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풍

North Korea Humanities

우혜인(JBNU202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2월 11일 (수) 15:52 판 (→‎졸업 이후)


박호풍 (朴鎬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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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족의학신문
 
한글명 박호풍 한자명 朴鎬豊 영문명 가나명 이칭 남천(楠梴)
성별 남 생년 1900년(고종 37)년 몰년 1961년 출신지 서울 전공 한의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해방 이후 동양대학관 학관장, 서울한의과대학 학장 등을 역임한 학자.


생애


출생 및 학업

박호풍은 1916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인 경성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는 등 동 시대를 살아가는 수재 중 한 사람이었다.[1] 졸업 후 ‘일제강점기에 학업을 마치면서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백성으로서 창생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의학일 뿐’이라는 깨닫게 되고 한의학 공부에 매진했다.


졸업 이후

박호풍은 졸업 후 본격적으로 한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1941년부터 구 왕궁의 전의(典醫)[2]로 활동하기도 하였다.[3] 1921년 졸업 이후 뚜렷한 족적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전의로 임명된 것을 보면 꾸준히 임상에서 일해 왔던 것을 알 수 있다.[4] 1946년부터는 동양의학전문학교 설립기성회에 경기도의 의생(일제시대에 사용된 ‘한의사’의 호칭)들을 대표하여 경기도의생회관을 기부하여 교육계에 헌신하였다. 1948년, 한의학 교육기관인 동양대학관(경희대학교 한의대학의 전신)을 설립하는 데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고, 이때 초대 학관장을 맡았다.


한국전쟁 이후

{{글상자| |내용= 1951년에는 동양대학관을 서울한의과대학으로 승격시키고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평생 동안 상한론(傷寒論)을 중심으로 의학 연구에 헌신하면서 『상한론강의』·『의경학강의(醫經學講義)』·『급성열성병』(Acute Febrile Disease라는 이름으로 英譯) 등 여러 저술을 남겼다. 특히 사후에 그의 유고를 모아 발간한 『남천의학대전(楠梴醫學大全)』은 유명하다. 1956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 되었다.[5] 뿐만 아니라 임시수도 부산에서 열린 초대 제헌국회에서 한의사제도가 입법되도록 청원하는 일에 앞장서 현재와 같은 의료이원화 제도가 확립되는데 큰 공헌을 했다.[6]

제목4


제목5





연구


제목1


제목2


제목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Person: 홍아무개 A hasSon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Book: ○○○ Person: 홍길동 A creator B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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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주석


  1. ↑ 박호풍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 조선 후기에, 궁내부의 태의원에 속하여 왕의 질병과 왕실의 의무(醫務)를 맡아보던 주임(奏任) 관직.
  3. ↑ 박호풍 - 네이버지식백과
  4. ↑ “근대여명기 한의학에 서광을 비추다", 한의신문 강환웅
  5. ↑ 박호풍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6. ↑ “근대여명기 한의학에 서광을 비추다", 한의신문 강환웅