶P97-2

梗槪, 話說 仁祖때에 南原 府使李等(筆者 借音)의 아들에 李靈(筆者 借音)이 있었다. 方春花節에 春興을 못 이기어 房子를 불러 南原景概에 廣寒樓가 좋단 말을 듣고 鋪陳시켜 房子 데리고 천천히 걸어서 廣寒樓에 올라 한참 景色을 자랑노라니 이때 春香이가 衣服 단장을 곱게 하고 건너便에 와서 鞦韆을 하고 있다. 豪蕩한 李道令은 곧 그가 누구인가 房子에게 물었으나 房子는 처음에는 이리 저리 避하면서 容易히 알으켜 주지 않더니 나중에는 그가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라 아뢴다. 李道令은 그가 妓生인줄 알고 곧 房子시켜 廣寒樓로 불러보고 그 美에 惑하여 百年佳約을 請하였으나 처음은 春香이가 비록 娼妓의 몸이나 남의 別室이 되지 않겠다는 것과 또 一夫從事하겠다는 뜻으로 拒絕을 한다. 그러나 李道令이 絶對로 變하지 않겠다는 誠意를 보이게 될 때 春香은 그 證據로 不忘記를 써달라 하고 許한다. 여기에 約婚은 成立이 되어 廣寒樓에서 暫時 作別하고 그날 밤에 李道令이 다시 春香 집을 찾게 되는데, 道令이 廣寒棲서 燃藜히 春香을 집으로 보내고 冊房에 돌아와서 春香을 보고 싶은 마음에 「보고지고」 라고 외처 使道께 꾸중을 듣고, 이 책 저 책 되는대로 읽다가 겨우 夕飯後 使道의 退燈을 기다려 몰래 빠져나와 春香집에 나온다. 이 때 春香은 거문고를 타고 있는데 房子 들어가 먼첨 春香 母를 부르니 春香母 나와 道令을 맞아 春香 房으로 案內한다. 春香 또한 반겨 道令을 맞아들여 담배며 술로 待接하고 다시 勸酒歌를 불러 즐기다가 그 밤을 둘이 같이 지냈다.
그 다음은 곧 離別이다. 使道 戶曹判書에 昇進하여 道令은 父親으로부터 內行을 뫼시고 먼저 上京하라는 命令을 받았다. 道令이 그 말을 듣고 春香을 離別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지는 듯하여 春香 집으로 春香을 찾으니 春香도 ▶P98설어하여 울며 서로 明鏡과 玉指環을 信物로 交換하고 春香은 道令에게 速히 立身揚名 後 다시 찾아 달라 哀願하고 道令은 春香에게 信을 지켜 自己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付託하고 離別한다.
그 뒤 新官이 任命되었다. 新官은 本是 好色之人이라 벌써 新延下人이 現身하였을때 春香을 묻더니 赴任하자 곧 妓生點考를 하고 春香의 이름이 그 中에 없음을 怒하여 使令시켜 春香을 잡아온다. 春香이 처음은 나오는 使令을 술도 멕이고 돈도 주어 無事히 돌려 보냈으나 달아 거퍼 나왔을 때는 不得已하여 官廷에 나가니 使道는 곳 守廳을 舉行하라 命한다. 그러나 春香은 굳이 拒絕하였으므로 使道는 드디어 笞刑을 執行하고 다시 命令을 舉行치 않는다 하여 下獄한다. 이때 閑良들이 와서 春香을 獄으로 메어 나가고 春香母는 도리어 自己의 딸이 李道令을 爲하여 守節을 하는 것을 설어한다. 이로부터 春香은 獄中에서 數 月을 보냈는데 하루는 꿈을 꾸니 방문 위에 허수애비 달리고 뜰에 櫻桃花 떨어지고 보든 證鏡이 한복판이 깨어지거늘 마침 지나가는 許봉사를 불러 물으니, 許봉사 花落하니 能成實이요 鏡破하니 豈無聲가 門上에 懸졔리 하니 萬人이 皆仰視라 解夢하여 李道令이 수이 及第하여 相逢할 占卦라 壯談하고 간다.
李道令은 上京 後 學業을 닦아 太平科에 壯元으로 及第하여 自願 三道御史가 되어 南原으로 向發한다. 途中 農夫와 酒幕 老人에게 春香이 新官에 守廳들어 民弊많다더니 참말이냐 묻다가 도리어 節介 春香을 辱한다하여 農夫에게 辱을 當하고 南原에 到當하여 春香 집을 찾으니 春香母, 道令인줄 알아보지 못하고 乞人인가 金勸農인가 疑心타가 나중에야 道令인줄 알고 그 形色을 놀랜다. 御史 다시 물을 것도 없이 春香母를 데리고 獄으로 春香을 찾으니 春香이 날로 思慕하던 道令을 만나 반기며 來日은 本官 生日이라 잔치 끝에 畢竟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니 來日 와서 칼머리▶P99-1나 들어달라 請한다. 御史 걱정마라 하고 물러나와 春香집에서 자고, 翌日 官門 밖에 가서 探問하니 果然 本官의 生日이라. 御史 기웃기웃하다가 틈을 타서 宴席에 들어가 乞客으로서 술을 請하니 本官은 싫어하였으나 雲峯이 홀로 好意를 가지고 通引시켜 술도 갖다주고 또 御史가 妓生을 請하니 妓生도 불러 勸酒歌도 시켜준다. 그리자 큰 床이 들어오는데 바라보니 御史 앞에 놓인 床은 보잘것 없으므로 들어엎어 버리고 御史 次韻을 請해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背,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라는 詩를 지어두고 나와 三門에 暗行御史出道를 한다. 이에 宴席은 急작히 修羅場으로 變하였으나 御史는 곧 坐定하여 本官은 于先 封庫罷出을 하고 獄中의 春香을 잡아올려 속여 守廳들라 命하니 春香이 또 이에도 拒絕한다. 그제야 御史 稱讚하고 다른 妓生으로 하여금 이로 그 칼을 뜯어벗긴 後 春香에게 낯을 들어 臺上을 보라 命令한다. 春香이 쳐다보니 그리고 그리던 郎君이라 좋아서 뛰어 올라가 붙잡고 우니 御史가 이를 慰勞한다. 이때에 그런 줄도 모르고 딸 주려 미염을 들고 오던 春香母는 그제야 이 喜消息을 듣고 無限히 반기며 御史는 大宴을 열어 春香과 즐긴 後 公事 마치고 春香 母女 데리고 上京하여 上께 그 緣由를 奏達하니 上이 稱讚하여 春香으로 貞烈夫人을 封하셨다.

이상은 본서의 간단한 경개가 되겠으나, 여기서 볼지라도 본 춘향전은 후세의 다른 춘향전과 많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이도령의 이름이 보통은 몽룡이라 불려왔으나, 여기서는 령으로 되어 있다. 이령이 어떻게 하여 이몽룡으로 변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하거니와, 이도령의 이름은 사실상 이 소설 전개에 있어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남원에 있을 때라든지 등과 전에는 아직 이도령으로 통하였고, 등과 후 어사에 제수되었을 때는 어사이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본서에서는 보통 고대소설의 체제로서 처음에 그 인물을 소개하기 위하여 그 아비는 모이고 그 이름은 모 운운이라 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다음은 춘향의 조연 인물로서 반드시 나오는 향단은 처음부터 나타나지 않았고, 춘향모의 활약도 매우 미미하여 다만 이도령이 첫날 밤 춘향 집을 찾아갔을 때 잠깐 도령을 맞아 춘향 방으로 인도하는 것과 춘향이 하옥될 때, 어사를 맞아 옥으로 인도하는 것, 그리고 어사가 곧 이도령인 줄 알고 반기는 때에 나타날 뿐이다. 또 춘향이라든지 춘향모의 성격을 볼지라도 이미 춘향은 기생인 만큼 그 행동에 있어 보통 기생과 기생모의 태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첫째 광한루에서 이도령이 부를 때 춘향은 흔쾌히 가서 마음을 허하였고, 돌아와 그날 밤 집으로 이도령이 찾아왔을 때도 역시 기생과 기생모로서 귀공자 도령을 맞았으며, 이별하는 장면에서도 춘향은 잠깐 지나가는 남자를 만났으니 으레 이별이 있을 줄 각오한 듯, 이도령이 상경을 고하자 곧 후일 다시 찾아달라 기약하고 훌훌히 보냈다. 그러므로 춘향의 춘향다운 점은 이별 후의 태도, 즉 관장의 억압에도 한 번 언약한 사람을 위하여 그 절개를 굽히지 않는 데에 있다 할 것이다. 또한 여기가 후세 사람들의 찬양을 받는 점이 되었을 줄 믿는다.
쪽수▶P99-2以上은 本書의 簡單한 梗槪가 되겠으나 여기서 볼지라도 本 春香傳은 後世의 다른 春香傳과 많은 異點을 發見할 수 있다. 첫째는 李道令의 이름이 普通은 夢龍이라 불려왔으나 여기서는 靈(령)으로 되어 있다. 李靈이 어떻게 하여 李夢龍으로 變하였는가 하는데 對하여는 뒤에서 다시 생각하여 보고자하거니와 李道令의 이름은 事實上 이 小說 展開에 있어서 그다지 必要하질 않았다. 南原 在留 時代라던지 登科 前에는 아직 李道令으로 通하였고, 登科 後 御史에 除授되었을 때는 御史이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本書에 있어서는 普通 古代小說의 體로서 처음에 그 人物을 紹介하기 爲하 ▶P100-1여 其父는 某요 그名은 某 云云이라 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다음은 春香의 助演 人物로서 반드시 나오는 香丹은 처음부터 나타나지 않았고 春香母의 活躍도 매우 微微하여 다만 李道令이 첫날밤에 春香집을 찾아갔을 때 暫間 道令을 맞아 春香 房에 引遵하는 것과 春香이 下獄될 때와 御史 맞아 獄으로 引遵하는 것과 御史가 곧 李道令인줄 알고 반기는 때에 나타날 뿐이다. 또 春香이라던지 春香母의 爲人을 볼지라도 벌서 春香은 妓生인 만큼 그 行動에 있어 普通妓生과 妓生母의 態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첫째 廣寒樓에서 李道令이 부를 때에 春香은 欣欣이 가서 마음을 許하였고, 돌아 와서 그날 밤에 집으로 李道令이 찾았을 때도 亦是 妓生과 妓生母로서 貴公子 道令을 맞았고, 離別하는 그 場面에서도 春香은 暫間 지나가는 男子를 만났으니 으레히 離別이 있을 줄 覺悟한 듯이 李道令이 上京을 告하자 곧 後日 다시 찾아달라 期約하고 훌훌이 보냈다. 그럼으로 春香의 春香인 바는 離別 後의 그 態度 即 官長의 抑制에도 한번 言約한 사람을 爲하여 그 節介을 굽히지 않는 데에 있다 할 것이다 또 여기가 後世 사람의 讚揚을 받는 點이 되었을 줄 믿는다.
그리고 또 본서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스토리를 위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보통 춘향전에서 보이는 가곡적인 방면은 거의 생략되었다. 이를테면 십장가라든지 상사곡 같은 것은 없었고, 또 춘향전의 특색으로 흔히 나오는 천자풀이라든지 기생 점고의 영창식 호명 같은 것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만큼 여기에는 억지스러움이 없었다. 대체로 춘향전의 결점을 든다면, 공연히 말을 다듬기 위하여 사실을 굽히고 모순을 스스로 만드는 폐단이 있다 할 수 있으나, 본서에서는 말보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그러한 폐단을 자연히 제거할 수 있어 사건을 퍽이나 순조롭게 전개해 나갔다. 이 점은 확실히 본서의 특장이라 볼 수 있는 동시에, 본서를 소설로서 가치 있게 만드는 요인이 될 줄 믿는다.
쪽수▶P100-2그리고 또 本書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스토리를 爲主로 한 小說이기 때문에 普通春香傳에서 보이는 歌曲的 方面은 거의 省略되었으니 이를 터이면 十杖歌라든지 相思歌같은 것은 없었고, 또 春香傳의 特色으로 흔히 나오는 千字풀이라든지 妓生點考의 詠唱式의 呼名같은 것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만큼 여기에 無理가 없었다. 大體로 春香傳의 缺點을 든다 한다면 空然히 말을 다듬기 爲하여 事實을 굽히고 矛盾을 저절로 만드는 弊가 없다할 수 없으나 本書에서는 그 말에 보다 그 事實에 爲主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弊를 自然 滅할 수 있어 퍽이나 順調로히 事件을 展開하여 나갔다. 이 點은 確實히 本書의 特長이라 볼 수 있는 同時에 또 本書를 小說로서 價値 있게 하는 것이 될 줄 믿는다.





































본문3: 二. 烈女春香守節歌(完版本春香傳)


본서는 완판본인데, 그 판목은 아직도 전주 다가서관에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간기가 없어, 불행히도 그 판각 연대를 상고할 수 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경판본과 더불어 현재 남아 있는 귀중한 텍스트일 뿐 아니라, 경판본이 스토리를 위주로 한 춘향전이라면, 본서는 가곡을 위주로 한 춘향전이 되어 가히 쌍벽이라 이를 만하다. 판의 체재는 상하 11권으로 분권되어 있으며, 폭은 약 17cm, 길이는 18cm에서 25cm에 이르고, 한 행에 18자에서 30자를 담았으며, 각 쪽은 13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이 45장, 하권이 39장으로 완성되어 있어 경판본과 비교하면 상당히 그 내용이 풍부해졌다. 그러면 다음으로 먼저 그 플롯의 전개를 경판본과 비교하며, 다른 이본들과도 관계가 있으므로 다소 상세히 논하고자 한다.
쪽수▶P101-1本書는 完版本인데 그 版木은 아직도 全州 多佳書舘에 保藏되어 있을 것이나 이것도 亦是 刊記가 없어서 不幸히 그 版刻 年代는 相考할 수 없다. 그러나 먼저의 京版本과 아울러 現在 版本으로서 남은 貴重한 텍스트일 뿐 아니라, 京版本이 스토리를 爲主로 한 春香傳인데 對하여 本書는 歌曲 爲主로 한 春香傳이 되어 可히 雙璧이라고 이를만한 것이다. 版의 體裁는 上下 11卷에 分卷되어 積이 約 17糎, 縱이 18糎 乃至 25糎, 一行 18字 乃至 3字, 每 頁 13行에 上卷이 45張, 下卷이 39張으로 完了되어 京版本에 比하면 相當히 그 內容이 豊富하여졌다. 그러면 다음에 먼저 그 풀로트의 展開를 京版本과 比較하여 가면서 다른 異本과도 關係가 있으니까 多少 詳細히 論述하고자 한다.
우선 본서의 시작은 경판본이 인조조 때 운운으로 시작한 것과 달리, 숙종대왕 즉위 초로 시작된다. 또 경판본에서는 먼저 이도령이 등장하여 광한루에 오르고 그곳에서 춘향을 처음 만나는 장면이 나오지만, 본서에서는 춘향의 인물 소개가 먼저 등장한다. 원래 춘향은 퇴기 월매가 성참판과 함께 지내면서 나이가 사십이 가까워지도록 자식이 없는 것을 한탄하여, 남편과 의논하고 지리산에 가서 빌며 길몽을 얻었다. 그 길몽의 내용은, 한 선녀가 청학을 타고 와 계화 한 가지를 들고 집으로 들어와 절하며 말하기를 "낙포의 딸이었는데 반도를 올리러 옥경에 갔다 광한전에서 적송자를 만나 정회를 다하지 못한 차에 시만(時晩)이 죄가 되어 상제 대노하셔 진퇴(塵堆)에 내쳤는데, 두류산 신령께서 부인 집을 지시(指示)하기로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라고 하며 품에 안겼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다른 이본에서는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앞으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도령의 이름이 본서에서는 몽룡으로 되어 있다. 경판본에서는 이름이 '령'으로 되어 있는데, 어째서 '몽룡'으로 바뀌었는가? 다소 부차적이지만, 이를 한 번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본서에서는 이도령의 이름을 몽룡이라 한 이유를 암시하는 대목이 있는데, 방자가 춘향의 집에 갔을 때 춘향모가 한 말이다. "꿈이라 하는 것은 아무런 허황된 일이 아니로다. 간밤 꿈에 난데없는 청룡 하나가 벽도지에 잠겨 보이거늘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 이렇게 우연히 일 아니로다. 또한 들으니 사도 댁 자제 도련님 이름이 몽룡이라 하니 꿈 몽(夢) 자 용 룡(龍) 자가 신통하게 맞았다. 그러나 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 갈 수 있겠느냐 잠깐 가서 다녀오거라" 고 하였다. 고대 소설에서는 일상적인 사건을 운명적으로 결정짓고, 이를 예언적으로 이끄는 매개체로 '꿈'을 자주 사용했다. 춘향과 이도령의 인연 역시, 이러한 운명적인 요소 없이는 설명되지 않으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춘향모의 꿈이었다. 이 점에서, 이도령의 이름이 '몽룡'이라는 다소 비범한 이름으로 바뀌어 사건을 자연스럽고 신비롭게 전개시키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도령은 아버지의 교훈을 듣고 나귀를 타고 광한루에 올라가 춘향이 그네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방자를 시켜 부르게 한다. 춘향은 그때 시중들 수 없는 때라며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이도령은 다시 방자를 보내 광한루로 춘향을 불러내 약혼을 청한다. 그러나 춘향은 그 자리에서 승낙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결국 약혼은 그날 밤, 이도령이 춘향의 집을 찾아가 춘향모의 허락을 받아 이루어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춘향이 어디까지나 기생의 행동이 아닌, 여염집 여인의 모습으로 이도령과 결합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경판본에서는 춘향이 혼자 광한루에 와서 그네를 타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본서에서는 춘향이 시비인 향단을 데리고 왔으며, 이후 내내 향단이 춘향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쪽수▶P101-2于先 開卷始初에 京版本은 話說 仁祖朝때 云々으로 筆起하였으나 本書에서는 肅宗大王 即位初로 始作되어있고, 다시 京版本에서는 먼저 李道令이 나와서 廣寒樓에 오를 때에 그 앞에 春香이가 나타났으나 여기에는 먼저 春香의 人物 紹介가 나왔는데, 元來 春香은 退妓 月梅가 成參判과 지내면서 近四旬에 그 血肉이 없음을 恨嘆하여 家君과 議論하고 智異山에 빌어 吉夢을 얻고 나왔다. 그 吉夢이란 것은 一位 仙女가 靑鶴을 타고와서 桂花 一枝를 들고 堂에 올라 舉手長揖하고 하는 말이 「洛浦의 딸일러니 蟠桃進上 玉京갔다. 廣寒殿에서 赤松子를 만나 未盡情懷하올차에 時晩함이 罪가되어 上帝 大怒하사 塵堆에 내치심애 갈바를 몰랐더니 頭流山神靈께서 夫人宅으로 指示하기로 왔아오니 어▶P102여삐 여기소서」하며 품 안으로 들었다는 것인데, 이것이 다른 異本에 가서는 어떻게 變하는가 하는 것은 앞으로 注意할 일이다. 그리고 李道令은 이름을 夢龍이라 하였다. 이로부터 李道令의 이름은 夢龍이라 될 感이 있으나, 京版本에는 靈으로 되어있는데 어째서 夢龍으로 되었을까. 蛇足이 될 지 모르나 한번 생각하여 보건대 平書에 있어 李道令의 命을 받아 房子가 春香집을 갔을때 春香母의 말에 「꿈이라 하는 것은 전수이 虛事가 아니로다. 간밤에 꿈을 꾸니 난대없는 靑龍하나 碧桃池에 잠겨보이거늘 무슨 좋은 일이 있을가 하였더니 우연한 일이 아니로다. 또한 들으니 使道子弟 道令님 일홈이 夢龍이라 하니 꿈夢字 용龍宇 神通하게 마지었다. 그러나 저러나 兩班이 부르시는데 아니갈수 있것나나 잠간 가서 다녀오너라」 한 것이 있다. 即 古代小說에 있어 日常 事件을 運命的으로 決定하며, 또 이를 豫言的으로 引導하는 것은 「꿈」이라 할 수 있는데, 春香과 李道令의 因緣이란 것도 또한 거기에 무슨 先天的으로 運命的인 것이 없으면 안 될 것이요, 그것을 具現하는 것은 곧 먼저의 春香母의 꿈이 될 것이니까, 여기에 李道令의 夢龍이란 이름은 事件을 自然스러히 또 神秘로히 展開하는데 가장 必要한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李道令의 이름을 夢龍이라는 尋常치 않은 이름에 變更되어 以後 變함이 없는 듯이 생각되나, 이 李道令 夢龍은 父教를 얻어서 나귀를 타고 廣寒穰에 가서 春香을 먼 눈으로 鞦韆하는 것을 보고 房子시켜 불렀다. 그럴 때에 春香은 時仕가 아님을 稱託하고 집으로 돌아갔으므로 다시 房子를 그 집으로 보내서 廣寒棲로 불러다가 約婚을 請하였다. 그러나 春香은 그 자리에서 許하지 아니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정말 約婚은 그날밤에 李道令이 春香집을 찾아서 春香母의 許諾으로 된 것이다. 여기에 春香은 어디까지 妓生의 行動이 아니고 閻閻찜 行身하는 女子의 몸으로서 李道令과 結合이 되었음을 注意할 것이고, 또 京版本에는 春香이 廣寒樓 앞에 와서 襲을 鞦韆을 하는데 혼자 와서 한 듯이 되어 있지마는 本書에는 香丹▶P103-1이라는 侍婢를 데리고 왔었으며, 以後 내내 香丹은 春香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도 注意을 要할 것인줄 믿는다.
다음으로 춘향과 이도령의 교정 장면에 들어가면 대체적으로 그 플롯에는 큰 변동이 없었으나, 사도의 퇴등을 기다리며 독서하던 중 춘향전 일류의 천자풀이가 나온다. 이도령의 "보고지고"라는 외침에 놀란 사도가 도령이 주공을 보고자 한다는 대답을 듣고 도리어 감격하여 책월의 육랑정을 불러 자기 아들이라 칭찬하는 말이 나온다. 또한, 첫날 밤 춘향 집에 갔을 때 춘향은 결코 기생의 몸으로서 이도령을 맞이하지 않고 끝까지 은근한 태도를 유지했으며, 춘향모 역시 비록 전날 기생이었으나 교양 있는 여인으로서 춘향과 이도령, 춘향모 세 사람이 함께 자리에 앉아 춘향모의 승낙을 기다린 끝에 두 사람의 혼약이 성립되었다. 두 사람의 정이 점차 깊어감에 따라, 그 사랑의 감정을 많은 사랑가로 표현하였다. 그러다가 청천벽력 같은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데, 본서에서는 사도가 동부승지로 승진되었고, 이도령은 춘향을 두고 떠나야 하는 상황에 애타는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춘향의 말을 청했으나 꾸중만 들었다고 한다. 춘향은 물론 기쁘게 이별하지 않았으며, 춘향모도 또한 그 이별을 쉽게 허락하지 않고 이도령에게 춘향을 데려가라고 강하게 요구하였다. 이도령은 이렇게 되니 할 수 없어 춘향을 신주 모시는 가마에 태워서라도 남몰래 데려가겠다고 말하자, 이 말에 춘향도 도리어 이도령의 처지에 동정하여 결국 이별하는 수밖에 없다며 눈물로서 이별하며 떨어지지 못하다가, 뒤따라온 사령이 나와 행차를 재촉할 때에야 겨우 마지막 잔을 나누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면경과 옥지환 같은 신물을 교환하지 않았다.
쪽수▶P103-2 다음 春香과 李道令의 交情場面에 들어가서는 大體에 있어 그 플로트에 變動이 없었으나 使道의 退燈을 기다리면서 讀書하는 끝에 春香傳 一流의 千字풀이가 나오고 李道令의 「보고지고」란 소리에 놀랜 使道가 道令의 周公을 보고자한다는 對答에 도리어 感激하여 冊月의 陸郞廳을 불러 我子를 稱〿하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첫날밤 春香 집에 갔을 때는 春香은 決코 妓生의 몸으로서 道令을 맞이하지 않고 끝까지 은근한 態度를 가졌었으며 春香母도 비록 前日의 妓生이였으나 亦是 敎養있는 女子로서 나와서 春香, 李道令, 春香母 三人이 鼎坐하여 結局 春香母의 承諾을 기다려 兩人의 婚約이 成立되었는데 兩人의 情이 漸々 깊어감에 딸 그 사랑의 情을 많은 사랑歌로서 나타내었다. 그리다가 青天霹靂으로 離別이 되는메, 本書에서는 使道가 同副承旨로 陞差하였고, 李道令은 春香을 두고 감이 애가 타서 그 母親에게 春香의 말을 請하다가 꾸중만 들었다 하였다. 그리고 春香 勿論 欣々히 離別 하지 않았으며 春香母도 또한 그 離別을 容易히 應諾하지 않고 道令에게 데려가라 肉迫하였다. 李道令도 이렇게 되니 할 수 없어 그러면 春香을 神主 모시는 腰輿에 태워서라도 남몰래 데려가겠다 하니 이 한 말에 春香도 도리어 李道令의 形便에 同情 하여 그러면 離別하는 수밖에 할 일 없다하여 눈물로서 離別하며 떨어지지 못하다가 後陪 使令이 나와 行次를 재촉할 때에야 겨우 마지막 一盃酒로 나누었는데, 서로 面鏡과 玉指環의 信物은 바꾸지 않았다.
그 후 곧 신관 사도가 부임한 것은 경판본과 다름이 없으나, 그 이름은 자핫골 사는 변학도로 되어 있고, 와서 기생 점고를 하는데 여기서는 그 호명이 바로 시구 영창식이었다. 춘향을 잡으러 오는 데는 처음에 사령들이 와서 춘향에게 술도 얻어먹고 돈도 얻어가지고 흐느적 흐느적 돌아갈 때, 행수 기생이 뒤쫓아 나와 춘향을 데리고 갔었다. 그리하여 춘향이 동헌에 나타났을 때 한 번 보고 즐기는 사도는 회계 생원을 불러다가 서로 농담을 하며 춘향에게 절개를 굽히라며 강요한다. 결국 듣지 않으니 태장을 집행하려 하는데, 첫낫 두낫을 맞으면서 춘향은 소위 "십장가"로 화답하였다. 그다음 춘향이 하옥되지만, 여기서는 한량이 보이지 않았고 기생들이 나와 동정하였으며, 춘향모는 춘향의 목을 안고 울다가 이러한 사유로 서울에 급히 달려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춘향의 만류로 실현되었는지 여부가 불분명하고, 춘향은 옥중에서 '장모가'를 부르며 울다가 잠들었다. 꿈에서 황릉묘에 찾아가 상군부인 이하 역대의 여중 호걸들을 차례로 만나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다음 옥창 밖의 앵도꽃이 떨어지고 운운의 꿈을 꾸어 장님에게 물어 점을 쳐서 해몽을 얻는 것은 경판본과 같으나, 장님의 성은 허씨가 아니고 다만 봉사 하나로만 되어 있으며, 해몽 끝에 마침 까마귀가 옥 담에 와서 까옥까옥 울자 장님이 따라 이 소리를 '가옥가옥(嘉屋嘉屋)'이라 해석하였다.
쪽수▶P103-3그 後 곧 新官使道가 赴任한 것은 京版本과 다름이 없으나 그 이름은 자핫골 사는 卞學道로 되어있고 와서 妓生點考를 하는데 여기서는 그 呼名이 바로 詩句詠唱式이었으며, 春香을 잡으러 오는 데는 처음에 使令들이 와서 春香에게 술도 얻어먹고 돈도 얻어가지고 흐늘흐늘 들어갈 때에 行首妓生이 뒤쫓아 나와 春香을 데리고 갔었다. 그리하여 春香▶P104-1이 東軒에 나타났을 때 한번 보고 즐기는 使道는 會計生員을 불러다가 서로 弄談을 하며 또 春香에 節介를 굽히라 우겨댄다. 結局 듣지 않으니 笞杖 執行을 할 것이나 한낫 두낫 맞는데 春香은 所謂 十杖歌로서 和答하였다. 그 다음은 春香이 下獄될 것이나 여기는 閑良이 보이지 않았고 妓生들이 나와서 同情하였으며, 또 春香母는 春香의 목을 안고 울다가 이런 事由로 서울에 急走내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春香의 挽留로 實行하든 안 하였으나, 春香은 獄中에서 長嗼歌로 울었으며, 울다가 잠들어서는 黃陵廟에 찾아 가서 湘君夫人以下 歷代의 女中豪傑을 낯낯이 맞나 많은 慰勞와 激勵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 다음 獄窓 櫻桃花가 떨어지고 云々의 꿈을 꿔서 장님에게 問卜하여 解夢을 얻는 것은 京版本과 같으나 장님의 姓은 許氏가 아니고 다만 봉사 하나로 되어 있고 또 解夢 끝에 마침 까마귀가 獄 담에 와서 까옥까옥 하니 장님은 달아 이것을 嘉屋嘉屋이라 풀었다.
이도령의 암행어사는 경판본과 같이 자원하여 된 것이 아니고, 특별히 전하의 제수한 것으로 되었으며 남원을 향해 출발한 그는 도중에 농부에게 곤욕을 당하고, 본서에서는 도중에 춘향의 편지를 가지고 상경하는 한 아이를 만난다. 그리하여 어사는 그 아이를 꾀어 편지를 개봉하고 보고 울다가 그 아이더러 이도령은 나와 죽마고우인데 이번에 함께 하경하여 그는 완영에 들어가 있으니 내일 남원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으니 나를 따라오면 그 양반을 만날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듣지 않고 어사에게 달려들어 편지를 뺏으려다가 어사의 허리에 차고 있던 마패를 만지고 놀란다. 어사는 그 아이에게 만일 천기누설하면 생명을 보존하지 못하리라 울려 입을 막아 놓고 남원으로 들어갔다. 어사는 뜻깊은 오작교를 지나며 다리 아래에서 여자들이 빨래를 하며 춘향을 동정하는 공론을 듣고 춘향의 집을 찾았을 때는 춘향모는 정화수를 떠놓고 李道令이 과거에 급제하길 빌고 있을 때다. 어사는 매우 그 정성에 감동했으나, 처음 춘향모가 어사의 걸인 행색을 보고 깜짝 놀랐을 때는 어사는 상경한 그 후 관로가 끊기고 가산은 탕진되어 부친은 학장으로 나가고, 모친은 친가로 가버려 자신은 할 수 없이 춘향을 찾아왔다고 속였다. 춘향모는 그 말을 진짜로 믿고 낙담하여 어사를 박대한다. 그럴수록 어사는 지긋지긋하게 밥을 달라며 보채니, 춘향모의 박대는 더욱 심해졌다. 그럴 때 향단이가 나와 어사를 극진히 대접하고 춘향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니, 어사가 향단을 달래며 춘향모를 재촉하여 향단에게 등불을 들려 옥으로 가 춘향을 만나는데 이때 춘향은 李道令이 머리에 금관을 쓰고 몸에 홍삼을 입고 온 꿈을 꾸었다. 그 다음은 대체로 京版本과 다르지 않았으나, 옥에서 춘향이 어사를 만났을 때 그의 행색을 보고 도리어 동정하여 춘향모에게 어사를 좋게 대접하라고 권하였다. 어사는 옥에서 물러나와 문 안 문 밖 탐문하고 춘향집에 돌아가 그 밤을 새웠다. 그리고 본관 생일 연회에서 부른 어사의 차운은 어사가 자청하여 한 것이 아니라, 운봉이 먼저 운을 불러 어사가 화답한 것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에는 춘향이 정렬부인으로 봉해졌다는 사실과 함께 이도령은 영상까지 지냈고, 춘향에게는 3남 2녀가 있어 모두 총명하여 직책에 올랐으며, 만세에 걸쳐 명성을 전했다는 내용을 덧붙이며 이야기를 마친다.
쪽수▶P104-2李道令의 暗行御史는 京版本과 같이 自願하여 된 것이 아니고 特히 殿下의 除授한 것으로 되었으며 南原을 向發하여 途中에서 農夫에게 困辱을 받고는, 本書에서는 路上에 春香의 편지를 가지고 上京하는 아해를 만난다.그리하여 御史는 그 아해를 어 편지를 開封하여 보고 울다가 그 아해더러 李道令은 나와 竹馬交友인데 이번에 같이 下卿하여 그는 完營에 들어 來日 南原서 만나자고 約束을 하였으니 나를 따라오면 그 兩班을 만날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아해 듣지않고 御史에 달려들어 편지를 빼앗으려 하다가 御史 허리에 찼던 馬牌를 만지고 놀랜다. 이에 御史 그 아해에 萬一 天機漏說하면 生命을 保全치 못하리라 울려 그 입을 막아 놓고 南原으로 들어왔다 마침 뜻 깊은 烏鵲橋를 지나다가 다리 밑에서 女人들이 빨래를 하며 春香을 同情하는 公論을 두고 春香집을 찾았을 때는 春香母는 精華水를 떠 놓고 李道令이 科擧에 及第하라 빌고 있을 때다. 御史 매우 그 精誠에 感動하였으나 처음春香母가 御史의 乞人形▶P105-1色을 보고 깜작 놀랐을 때는上京한 그後 宦路는 끊어지고 家産은 蕩盡하여 父親은 학장으로 나가고 母親은 親家로 가서 自己는 할 수 없어 春香을 찾아왔다 속였다. 그랬더니 春香母는 정말 그런 줄 알고 落憺 끝에 御史를 薄待한다. 그럴수록 御史는 지긋지긋 달라불어 밥을 달라 보채니 春香母 더욱 薄待가 甚하여 갔으나 그럴 때에 香丹이가 나와 御史를 極盡히 待接하고 春香을 생각하여 또한 우니 御史가 달래어 春香母를 재촉하여 香丹에게 燈 들려 獄으로 가서 春香을 만나는데 이때 春香은 李道令이 머리에 金冠을 쓰고 몸에 紅衫을 입고 온 꿈을 꾸었다. 그 다음은 大證로 京版本과 別다름이 없었으나 獄에서 春香이가 御史를 만났을 때 그 行色을 보고 도리어 同情하여 그 母에게 좋이 待接하라 勸하였고, 御史는 獄으로 물러나와 門안 門밖 廉內을 마치고 春香집에 돌아가 그 밤을 새웠다. 그리고 本官 生日宴에 들어가 부른 御史의 次韻은 御史가 自請하여 한 것이 아니고 雲峯의 呼韻한 것으로 되어있으며, 最後에는 春香으로 貞烈夫人을 封하였다는 그 뒤 消息에 다시 李道令은 領相까지 지내고 春香에겐 3男 2女를두어 皆々히 聰明하여 모두 職居一品으로 萬世에 遺傳하였다는 것도 添附하여 끝을 마쳤다.
이상은 그 플롯의 전개를 경판본과 비교하여 설명하였으나, 여기서만 보아도 춘향전은 상당한 거리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춘향은 인물로서 이미 기생에서 여염집 처녀로 변모하였고, 이도령은 이름을 몽룡이라 개명하였다. 또 춘향에게는 향단이라는 시녀가 가까운 곳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도령은 책방에서 광한루로 소풍을 나가려 할 때 부친의 교훈을 물었고, 춘향은 그 어머니의 허락으로 이도령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춘향의 어머니는 이도령이 과거에 급제하기를 기원하며 단을 모아놓고 축원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어사가 남원을 향해 오는 도중 춘향의 편지를 받았다는 등, 플롯 자체가 상당히 발전했을 뿐 아니라 춘향이라는 인물 자체에도 큰 변화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녀가 기생이 아니었다는 점도 그것이지만, 처음 인물 소개에서 "효행(孝行)이 무쌍(無雙)하고 인자함(仁慈)이 기린(麒麟) 같으며, 일곱여덟 살이 되매 서책(書冊)에 흥미를 느껴 예의(禮儀)와 절개(貞節)를 실천하니"라는 바와 같이 퍽 유식하고 행실이 독실하여 조금도 야비한 점이 없었다. 또한 춘향의 어머니 역시 그러한 딸의 어머니답게 교양(敎養) 있는 부인이라 할 수 있었다.
쪽수▶P105-2以上은 그 플로트의 展開를 京版本과 對比하여 說來하였으나 여기서만도 春春傳은 相當한 距里에 飛蹟發展하였다 볼 수 있다. 即 春香은 人物로서 벌써 妓生에서 閭閻집 處子로 變裝하였고, 李道令은 이름을 夢龍이라 改名하였으며 또 春香에게는 香丹이라는 侍女가 近側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李道令은 冊房에서 廣寒樓로 消風을 나가려 할 때 父敎를 물었고 春香은 그 母의 許諾으로 李道令과 結緣하였으며, 春香毋는 李道令이 科擧에 及第하라고 壇을 모아놓고 祝願하였다. 이 外에도 御史가 南原을 오는 途中에서 春香의 편지를 받았다는 等 相當히 그 플로트로서 發展을뿐 아니라 春香 그 自體의 人物에도 큰 變化를 볼 수 있었으니 그 몸이 妓生이 아니었던 것도 그것이지마는 처음 그 人物 ▶P106-1紹介에「孝行이 無雙이요 仁慈함이 麒麟이라 七八歲되매 書冊에 着味하여 禮貌貞節을 일삼으니」云々한 바와 같이 퍽이나 有識한 데다가 行實이 篤實하여 조그만치도 野卑한 點이 없었다. 또 春香母도 亦是 그러한 딸의 어머니인 만큼 敎養있는 婦人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서는 그 문체에 있어 역시 많은 진보를 볼 수 있다. 소위 춘향전다운 찬란한 문채란 것은 여기 와서 대성한 듯한 느낌이 있으니 먼저 그 몇 句節을 다음에 引用하여 보겠다.

향단아 밀어라. 한번굴러 심을주며 두번굴러 심을주니 발밑에 가는 따걸 바람조차 펄펄, 앞뒤점점 멀어가니 머리우에 나무입은 몸을딸아 흐늘흐늘, 오고갈제 살펴보니 녹음속에 홍상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구만장천 백운간에 번개불이 쐬이난듯 섬지재전 홀은후라, 앞에얼른 하는양은 가부야운 저 제비가 도화일점 떨어질 차려하고 쫓이는듯, 뒤로번듯 하는양은 광풍에 놀랜호접 짝을일코 가다가 돌치는듯, 무산선녀 구름하고 양대상에 나리는듯 ─(춘향의 추즐하는 장면)─
춘향의 모 기가막혀
'여보 도령님, 남우 생때같은 자식을 이경경이 웬일이요. 절곡한 우리춘향 애통하여 축거드면 자자단신 이내 신세 뉘를믿고 사잔말고'
도련님 어이없어
'여바라 춘향아, 네가 이게 웬일이냐. 나를영영 안보랴냐. 한양낙일수운기는 소통국의 모자이별, 정객관산로 ▶P107-1기중에 오희월녀 부부이별, 편삽래자소일인 용산의 형제이별, 서리양관무고인은 위성의 붕우이별, 그런이별 만하여도 소식을 들을 때가있고, 생이할 날이 있었으니 내가 이제 올라가서 장원급제 출신하여 너를다려갈것 이니 우지말고 잘있거라. 우름을 너머 울면 눈도붓고 목도쉬고 골머리도 아푸니라. 돌기라도 망두석은 천만년이 지내가도 광석될줄 몰라있고, 나무라도 상사목은 창밖에 우뚝서서 일년춘절 다지내되 입이필줄 몰타있고, 병이라도 회심병은 오매불망 죽나니라. 네가 나를 보려거든 설워말고 잘있거라'
존향이 할길없어
'여보 도령님, 내손에 술이나 망종 잡수시요. 행찬업시 가실진댄 내의찬합 갈맛다가 숙소참 잘자리에 날본다시 잡수시요. 향단아 찬합 술병 내오너라' ─(춘향과 이도령의 이별장면)─
이내죄가 무삼죄냐. 국각투식 아니거던 엄형중장 무삼일고, 살인죄인 아니여든 항쇄족쇄 웬일이며, 역률망상 아니여든 사지결박 웬일이며 음양도적 아니여든 이형벌이 웬일인고, 이망수는 연수되야 청천일장지에 내의설음 원정지여 옥황전에 올이고저, 낭군길워 가슴답답 불이붙네, 한숨이 바람되야 불난불을 더부치니 속절업시 나죽겠네. ─(춘향이 옥중에서 장탄하는 장면)─

쪽수▶P106-2그리고 本書는 그 文體에 있어 亦是 많은 進步를 볼 수 있다. 所謂 春香傳다운 燦爛한 文彩란 것은 여기 와서 大成한듯한 느낌이 있으니 먼저 그 몇 句節을 다음에 引用하여 보겠다.

香丹아 밀어라. 한번굴러 심을주며 두번굴러 심을주니 발밑에 가는 따걸 바람조차 펄펄, 앞뒤점점 멀어가니 머리우에 나무입은 몸을딸아 흐늘흐늘, 오고갈제 살펴보니 綠陰속에 紅裳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九萬長天 白雲間에 번개불이 쐬이난듯 瞻之在前 忽隱後라, 앞에얼른 하는양은 가부야운 저 제비가 桃花일점 떨어질 차려하고 쫓이는듯, 뒤로번듯 하는양은 狂風에 놀랜蝴蝶 짝을일코 가다가 돌치는듯, 巫山仙女 구름하고 陽臺上에 나리는듯 ─(春香의 楸輟하는 場面)─
춘향의 모 기가막혀
『여보 道令님, 남우 생때같은 子息을 이境境이 웬일이요. 節曲한 우리春香 哀痛하여 축거드면 子々單身 이내 身勢 뉘를믿고 사잔말고』
도련님 어이없어
『여바라 春香아, 네가 이게 웬일이냐. 나를永々 안보랴냐. 한양낙일수운기는 蘇通國의 母子離別, 征客關山路 ▶P107-1幾重에 吳姬越女 夫婦離別, 編揷萊茨少一人 龍山의 兄弟離別, 西里陽關無故人은 渭城의 朋友離別, 그런離別 만하여도 消息들을 때가있고, 生而할 날이 있었으니 내가 이제 올라가서 壯元及第 出身하여 너를다려갈것 이니 우지말고 잘있거라. 우름을 너머 울면 눈도붓고 목도쉬고 골머리도 아푸니라. 돌기라도 망두石은 千萬年이 지내가도 광석될줄 몰라있고, 나무라도 相思木은 窓밖에 우뚝서서 一年春節 다지내되 입이필줄 몰타있고, 病이라도 懷心病은 寤寐不忘 죽나니라. 네가 나를 보려거든 설워말고 잘있거라』
存香이 할길없어
『여보 道令님, 내손에 술이나 망종 잡수시요. 行撰업시 가실진댄 내의饌盒 갈맛다가 宿所참 잘자리에 날본다시 잡수시요. 香丹아 饌盒 술瓶 내오너라』 ─(春香과 李道令의 離別場面)─
이내罪가 무삼罪냐. 國殼偷食 아니거던 嚴刑重杖 무삼일고, 殺人罪人 아니여든 項鎖足鎖 웬일이며, 逆律網傷 아니여든 四肢結縛 웬일이며 陰陽盜賊 아니여든 이刑罰이 웬일인고, 二網水는 硯水되야 青天一張紙에 내의설음 原情지여 玉皇前에 올이고저, 朗君길워 가슴답々 불이붙네, 한숨이 바람되야 불난불을 더부치니 속절업시 나죽겠네. ─(春香이 獄中에서 長嘆하는 場面)─

이와 같이 본서의 문체는 사사조의 운문체로 되어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그 유창한 맛은 도저히 다른 소설의 추급을 허하지 않는다. 또 그 전체가 운문체로 되어있는 만큼 다분히 가곡적 부면을 가지고 있을 것도 저절로 명백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앞의 인용문에서도 잠깐 보아 알 바와 같이 많은 한시구며 지나(중국) 고전을 흡수하였는데 이것이 지극히 교묘히 수용되어 조금도 어색한 데가 없다. 일터이면 전기 인용문 중에서 '담지재전홀연후'란 문구가 있으나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논어의 '안연외연탄왈, 앙지미고 찬지미견 담지재전(●●●●) 홀연재후(●●●●)'라는 것으로 안연이가 공자의 위대한 인격을 표현한 말이나, 이것을 춘향이가 이도령의 안전에서, 그 마음을 빼앗아 가면서, 추천하는 모양을 그리는 말에 차용하였다. 한문도 이렇게 되면 벌써 한문으로서의 한문이 아니고 조선문에 완전히 소화하여 버리어 조선으로서의 한문이라는 가치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상 한문은 우리에게 수입되어 다분히 생활 상에 소화되었거니와 춘향전 더욱이 본서는 그를 가장 능란하게 활용하였다는 것은 가히 경탄할 만한 것이 있다.
쪽수▶P107-2 이와 같이 本書의 文體는 四四調의 韻文體로 되어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그 流暢한 맛은 到底히 다른 小說의 追及을 許하지 않는다. 또 그 全體가 韻文體로 되어있는 만큼 多分 歌曲的 部面을 가지고 있을 것도 저절로 明白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앞의 引用文에서도 暫間보아 알 바와 같이 많은 漢詩旬며 支那古典을 吸取하였는데 이것이 至極히 巧妙히 ▶P108-1收用되어 조그만치도 語塞한 데가 없다. 일터이면 前記 引用文 中에서 「膽之在前忽焉後」란 文句가 있으나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論語의 「顔淵喟然嘆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膽之在前(●●●●) 忽焉在後(●●●●)라는 것으로 顔淵이가 孔子의 偉大한 人格을 表現한 말이나, 이것을 春香이가 李道令의 眼前에서, 그 마음을 빼앗아 가면서, 鞦韆하는 모양을 그리는 말에 借用하였다. 漢文도 이렇게 되면 벌써 漢文으로서의 漢文이 아니고 朝鮮文에 完全히 消化하여 버리어 朝鮮로서의 漢文이라는 價値밖에 남지 않았다. 事實上 漢文은 우리에게 輸入되어 多分히 生活上에 消化되었거니와 春香傳 더욱이 本書는 그를 가장 能灘하게 活用하였다는 것은 可히 驚嘆할 만한 것이 있다.
그러나 본서가 너무 그 문장을 다듬고 언어 표현미에만 힘을 경주하였기 때문에 과연 그 문채는 찬란하였으나 그 반면에 사실을 굽히고 모순을 스스로 이루는 폐가 없잖아 있었으니 이를테면 앞에서 인용하였던 첫째 번의 글을 좀 더 달아서 인용하여 보면

무산선녀 구름타고 양대상에 나리는듯, 나무잎도 풀어보고 꽃도 질끈 꺾어 머리에다 실근 실근
『이애 향단아 근디바람이 독하기로 정신이 어질하다 근디줄 부뜰어라』
부뜰라고 무수이 進退하며 한창이리노닐적에 세냇가 盤石上에 玉비녀 떨어저 쟁쟁하고 「비내비내」하는소래 산호채를 들어 옥반을 깨치는듯, 그 태도 그 형용은 세상인물 아니로다

쪽수▶P104-2그러나 本書가 너무 그 文章을 다듬고 言語表現美에만 힘을 傾注하였기 때문에 果然 그 文彩는 燦爛하였으나 그 反面에 事實을 굽히고 矛盾을 스스로 이루는 弊가 없잖아 있었으니 일터이면 앞에서 引用하였던 첫째 번의 글을 좀 더 달아서 引用하여 보면

巫山仙女 구름타고 陽臺上에 나리는듯, 나무잎도 풀어보고 꽃도 질끈 꺾어 머리에다 실근 실근
『이애 香丹아 근디바람이 毒하기로 精神이 어질하다 근디줄 부뜰어라』
부뜰라고 무수이 進退하며 한창이리노닐적에 세냇가 盤石上에 玉비녀 떨어저 쟁쟁하고 「비내비내」하는소래 珊瑚채를 들어 玉盤을 깨치는듯, 그 態度 그 形容은 世上人物 아니로다

이와 같으니 얼마든지 그 모순을 잡아낼 수 있다. 즉 추천을 하면서 나뭇잎을 따서 입에 물어본다든지 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또 春香이와 같은 處女가 무슨 머리에 비녀가 있어서 그것이 盤石 위에 떨어진다는 일이 있을 理가 없다. 이 것은 모두 말을 다듬어 써내리는 바람에 미처 그러한 矛盾이 있는 것을 깨닫▶P109-1지 못한 탓이라 하겠으니 要컨댄 本書의 重大한 缺點이라 아니할 수 없다.
쪽수▶P104-2이와 같거니와 얼마든지 그 矛盾을 잡아낼 수 있다. 即 鞦韆을 하면서 나뭇잎을 따서 입에 물어본다든지 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또 春香이와 같은 處女가 무슨 머리에 비녀가 있어서 그것이 盤石 위에 떨어진다는 일이 있을 理가 없다. 이 것은 모두 말을 다듬어 써내려오는 바람에 미처 그러한 矛盾이 있는 것을 깨닫▶P109-1지 못한 탓이라 하겠거니와 要컨댄 本書의 重大한 缺點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본서에는 몇 개의 연문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이도령이 광한루로부터 돌아와서 "보고지고" 하다가 便道에게 꾸중을 듣는다니 다음에 그 部分을 引用하면

通引 들어가
"道令님 웬목이요, 고함소래에 使道놀래시사 嚴問하라 하옵시니 엇지 알외잇가"
"딱한(●●) 일이로다(●●●●). 남우집(●●●) 늙은이는(●●●●) 耳聾症도(●●●●●) 있나니라(●●●●) 마는(●●) () 너무(●●) 밝은(●●) 것도(●●) 예상일(●●●) 아니로다(●●●●)."
글러한다(●●●●) 하다마는(●●●●) 글헐이가(●●●●) () 이쓸고(●●●). 道令님 大驚하여
"이대로 엿자와라. 내가 論語라 하는글을 보다가⋯⋯"
이것이요. 그둘은 使道가 道令님의 論語를 보다가 周公을 보고지고 하였다 하는 對答에 感激하여 睦郞廳을 불러 我子를 稱讚하며 둘이 問答하는 데니 即 使道 너무 感激하여라고
"政丞이야 엇지 바래것나마는 내生前에 及第는 쉬 하리만은, 及第만 쉽게하면 出六이야 베면이 지내것나"
"아니요(●●●) 그리할(●●●) 말삼이(●●●) 아니라(●●●) 政丞을(●●●) 못하면(●●●) 長栍이라도(●●●●) 되지요(●●●)"
使道이(●●●) 號令하되(●●●●)
"자네(●●) 뉘말로(●●●) 알고(●●) 대답을(●●●) 그리하나(●●●)"
"대답은(●●●) 하였아오나(●●●●) 뉘말인지(●●●) 몰라요(●●●)"
그런다고(●●●) 하였으되(●●●●) 그게(●●) () () 거짓말이였다(●●●●●).

하는 것이다.
쪽수▶P109-2또 本書에는 몇 개의 衍文을 發見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李道令이 廣寒樓로부터 돌아와서 「보고지고」 하다가 便道에게 꾸중을 듣는다니 다음에 그 部分을 引用하면

通引 들어가
『道令님 웬목이요, 고함소래에 使道놀래시사 嚴問하라 하옵시니 엇지 알외잇가』
딱한(●●) 일이로다(●●●●). 남우집(●●●) 늙은이는(●●●●) 耳聾症도(●●●●●) 있나니라(●●●●) 마는(●●) () 너무(●●) 밝은(●●) 것도(●●) 예상일(●●●) 아니로다(●●●●).』
글러한다(●●●●) 하다마는(●●●●) 글헐이가(●●●●) () 이쓸고(●●●). 道令님 大驚하여
『이대로 엿자와라. 내가 論語라 하는글을 보다가⋯⋯』
이것이요. 그둘은 使道가 道令님의 論語를 보다가 周公을 보고지고 하였다 하는 對答에 感激하여 睦郞廳을 불러 我子를 稱讚하며 둘이 問答하는 데니 即 使道 너무 感激하여라고
『政丞이야 엇지 바래것나마는 내生前에 及第는 쉬 하리만은, 及第만 쉽게하면 出六이야 베면이 지내것나』
아니요(●●●) 그리할(●●●) 말삼이(●●●) 아니라(●●●) 政丞을(●●●) 못하면(●●●) 長栍이라도(●●●●) 되지요(●●●)
使道이(●●●) 號令하되(●●●●)
자네(●●) 뉘말로(●●●) 알고(●●) 대답을(●●●) 그리하나(●●●)
대답은(●●●) 하였아오나(●●●●) 뉘말인지(●●●) 몰라요(●●●)
그런다고(●●●) 하였으되(●●●●) 그게(●●) () () 거짓말이였다(●●●●●).

하는 것이다. 右에 圏點을 둔 部分은 本書로 보아서 確實히 衍文이라 아니 볼 수 없으나 ^^^^^^「그런다고 하였으되 이 란 말로 보면 本書의 寫出者 或은 그 板刻者가 自己의 意見으로 이 말을 揷入하였던가, 그렇지 않으면 本書가 編作되 잔 그 以前에 그러한 意味의 말을 含有한 異本이 있었던가 어느 것일 것이다. 어떻든 우리는 여기에 한 疑問을 가지게 되거니와 事實上 本書와 京版本과를 比較하여보면 그 풀로트에서나 그 表現上에 있어서나 그 差異가 너무나 甚한 것 을 본다. 元來 春香傳은 小說로서 볼 것은 勿論이지마는 또 이 것을 一種의 戱曲으로 發達하였다고도 볼 수 있으니까 京版本에서 本書完版本까지에는 몇 번이나 노래로서 廣大의 입을 通하여 불러 왔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自然 그 가운데에 플로트가 마음대로 改造가 되고 또 表現하는 言語가 저절로 磨琢되어왔을 것이니 本書는 말하자면 이런 것의 集成한 것으로 보는 것이 可할 것이라. 따라서 本書以前에도 京版本以後 몇 種類의 異本이 있었을 것은 疑心할 수 없는 以下말하고자 하는 普成專門學校圖書館藏本이라든지 李明善 氏藏本같은 古寫本은 곧 그러한 種類의 異本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끝으로 本書는 今年 初春에 博文文庫版으로 刊行된 筆者의 校註春香傳의 底本이 되었던 것을 附記하여둔다
































































































본문4: 三. 春香傳(普成專門學校圖書舘藏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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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5: 四. 春香傳(李明蕃氏藏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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